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쓴 중대신문 지원서 위 뽀얗게 앉은 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자간 빼곡히 적혀있다. 자기소개를 부고 기사 형식으로 썼던 건 어떻게든 어필해보려던 귀여운 수작이었던 것 같다. ‘그가 13일 오후 8시 13분에 별세했음을 그의 보좌관이 14일 밝혔다. 향년 80세’라고 운을 뗀 거짓 부고 기사는 80세까지 ‘조선희 기자’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부고 기사에는 ‘중대신문은 그의 끼와 열정을 모두 쏟아낸 곳’이었고 ‘중대신문에 입사한 그는 대학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취재하며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기사를 쓰기로 유명’했다고 적혀있었다.

 문득 지난 학기 대학보도부 부장 시절이 떠올랐다. 선배 기자들의 지시를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나의 부서, 나의 지면을 꾸려나가던 때였다. 부장으로서 느끼던 진지한 고민을 담아 쓴 칼럼을 열었다. 지난 학기 기사로 실었던 구조개편 설명회, 학생대표자 선거 등에 구성원들의 관심이 적자 대학보도면의 기사가 가지는 효용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보는 이에게 다가가는 매혹적인 기사를 쓰지 못했다는 점, 그래서 주요 사안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점 등에 좌절했던 게 떠오른다. 당시 기자는 칼럼에서 다짐했다. ‘자, 약속해. 네 기사에 푼크툼을 담겠다고.’

 문제를 해결하겠답시고 찾아간 나의 과거는 지금의 나를 무릎 꿇게 했다. 실마리가 되어줄 작은 실타래 하나를 찾으러 간 것뿐이었는데. 현재에 비해 과거가 얼마나 우세했는지나 확인하게 된 꼴이었다. 지원서 한 줄 한 줄에 어떤 기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고, 칼럼 한 글자 한 글자에 독자들을 위한 기사를 왜 쓰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질책보다, 어떤 선배의 충고보다 더 맞닥뜨리기 힘들었다. 요즘의 자격지심이 만든 상처는 참 아팠다.

 지원서와 칼럼을 열어보게 했던, 그러니까 중대신문 생활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게 했던 가장 큰 문제는 회의감이었다. 이번 학기, 중대신문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시선과 질타, 억압에 이들을 이끌어 가는 내게 회의감이 찾아오는 건-어이없는 이메일에서 가장 큰 회의감이 들긴 했지만-당연한 것일 테다. 처음엔 스스로를 마구 때리지 못해 변명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지난 2월부터 터진 중앙대의 문제를 쫓기 바쁘지 않았냐고. 지면에 드러나는 문제의 크기를 줄이려는 이들을 상대하면서 논리 대결을 펼치기 바쁘지 않았냐고. 그러나 변명의 끝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겠는데, 결국 그 위치에서 너의 목표는 뭔데? 네 가치관이 바로 서긴 했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내가 중대신문을 지원하면서 바꾸고자 했던 중앙대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대학보도부장으로서 어떤 지면을 꿈꾸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편집장으로서 중대신문, 아니 중앙대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방법이든 좋다. 처음 그 마음으로 다가오는 끝을 준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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