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연습을 마치고 연습실을 나와 조소전공 건물을 지나니 대운동장 테니스코트로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그 오솔길엔 녹음이 우거져 마치 녹색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녹색 동굴 속을 거니노라면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니 향수를 뿌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에 빠지게 된다. 온천지가 녹색으로 뒤덮이고 겨우내 초라하고 앙상했던 대지가 녹음이 되는 5월, 그 시간을 만끽하며 나는 발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하루를 쉬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쉬면 선생이 알고, 삼일을 쉬면 관객이 안다’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발레라는 예술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몸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단순 스포츠 이상의 훈련을 요구한다. 연습할 때 몸으로 느끼는 고통과 테크닉이 잘 완성되지 않을 때 느끼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반대로 테크닉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세상을 다 얻은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정규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에 시작하는 특강과 작품연습은 매일 고통의 연속이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뱃속에 허기를 느낄 때 비로소 밤이 깊었음을 알게 된다. 그제야 땀에 젖은 타이즈와 슈즈를 벗고 몸을 씻은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연습실 문을 나선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 발레리나(여성무용수)와 발레리노(남성무용수)의 일과다.
 
  연습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국립발레단 인기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해설이 있는 발레’라는 공연이 있다. 2002년 공연엔 해설자로 대중가수 김세환씨가 선정됐는데 하루는 그가 리허설을 보기 위해 연습실을 찾았다. 연습 과정을 지켜보는 그의 눈엔 처음에는 호기심이 일더니 점차 그 표정이 놀라움,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시시각각 변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리허설이 끝나고 그는 단원들 앞에서 리허설을 본 소감을 말했다. “여러분이 하시는 발레 리허설을 보니 내가 하는 노래는 너무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나름 노래도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분들을 보니 갑자기 초라해짐을 느끼게 되네요. 가끔 발레 공연을 보면서 그저 ‘아름답다’, ‘멋있다’라는 생각만 했는데 막상 연습실에서 그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 위해 많은 땀을 흘리는 여러분을 보니 감탄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발레 예술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연습과 집중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5월이 주는 계절감을 만끽하며 회상한 것치고는 낭만이 덜하지만 나의 일을 뒤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주위는 어둑어둑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진녹색 어두운 오솔길로 들어섰다. 다시 한 번, 와! 아카시아 향수가 길 위에 뿌려져 있는 듯하다. 매년 5월이 되면 생각날 것만 같은 안성캠의 오솔길! 우리 중앙인 모두가 짧은 시간 허락되는 자연의 혜택을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긍수 교수
무용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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