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만들 시간 - 중대신문 임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 심우삼 기자
  • 승인 2015.05.2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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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역을 3일 앞둔 기자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부대에서 먼 창고에 처박혀 있으면 귀찮은 일은 없겠다 싶어 창고정리를 자원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창고 문을 닫고 한쪽 구석에 있던 케케묵은 가죽 소파에 털썩하고 앉았다. 오래된 가죽 냄새,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볕에 소용돌이치는 먼지들이 보였다. 어제 빨았던 군복은 연식을 알 수 없는 소파에 한순간 동화된 것처럼 보였다. 먼지는 텁텁했고, 가죽 냄새는 매캐했다. 오래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낡은 소파가 된 것 같았다. ‘그래. 그렇고 보면 2년간의 군 생활이 이렇게 텁텁하고 매캐한 것이었지.’ 먼지에 코가 턱 막히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창고가 깊숙이 품고 있는 곰팡내가 역한 듯 묘한 끌림이 있는 것처럼, 군대도 그러했다.

  ‘나가고 싶다’, ‘힘들다’. 매일 같이 달력에 지나간 날들을 X표 쳤다. 꽃다운 나이를 썩히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한 동지들과 욕지거리를 연발하기도 했다. 전역 날을 조준했지만 연발한 욕들은 침상을 채 넘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임에도 불평과 불만, 욕설의 난사는 총성을 멈추는 날이 없었다. 3일이 남은 그때야 가죽 소파에 앉아 생각할 수 있었다. 역시 시간이 답이었구나. 욕하고 짜증 내고 그러다가도 뒹굴며 부대끼던 부대의 침상은 이렇게나 좋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을 것을 시간은 알고 있었다.
 
  다시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조판하던 중에 졸음을 못 이겨 편집국 자료실 한편에 있는 가죽 소파에 누웠다. 창고에 앉아있었을 때처럼 먼지가 가득했고, 쌀쌀하고 건조했다. 목이 따가워 이따금 마른 침을 삼켰다. 얼마나 목을 괴롭혔을까, 얼만 큼 시간이 흘렀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는지, 긴 시간이었는지 어림잡기도 힘들었다. 다시 일어나 지면을 완성해야 했다.
 
  매주가 그렇게 빈 지면을 가득 채우는 과정이었다. 한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독하게 미움받아야 폭풍 같던 한주의 끝이 보였고, 끔찍하게 누군가를 미워해야 휘몰아칠 한주의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길고 짧은 건 대볼 새도 없이 2년은 한주 같았고, 한주는 2년 같았다. 강제로 끌려 온 것도 아니기에 무작정 욕할 수도 없었다. 대신 ‘내가 왜 들어왔을까’ 얼빠진 놈이라며 자신을 타박하기도, 시간이 되돌아갔으면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제 정말 지쳤다고 생각해 가죽 소파에 누웠고 어느새 세번의 신문만이 2년의 시간을 채워줄 말년의 과업이 되었다.
 
  하지만 전역을 3일 앞둔 그때처럼 다시 가죽 소파에 몸을 맡기고 ‘역시 시간이 답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군대보다 힘들었다면 힘들고 지쳤다면 지친 신문사에서의 2년은 결코 ‘지나가 보니 좋았던 시간’이 아니다. 그 힘들고 지친 순간순간이 내가 얼마나 하고 싶고 좋아했던 일이었는가를 알았기에 힘든 내색을 양껏 냈을지언정 매 순간이 지나감을 속으로 아쉬워했다. 그래서 결코 지나간 시간에서 답을 찾지 않을 것이다. 대신 신문을 세 번 만들 시간, 그 남은 시간에서 넓은 지면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미움받고 미워하던 그 2년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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