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끝이 향하는 곳
  • 안지연 기자
  • 승인 2015.05.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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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의 노래』김훈 | 문학동네 | 398쪽

 
 ‘박용성 전 이사장 사퇴’, ‘박범훈 전 총장 검찰 소환’ 등 여러 사건으로 유달리 혼란스러운 시험기간을 보낸 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대형서점에 들렀다. 『처음 리더가 된 당신에게』, 『리더의 조건』 등 현대사회의 리더를 위한 책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그 책들을 제치고 눈길을 끌었던 책은 다름 아닌 『칼의 노래』였다. 4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남기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궁금했다.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옵니다. 신의 몸이 죽지 않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가망이 없는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임금의 유시를 이순신 장군은 단호히 거절한다.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의 처지에 임금의 명을 거부했던 용기는 바다를 지켜야 하는 무장(武將)의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강직한 무장 이순신 뒤에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이 있었다. 칠전량 해전에서 물러났던 배설 장군, 자신의 셋째 아들 면을 죽인 일본인 포로 등을 베고 싶은 순간에도 그의 칼은 항상 적진을 향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칼은 항상 징징대며 울었다. 칼이 울 때 마다 그는 괴로웠다. ‘베어야 하나, 베어야 한다’에서 ‘아직은 아니다’로 귀결되는 그의 내적갈등은 칼을 꺼내고 싶어도 억눌러야 하는 무장의 고통이 잘 나타난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은 이 칼끝의 떨림에서 시작된다. 치열한 전쟁 말고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느낀 인생의 무거움을 견디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원칙을 세워갈 수 있었다. 끊임없이 흔들린 이순신 장군은 마찬가지로 전란에 휩쓸리던 민초와 공감했다. 인간이 마찬가지로 적을 물리칠 땐 거침없이 휘두르지만, 칼이 칼집에 있을 땐 고민하는 인간으로서 백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려 했다.
 
 명량의 대첩지였던 우수영에서 고하도로 수군 진영을 옮길 때도 그는 조류의 흐름, 적의 동향을 파악함과 동시에 백성이 양식을 구하기 쉬운 자리인지를 살폈다. 작전구역에서 백성과 군관이 충돌할 때도 그는 백성들이 수월히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수로를 열어줬다.
 
 이순신 장군의 칼이 칼집에 있을 때와 휘두를 때가 분명했다면 박용성 전 이사장과 박범훈 전 총장의 칼은 원칙이 없었다. 길게 뺀 목을 치려다 제 목을 치기도 하고, 춤추던 칼이 결국 막대한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결국 박범훈 전 총장은 교육부 압력행사, 뇌물수수, 연수원 편법증여 등 6가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으며 박용성 전 이사장도 박범훈 전 총장에게 일종의 대가성 금품을 제공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검찰에 소환됐다. 또한 박용성 전 이사장의 부적절한 표현이 담긴 메일은 여론의 수많은 뭇매를 맞았다.
 
 중앙대 두 리더의 칼 끝이 향한 곳은 어디였을까. 아마 중앙대의 개혁을 통한 발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이들이 방향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 원칙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음을 보여줬다. 리더의 위치에 걸맞지 않은 도덕적으로 미숙한 모습이 드러났으며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과 그동안의 구조개혁은 학생들이 진정 원하는 방향을 파악하지 못했다.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리더십이 필요한 현재, ‘나으리의 몸이 수군의 몸입니다’라며 간곡한 부탁을 하는 부하 김수철의 말에 답하는 이순신 장군의 답에 울림이 깊다. “그렇지 않다. 수군의 몸이 나의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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