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경』의 스토리가 반영된 석굴암 본존불.

통합의 논리를 담은 『화엄경』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있어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서양의 대표적인 판타지 스토리다. 톨킨은 당시 독자적인 신화를 가지지 못했던 그의 조국 영국에 신화체계를 세우는 것을 생애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반지의 제왕』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판타지 작품으로 손꼽힌다. 반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독자적인 판타지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이다.

 이효걸 교수(안동대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는 『화엄경』을 우리 민족이 가진 거대한 판타지 스토리로 정의한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지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주에서 석가모니와 여러 보살이 인간의 정신적 깊이와 삶, 그리고 존재에 대해 설법을 나누는 하나의 ‘동양적’ 판타지 스토리가 바로 『화엄경』이다.
 
『화엄경』과 빛의 의미

 『화엄경』은 불교의 교파 중 하나인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부처가 깨달은 내용을 그대로 담아냈다. 1세기 무렵부터 인도, 중국 등에서 만들어진 여러 경전들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 중 가장 일찍 성립됐다고 추정되는 ‘십지품’즇은 보살의 수행단계를 설명한 것으로 『화엄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경전으로 평가받는다. 현재는 ‘40화엄’, ‘60화엄’, ‘80화엄’의 세 가지 번역본이 남아있다.

 본격적인 내용의 시작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부터다. 석가모니가 정각(正覺)즊에 도달했을 때 그 정각의 정신이 빛으로 방광한다. 빛이 전 우주로 뻗어 나가면서 우주에 많은 보살들이 그 빛을 보고 지구 주변으로 몰려든다. 깨달음을 통해 우주로 유체이탈한 석가모니는 지구에 모인 여러 보살들과 인간의 본성, 보살의 수행 등에 대해 논설한다.

 여기서 『화엄경』은 빛에 주목한다. 정각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빛이라는 구체화된 물질로 형상화된다. 빛은 모든 존재와 상호 소통한다는 점에서 유적존재즋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빛을 매개로 한 이 소통 속에서 모든 존재는 정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즉, 모든 존재는 서로 조화롭게 화합할 수 있으며 평등하다는 것이 이야기가 던지는 메시지다.

현대판 인생드라마, ‘입법계품’

 『화엄경』의 마지막 부분은 입법계품이다. ‘선재동자’의 구법(求法)즍 과정을 담은 입법계품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돼있다. 주된 내용은 선재동자라는 고아가 53명의 선지식즎(52명이라는 설도 있다)들을 만나며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입법계품은 평범한 선재동자가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평범한 중생들이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구조는 『화엄경』의 앞부분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설법을 나눈 점과 달리 오늘날 TV드라마나 영화와 같이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돼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입법계품은 불교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불교가 추구하는 방향은 중생들이 부처를 무작정 추종하는 데에 있지 않다. 부처를 좇기만 한다면 추종자와 부처의 간극은 영원히 좁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평범한 중생들을 대상으로 ‘지침서’ 역할을 하는 입법계품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라 왕조가 주목한
‘조화와 화합’의 논리

 신라에 진흥왕이 즉위한 후부터 삼국은 약 100년간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관계가 틀어진 삼국은 676년 신라에 의해 통일된 후에도 갈등을 내재하고 있었다. 이에 신라의 지배세력들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화엄경』에 나타난 조화와 화합의 원리에 주목했다. 신라 왕조는 국가 차원에서 화엄종을 널리 장려해 화엄의 교훈을 국민의 삶 속에 철저히 주입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부석사가 건설됐다. 당시 사람들의 지적 수준으론 경전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부석사의 구도, 배치된 불화(佛畵) 등의 체험을 통해 『화엄경』의 스토리를 전달한 것이다. 이처럼 『화엄경』의 스토리는 국민 개개인의 삶과 결부돼 통일국가의 백성들에게 조화와 화합의 정신을 전해줬다.

우리 삶 속에 깃든 『화엄경』

 예부터 『화엄경』의 스토리는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혀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적 완결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인 석굴암도 마찬가지다. 석굴암은 석가모니가 정각에 도달한 순간을 표현했다. 빛이 방광하는 정각의 순간을 굴속에서 햇빛을 받아 석굴암 본존불이 방광하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산봉우리의 이름 역시 관련이 있다.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비로봉’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 산봉우리의 이름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다. 과거 선조들은 정각에 도달한 ‘비로자나’즏와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비로봉을 이용했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태양신과 교신하기 위해 ‘오벨리스크’를 세웠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비로봉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처럼 『화엄경』의 이야기가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조화와 화합의 원리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효걸 교수는 『화엄경』이 지금도 그 역할을 수행한다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현재 북한과 분단된 상태지만 사람들은 그들과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는 통합을 중시하는 화엄 사상이 우리의 마음속에 여전히 내재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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