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습자본주의를 경계하며 민주주의가 시장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하는 유종일 교수.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불평등’이다. 지난해 1월 세계경제 발전에 관해 논하는 다보스 포럼에선 불평등을 핵심 주제로 선정한 바 있다. 전 세계 최고 부자 85명의 재산이 인구의 절반, 하위 35억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당시 보고서는 불평등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책이 『21세기 자본』이다. 게르마니아 강연에서 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불평등을 문제 삼은 경제학자들은 많았지만 피케티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방법론 때문이다”고 말한다. 300여년 역사의 흐름에서 20여 개국의 통계를 데이터 삼아 이뤄진 연구는 기존의 수리적 모델에만 의존하던 연구와 달리 거시적이고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세습자본주의, 우리의 ‘오래된 미래’
  19세기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주인공 라스티냐크는 앞으로 공부해서 법률가가 될지, 아니면 그냥 상속 여인을 유혹해 상류층의 삶을 살지를 고민한다. 200년 전의 고민이지만 그 내용은 오늘날에도 전혀 낯설지 않다. 실제로 피케티는 상속자들 중에 소득이 상위 1%인 그룹과,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 중 상위 1%인 그룹을 비교했다. 그 결과 상속자 그룹의 소득이 2.5배에서 3배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 사회의 경제를 판단하는 변수 중에 ‘자본의 양’과 ‘소득의 크기’가 있다. 자본의 양이 그동안의 축적을 판단하는 변수라면 소득은 얼마를 벌었는지 변동을 나타낸다. 피케티는 새로 소득을 창출할 때의 결정적인 요인은 노동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자본의 양이라고 말한다. 가진 돈이 많아야 투자를 통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 축적이 많은 미국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가장 높은 자본을 보유한 하버드에서는 투자수익률이 10% 가까이 발생했다. 그리고 보유 자본이 적을수록 차례로 낮은 투자수익률을 기록했다. 투자 성공 요인은 바로 돈이었는데 이들이 투자컨설팅 회사에 지불하는 비용은 1조원에 달했다. 또한 풍부한 자본으로 고위험 고수익 투자가 가능하기도 했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는 자본수익률이고, 소득의 수준은 경제성장률이다.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 둘의 격차다. 앞서 상속자본과 노동소득의 비교처럼, 상속자본을 통한 자본수익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노동을 통한 경제성장률이 낮다면 사회는 결국 세습자본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소설 『고리오 영감』이 경고하는 바처럼.

 

 

역사가 보여주는 적신호
결국 피케티가 주목한 것은 자본소득의 문제였다. 그는 소득 데이터가 가장 정확하다고 판단되는 프랑스의 국민소득을 분석했다. <표1>은 1910년부터 2010년까지 소득이 상위 1%인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자료다. 상단의 검은 선은 이들의 소득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하단의 흰색 선은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다.

  먼저 흰 그래프를 보면 1910년부터 2010년까지 대동소이하게 고소득자가 전체 노동소득의 6%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점유의 주체가 인구의 1%라는 점에서 소득의 6%는 상당하지만 문제는 자본소득에 있다. 1910년에 상위 1%의 소득이 전체소득에서 20%를 차지한다는 점은 보기보다 위험한 의미를 내포한다. 당시 20세기 초 프랑스 사회에서 전체소득 중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율은 4:6정도인데, 이를 통해 상위 1%가 자본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보면 전체 자본소득의 반 이상을 점유하는 수치가 도출된다. 자본소득의 편중이 심각한 모습이다.

  그동안 ‘1:99’ 사회 이야기를 하면서 불평등을 세계화나 기술의 변화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피케티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사회전체적인 소득분포에서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1%, 그 중에서도 0.1%의 특권층으로 경제성장의 혜택이 집중됐고 불평등이 심하게 나타났다.
그래프에서 주목할 또 다른 점은 검은색 그래프의 추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체소득에서 상위 1%의 점유율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서서히 하강하다가 1945년을 기점으로 10% 이하를 유지하는데 피케티는 이때를 인간사회가 전에 없이 공평했던 때라고 말한다.

  빈부격차의 ‘대압착(Great Compre-ssion)’이라고도 하는 이때는 늘 불평등했던 인류 역사에서 예외적인 시기다. 이는 대공황과 양차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발생한 ‘자본의 파괴’에 따른 결과다. 이전보다 재산권이 약해졌고 자본에 대한 세금이 높아 자본의 가격이 떨어졌으며, 민주주의가 신장돼 노동운동이 강화되는 등 인권수준이 향상됐던 것이다.

귀환하는 자본

  <표2>는 전 세계 세후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을 나타낸다. 상단 그래프는 세후자본수익률을 나타내는데 대압착 이후로 눈에 띄는 변화가 확인된다. 자본수익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자본의 귀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좋았던 전후 황금기 이후 세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대처의 보수주의 등을 비롯한 자본친화적인 정권은 세금을 낮췄고 부유층의 자본은 증식하기 시작했다. 피케티는 이러한 변화의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고소득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거대해져 로비 등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더불어 자본이 언론을 장악해 자본친화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업에 대한 감세와 규제 완화가 이뤄진 것이다. 두 번째는 세계화로 인한 조세 경쟁이다. 국가가 세금을 많이 걷게 되면 국내 자본이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타국으로 이동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위 두 원인으로 인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본수익률이 급증하고 많은 자본들이 기업의 창고로 이동하게 됐다.

  피케티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작년까지 미국, 영국 등 6개 선진국의 잠재적인 경제성장률을 분석한 결과 앞으로 상당한 하강 트렌드가 예상된다. 그러나 경제성장률과 반대로 자본수익률은 급증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할 것이다. 피케티는 대비 없이 이대로 지속될 경우 전 세계는 『고리오 영감』의 배경처럼 세습자본주의로 다시 도태된다고 경고한다.

한국사회는 조로증

  조로증은 이른 나이에 신체적으로 급격한 노화가 진행되는 병이다. 이 증상은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이는 각종 지표로 나타난다.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강하는데 그 양상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이례적이다. 보통 일정 정도 상승하다가 하강하는데 유독 한국은 상승하다말고 미끄러지는 형상이다. 이에 더해 불평등 지수뿐만 아니라 저임금노동자의 비중도 1,2위를 다툰다는 점도 병리적 징후다.

  늙어가는 증상은 인구모형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한국은 실제로 매우 빠르게 ‘늙고’있다. 현재 평균 연령이 40세가 넘는 상황이고 고령화 속도도 다른 나라보다 빨라 조만간 가장 늙은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증상을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부의 집중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100대 부자 중 85명 이상이 상속으로 인한 부자다. 자수성가가 요원해지면서 노력의 가치가 빛을 바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또한 청년층 사이에서 패배주의가 짙어짐에 따라 히키코모리, 일간베스트와 같은 사회 병리적인 현상도 나타나게 됐다.

회춘하기 위해선
  조로증의 가장 큰 무서움은 환자가 보통 13세를 넘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도 이대로 세습자본주의를 향해 방치된다면 그 끝에는 힘든 미래가 있을지 모른다. 피케티가 제시하는 해답 중 하나는 글로벌 부유세다. 전 세계가 합의를 통해 부유층에 대해 50%에서 80%에 달하는 개인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다소 과격해보일 수 있는 그의 아이디어때문에 피케티를 ‘21세기 마르크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주의자다. 다만 자유로운 경쟁을 위해서 소수 특권층의 자본을 규제하고 경제민주화를 목표로 하는 ‘사회복지국가’를 주장한다. 피케티의 해법에 대해 유종일 교수는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변화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발생했을 때 기회를 잡으려면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