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캠퍼스
 
 
‘NEWS 모자이크’는 하나의 시사 사안을 모자이크의 한 조각으로 보고 이 사안들의 함의를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 보는 기획입니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작은 조각들이 전혀 다른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모자이크와도 같은 셈이죠. 이번주 NEWS 모자이크는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을 한 조각으로 해서 ‘불안 가득한 대학 생활’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캠퍼스 어딜 가도 취업이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스펙을 쌓고 학점에 목매 불안함을 숨길 수 없는 것이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인데요. 아버지 세대 때만 해도 대학캠퍼스에는 낭만이 넘쳤다고 하죠. 몇십 년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번주 시사기획부는 ‘먹고 대학생’이라고 불렸지만 취업 걱정 없이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즐겼던 기성세대의 모습과 지금 현 대학생들의 모습을 비교해주며 오늘날 청년세대의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불안한 2015년의 캠퍼스

 

고용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막연한 불안에 휩싸인 대학생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몇 년 전 유행했던 광고 문구처럼 우리네 부모님들은 종종 자신의 찬란했던 대학생활을 들려주며 청춘을 즐기라고 말한다. ‘우리 때는 학점이 좋지 않아도 기업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했다’는 말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그저 호시절의 전설 정도로만 느껴진다. 
 
  졸업 후 백수가 되지 않을까 불안한 대학생들에게 인생을 즐기라는 부모님의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린다. 더군다나 인생을 즐기라는 조언을 건네는 것이 ‘신용카드’ 광고임을 생각해보면 그 불안의 진원은 더욱 확실해진다. 신용카드를 쓸 수 있다는 건 경제활동인구가 되었다는 것, 즉 돈을 벌 수 있는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인데, 요즘 같은 상황에 돈 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인생을 즐기라는 부모님의 말처럼 얼마나 어려운 숙제인가. 돈이 있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요즘의 생리상, 대학생들의 팍팍한 삶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의해 그 숨을 유지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학점에 플러스 한 번 달아보겠다고 교수님께 눈물 젖은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대외활동에 붙기 위해 ‘전 공부벌레는 아니에요’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궁극적으론 취업에 대한 불안이 그 동력이다. 요즘의 청년세대들은 불안을 연료로 취업을 향해 주행거리를 매일 조금씩 늘려간다. 연료는 떨어질 틈이 없다. 
 
  보통 부푼 꿈을 안고 입학한 대학 새내기와 헌내기 초입에서는 ‘진로’에 대한 불안이 대학 생활을 가득 채운다.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으레 하는 준비운동이랄까. 그중 복수전공은 많은 대학생들이 고심해 선택하는 가장 기본적인 취업 준비운동 중 하나다. 취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라는 생각에서다. “복수전공을 신청할 때 친구들은 다들 자신의 길을 찾아서 가는데 저는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박지수 학생(프랑스어문학전공 2) 역시 복수전공 신청기간 동안 뚜렷한 목표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불안해했다. 복수전공이 취업에 중요한 요소인 만큼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 그 목표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초조함을 느꼈다. 그러나 윽박지른다고 진로가 하늘에서 턱 하니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박경원 학생(경영학부 4) 또한 진로를 찾지 못했다는 생각에 노는 것마저 편치 않은 새내기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초장부터 정해놓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신입생 생활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자유 대신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목표든 정해야만 하는 조급함과 불안감으로 가득 차 버린다. “1학년 겨울방학부터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기업 회계부서에서 일했어요.” 진로를 찾겠다고 경험한 회계 업무였다. 그러나 박경원 학생은 회계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방황의 길에 올라야 했다.  
 
