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부를 추구한지 벌써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계화와 수출주도의 성장을 통해 대기업의 수익성은 크게 개선됐다. 낙수효과의 기대에 따르면, 기업의 수익이 증가하면 노동자의 임금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성장의 과실을 노동자와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고 있다. 막대한 사내유보금과 저축액을 쌓아 놓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지 않으며, 직업창출이나 고용에는 인색하면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채용 등의 비용 축소에만 몰두하고 있다. 낮은 임금과 폭증하는 물가, 늘어가는 가계부채로 인해 노동자의 삶은 더욱 황폐해 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장의 낙수효과 담론은 단지 수사에 불과하며, 불평등 구조를 수호하기 위한 기만일 뿐이다. 
 
  우리나라 기업성장의 비밀이 재벌중심의 경제구조에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내용이다. 정부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기업성장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경제성장의 속도는 둔화됐고, 빈부격차와 불평등 수준은 크게 확대됐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친기업적 세제개편이다. 정부는 과세표준 구간의 조정과 세율 변경의 방법을 통해 기업에 막대한 법인세 감면의 혜택을 안겨줬다. 여기에 각종 세금감면 조치가 더해지면 기업이 실제 부담하는 실효법인세율은 더욱 감소된다. 정부는 대기업과 부유층의 소득 확대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지만, 누진적 조세체계와 적절한 재분배 정책을 활용해 시장소득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복지 예산을 지출하면서 아직도 복지에 ‘낙인’을 부여하며, 규제완화, 경쟁, 효율, 민간, 성장 등을 강조하는 미국식 모델을 철저하게 추종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만 비난할 일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 만연한 승자독식과 성과중심주의, 경쟁만을 강조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풍조도 문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동경하고 찬미하고 있다. 그들 중 다수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들이다. 부귀와 권세를 찬미하고 숭배하는 성향은 우리의 도덕적 감성을 타락하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쟁 대신 우호적 ‘협력’과 ‘연대’를 선택하자. 개인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기본적인 인식과 태도, 가치관을 새롭게 재구조화 시키자. 호혜와 평등, 공유, 상호 신뢰, 인정, 존중 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생에 대한 인간적인 갈망에 기대해 보자. 
 
  지난겨울 한 사립대학의 학생이 ‘최씨 아저씨’에게 보낸 협박성(?) 대자보의 내용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보호 강화 등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핵심은 우리 ‘같이’ 좀 살자는 것이었다. 우리 대학의 개혁과정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하는 말이다. 함께 소통하며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자. 구성원이 행복하지 않은 개혁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교성 교수
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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