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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트이고 의식이 깨어난 새 시대시대가 만든 이야기, 문화·기술·스포츠
김다혜 기자  |  rlaekgo09@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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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1  16: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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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삶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박지성의 맨유 입단은 보는 축구의 재미를 일깨워  

 
 
  2000년 두 번째 밀레니엄 시대가 시작됐을 때 우리나라는 ADSL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가 400만 가구를 넘어서고 있었다. ADSL 서비스는 기존의 전화선을 이용해 컴퓨터가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게 하는 기술로 인터넷은 급속도로 친근하게 대중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김대성 학생(국어국문학과 3)은 ‘ADSL 인터넷망의 확산’이 삶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터넷 서비스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웹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정보로 넘쳐났고 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이슈들이 인터넷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스뿐만 아니라 전문지식에 대한 진입 장벽도 낮아지게 됐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여러 이슈를 쉽게 접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뉴스나 TV가 아니었으면 접하기 어려운 것들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됐죠.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된 것도 인터넷의 공이 크죠.”
 
  2007년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은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김효철 학생(가명·경영경제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애플의 아이폰은 핸드폰의 개념 자체를 바꾼 계기였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그랬다.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그해, 그에게 아이폰과 애플리케이션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미국인이었던 과외선생님이 아이폰에 대해 떠들었지만 그는 귓등으로 들었다. 쓰고 있던 피처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폰의 출시가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인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배달 앱으로 식사를 주문하고, 배낭여행 시 의사소통 문제도 사전 앱을 활용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피처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스마트폰은 그의 삶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이폰이 스마트폰이란 개념을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학부에서 언론을 전공했던 손수경 학생(일반대학원 독일유럽학과 석사과정 1차)은 ‘페이스북’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언론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페이스북은 삶을 간편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였다. 페이스북이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해는 2010년, 그는 다음 해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전공 교수님들은 학과 특성상 SNS 사용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가 첫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것도 2011년이었다. 페이스북은 온갖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만화경이 되었다. 뉴스를 보기 위해 각 언론사 홈페이지를 뒤적일 필요가 없었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를 보면 다양한 언론사의 기사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직접 언론사 홈페이지를 들어갔지만 이제는 언론사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 해서 읽어요.” 그의 뉴스 소비방식이 페이스북으로 인해 편해졌다.
 
  2003년 첫 방송을 시작한 ‘무한도전’은 이학진 학생(공공인재학부 4)의 꿈을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막연하게 방송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던 이학진 학생은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보며 MC의 꿈을 키우게 됐다. 박명수 같은 멤버들과 재미있는 콤비도 이루고, 별명도 지어주며 캐릭터를 잡아주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캐릭터 코미디라고 할 수 있는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유재석을 보며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알게 됐다고 한다. 웃기는 리더의 자질을 무한도전을 통해서 비로소 얻은 것이다.
 
  남고를 졸업한 이황용 학생(가명·경영경제대)은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함께하던 축구를 잊을 수 없다. 입시 스트레스도 공을 차고 있으면 눈 녹은 듯이 사라지곤 했다. 그런 이관용 학생에게 박지성의 맨유 입단은 가슴 벅찬 사건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을 무렵 박지성은 축구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 발을 내디뎠다. 응원하던 선수였고, 같은 한국인이었던 박지성이 세계적인 축구 클럽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박지성의 맨유 입단 후 이황용 학생은 박지성 선수의 경기 영상을 보며 유럽축구 리그의 매력에 빠졌다. 해외축구 중계도 빼먹지 않고 챙겨보기 시작했다. “공을 차는 것만이 축구가 아니라 보는 것도 축구라는 것을 박지성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점심시간이 축구공과의 사투로 가득했다면 방과 후는 프로토스, 저그, 테란 세 종족의 종족 전쟁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2000년대 중·고교를 나온 남학생들은 종례 후 모두 피시방으로 달려가 ‘스타크래프트’를 하곤 했다. 그래서 2012년 8월 마지막 스타크래프트 리그(스타 리그)가 이장욱 학생(경영학부 3)에게는 가장 크게 다가온다. “게임은 못했지만 스타 리그를 보는 게 학창시절 최고의 즐거움이었어요. 마재윤의 승부조작, 영원한 라이벌인 임요환과 홍진호의 대결. 그 모든 것이 학창시절의 추억이었죠.” 마지막 스타 리그 결승전을 보며 학창시절의 추억이 사라진것 같아 아쉬웠다. 다른 게임은 하지 않는 그였기에 과거이자 현재의 즐길 거리였던 스타 리그의 폐지는 그의 삶을 조금은 심심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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