  그래도 반동은 항상 존재한다. ‘신입생의 특권은 노는 것이다’라는 믿음 아래 누구보다 치열하게 믿음을 증명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혈기왕성하던 신입생들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업에 가까워질수록 불안과 걱정의 세계로 도피한다. ‘군대 갔다 오더니 철들었네’라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불안해하면서도 취업에 필요한 일들을 착실히 진행한다. 청년 실업 앞에선 그것이 철든 행동이다. 신입생 시절 누구보다 낭만을 즐겼다는 한지환 학생(광고홍보학과 3)은 군대를 다녀온 후 이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 대신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금은 무엇을 하기 전에 일단 고민부터 하게 돼요.” 아무리 놀고 싶어도 ‘지금 이것을 해도 되나’하는 불안이 ‘즐기고 싶은 욕구’를 추월하는 것이다. 결국 취업을 위해 항상 도서관을 선택한다.
 
  대학생들의 불안은 3학년에 정점을 찍는다. 취업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전 압박감이 극에 달하는 시점이다. 여태까지 쌓아놓은 것도 없고, 확실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덜컥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나는 것이다. “그동안 축구만 하고 술만 마셨지 준비된 것이 전혀 없었어요.” 조용우 동문(광고홍보학과 08학번) 역시 3학년 시기에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4학년 취업 전선에 참전할 준비가 되지 않은 3학년은 어영부영 전쟁터에 끌려와 겁에 질린 학도병 신세와 비슷했다. 1년 후면 기업으로부터 자신의 ‘쓸모 있음’이 합격과 탈락으로 결정되기에 덜컥 겁이 났다. 
 
  이설화 학생(가명·경영경제대)은 4학년 1학기를 등록하지 않고 휴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오히려 불안은 더욱 커져갔다. “진로를 찾으려 책도 읽고 여행도 하며 내적인 역량을 키우려고 해봤죠. 근데 인턴이나 대외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SNS에 올린 글이나 사진을 보면 너무나도 조급함이 들더라고요.” 불안하고 우울한 휴학기간은 취업 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잠시 유예했을 뿐이었다. 휴학을 한다고 해도 불안감은 멈추지 않는다.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취업에서 시간은 금이고 나이는 다이아다. 기회비용이 큰 만큼 휴학 기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압박이 가득했다. 백가영 학생(가명·인문대) 역시 “휴학을 하더라도 적성을 찾을 수 있을지, 시간만 버리는 것은 아닐지, 의미 없는 스펙만 쌓는 것은 아닐지 두렵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휴학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도 있다. 한지환 학생은 지금 휴학을 망설이고 있다. 실패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 ‘모험을 해야 할 때’라고 하지만 익숙해진 학교에 머물러 펜을 쥐는 것이 더 마음이 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정윤 학생(역사학과 4)은 실질적인 고민 중이다. 방송국 입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치열한 입사경쟁에 불안이 앞선다. “방송 분야를 진로로 정하고 관련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도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방송국은 특출난 사람을 뽑는다는 생각에 불안합니다.” 역량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대외활동에서 자신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고 불안감이 든 것이다. 취업 경쟁은 자기 자신을 수직적으로 줄 서게 했다. ‘뛰어난 사람이 정말 많아요’라고 말하는 한정윤 학생은 자신이 몇 번째 줄에 서 있는지 확인하고는 또다시 좌절에 빠진다. 
 
  한편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단지 전공이 인문학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더 큰 불안을 떠안아야 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취업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공대나 상경계열이었으면 걱정이 덜 했을 거예요. 인문대에서 좋아하는 공부를 했지만 졸업할 때가 되니 불안감만 남았네요.” 인문학 전공자가 취업경쟁력에서 밀린다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불안한 대학 생활을 더 격렬히 요동치게 한다. 박지수 학생은 “불어를 더 공부하고 싶어서 지금의 전공을 선택했는데 ‘그걸로 뭐 먹고 살래’라고 주변에서 말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취업을 한다고 해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업을 해도 내가 취직한 곳이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할 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조용우 동문은 “취업은 끝을 알 수 없는 게임과 같다”고 말한다. 불안정한 사회는 불안한 4년을 보내게 하고 더 큰 불안으로 사회를 맞게 한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불안뿐인 지금, 아버지 세대처럼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대학에서 배우기는 힘들어 보인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