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찾아오는 미지의 불안함, 어디서 오는 걸까
  • 안지연 기자
  • 승인 2015.05.24 2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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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재 소장이 강한 자아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발표불안 정신분석으로 나누기

과거의 상처나 결핍은
‘무의식’에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영화 <플랜맨>의 남자 주인공 정석은 제목 그대로 하루 종일 맞춰놓은 알람에 따라 행동하는 ‘플랜맨’이다. 게다가 손 세정제가 필수품일 정도로 결벽증까지 가졌다. 정신과에 가보라는 조언을 듣고 병원으로 간 그는 클리닉 모임을 가지면서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던 유년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플랜맨처럼 강박증이나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과거의 상처로 특정 상황만 되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꾸 몰려오는 이들이 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증상을 어렸을 적 좋지 않은 경험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많은 사람 앞에만 서면 떨리는 학생들도 플랜맨처럼 무의식의 흔적 때문은 아닌지, 궁금증을 가지고 이창재 소장을 찾아갔다.

-수업시간에 발표할 차례가 되면 심하게 긴장되고 초조해져요.

“발표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 닥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지는군요. 이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따르면 ‘사회 공포증’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포증은 ‘자아’와 관련이 있어요. 자아는 유년기 때 어머니로부터의 정서적인 존중과 아버지를 이상화하는 단계를 거쳐 형성됩니다. 이 두 가지가 취약하면 자아도 약해지는데, 이때 사회 공포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죠.”

-부모와의 관계가 자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가요.
“자신감이나 자부심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의 좋은 경험이 무의식 속에 축적되면서 커지는 것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존중을 받은 경험이 부족하거나 아버지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자존감이나 자부심이 떨어져 자아가 약해지죠. 반면 두 가지가 제대로 충족되면 자아가 강해집니다.”

-구체적으로 부모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요.

“가족 내에서 주로 엄마는 양육을 통해 정서적 역할을,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3세까지는 보통 어머니와의 접촉이 많이 이뤄지는 시기에요.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시기로 이때 주로 정서적 소통을 하게 되죠. 하지만 3세 이후부터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는데 이때부터 가정 밖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게 됩니다.”

-기억나지도 않는 경험이 어떻게 20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죠.

“기억은 의식에서 작용하지만 정신에는 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도 존재해요. 유년기 시절의 경험이 잊힌다고 해서 정신에서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경험은 전부 무의식 속에 남게 되죠. 가정폭력과 같이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잊기 위해 무의식 속에 집어넣어요. 이 ‘잊히지 않는 상처’가 무의식에 남아 특정 상황만 되면 의식으로 규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불쑥 생기게 되는 것이죠.”

-어렸을 때 받은 상처도 불안감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건가요.

“이 상처를 ‘트라우마’라고 해요. 그러나 상처를 계속 의식하면 괴로워서 못 살 것입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바로 무의식에 남게 되죠. 기억나지도 않은 상처가 무의식에 남아 간혹 마음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남들 앞에서 실수를 하거나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의식 속 트라우마로 남죠. 이 트라우마가 현재에도 영향을 끼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저절로 꺼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의식에서 자각할 수 없다면 프로이트는 어떻게 무의식을 발견했나요.

“프로이트는 최면을 이용해 무의식을 발견했죠. 프로이트는 19세기 유럽의 정신과 의사였는데, 그 당시 의학적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생리적으로 이상이 없는데 생리적 통증을 호소하거나 초조해하고 불안해했죠. 이 병은 바로 ‘신경증’이었는데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당시 유행했던 최면술을 사용했어요. 이 때 환자들이 의식 상태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상처나 억압된 욕망을 최면을 통해 표출했죠. 프로이트는 여기서 의식과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창안합니다.”

-무의식이 최면을 통해 나타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반수면 상태인 최면에서는 정신의 방어기제가 이완되죠. 신체적 방어가 있듯이 심리적 방어도 있어요. 정신의 방어기제는 의식이 견딜 수 없는 자극을 받을 때 그 자극이 의식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무의식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크게 분열과 억압이 있죠. 분열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거나 받아들이기 싫은 자극을 무의식으로 옮기는 것이고, 억압은 금지된 욕망이나 생각을 의식으로 떠오르지 않게끔 무의식 속에 넣는 것입니다. 정신의 방어기제가 이완되면 의식으로 연상되지 않는 무의식 속 망각된 기억이 떠오르게 되죠.”

-견디기 힘든 과거를 대면하면 위험하지 않나요.

“상처가 곪으면 터지듯이 정신의 상처도 그대로 놔두면 오히려 병이 됩니다. 그 상처가 의식으로 나오지 않도록 하는 데에 쓰이는 에너지 지출이 상당하죠. 그렇게 되면 정작 써야 할 때 에너지를 못 쓰게 됩니다. 특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자꾸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그 근원이 되는 과거의 상처를 찾아 없애는 것이 중요해요. 간혹 자아가 약한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받은 경험을 떠올리는 것을 꺼려하는데 이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많이 해주면서 아주 천천히 무의식을 끄집어내야 하죠.”

-스스로 무의식을 끄집어낼 순 없나요.

“어떤 인간도 자신의 무의식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무의식이 의식으로 나오는 것은 정신의 방어기제로 인해 차단되기 때문이죠. 이 방어기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으로 작동됩니다. 방어기제를 풀어 무의식을 의식으로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타자의 도움 즉, 분석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타자의 도움이 없으면 무의식은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인가요.

“뚜껑 없는 주전자에 물이 계속 끓으면 폭발하듯이 무의식에도 배출구가 있어야 하죠. 바로 꿈이나 말실수입니다. 수면이나 만취 등의 특수상황은 방어기제가 이완되거나 퇴행돼 무의식이 올라오기 적절하죠. 단, 무의식이 그대로 나오면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방어기제가 완전히 이완되는 것은 아니며 의식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변장과 왜곡을 통해 배출됩니다.”

-취중에 한 실수나 주사는 완전한 무의식이 아니군요.

“무의식은 개인이 견딜 수 없거나 금지된 생각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그대로 의식에 나올 경우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를 살인하고 싶은 무의식이 있는 사람이 만취 상태에서 무의식 그대로 살인을 하진 않죠. 욕이나 폭력 등 다른 방식으로 왜곡돼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취중에 한 실수뿐만 아니라 꿈 또한 무의식의 변장된 결과물이죠.”

-상처가 무의식에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아까 말했듯이 유년기 때의 경험이 중요해요. 어머니에게 존중받는 경험과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이상향이 결핍된 사람은 자아가 약해 상처를 잘 받게 되죠. 하지만 두 가지의 경험을 꼭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만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애인, 친구, 직장 상사 등 가족 이외에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유년기 때 충족하지 못한 결핍을 채울 수 있어요.”

-어떻게 결핍을 충족할 수 있나요.

“20대가 되면 부모님과의 관계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많이 맺게 되죠.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한 존중의 경험과 긍정적 이상향은 사회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연애를 하면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을 받을 수 있고 학교 선배나 직장 상사가 제2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거죠. 친구, 교수님 등 여러 인간관계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가깝고 오래갈수록 효과가 좋다는 거예요. 최소 3년 이상 관계가 지속돼야 유년기 때의 결핍이 채워져 자아를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튼실한 자아가 중요하다는 소리네요.

“정신적인 건강이 중요한 셈이죠. 본받을 수 있는 사람, 정서적 안정을 주는 사람을 능동적으로 찾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웬만한 상처를 받아도 끄떡없는 자아를 만들어 내야 해요. 즉, 자아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인생의 효율적 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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