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사람에게 한 눈에 반하는 일은 가능할까? 외모는 사랑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걸까? 얼마 전 까지 ‘눈이 너무 높아’ 연애를 못 한다는 말을 듣곤 했던 기자는 이상형과는 정반대의 못생긴 사람에게 한순간 매료되어 버리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구체적으로 그려두었던 내 남자의 청사진이 한순간의 느낌만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 원인으로 예쁘고 멋있는 외모가 작용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많은 이들이 벨라스케스의 회화 <시녀들>에서 시중을 받고 있는 예쁘장한 여자가 단연 왕녀일 것이라 여기는 것처럼, 주인공의 잘생긴 아버지가 코끼리를 닮은 엄마를 버리고 아름다운 새엄마와 결혼 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못생긴 추녀에게 한없이 잔인하다.
 
▲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6)>

그러나 소설가 박민규는 추녀에게 희망적이다. 그는 회화 속 구석진 곳에 존재감 없이 음산히 웅크리고 있는 여성에게 주목한다. 그는 좋아하는 남성 앞에서 자신의 못생김을 자책하며 흐느껴 우는 성녀로 추녀를 부활시킨다. 주인공 ‘나’를 사랑의 도가니에 빠트릴 만큼 추녀에게는 그녀의 외적결점을 뛰어넘게 하는 숨겨둔 매력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이성에게 매력을 끄는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게 규정되어 왔다. 사족보행의 시기에는 인간의 엉덩이가 가장 매력적인 부위였지만, 직립보행을 시작하게 되면서 인간의 시선은 몸의 배후가 아닌 앞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정면으로 부각되는 여성의 얼굴이나 가슴이 이성에게 어필하는 성적 신호기관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인간의 매력지점은 천차만별이다. 목이 긴 여성, 살집이 많은 여성, 발이 작은 여성이 미인의 전형이 되기도 한다.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도 사람마다 다르다. 겉으로 드러나는 미모가 타인의 관심을 자극하는 매력요건이라 여기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지만 아름다운 외모만이 사랑에 빠지게 하는 단 한 가지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설은 오늘날의 사회를 99명의 평범한 다수가 1명의 아름다운 소수를 동경하는 사회로 보고, 이것은 다수가 소수 아래의 위치로 스스로를 규정짓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책은 진정한 사랑을 외모에 가둬지지 않는 ‘상상하는 행위’로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상상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상상은 오히려 감각보다 사랑에 더 가깝다. 눈과 코, 귀와 살갗으로 느끼는 감각보다 상상은 오히려 사랑이라는 영역에 침투하기 쉽다. 상상을 통한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더욱 아름답고 멋있게 만드는 투사의 과정이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는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애인(愛人)을 그려내는 일종의 도식된 상상력의 산물과 같다.

이상형과는 전혀 다른 이를 마음에 품어버린 기자는 이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주인공이 추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기자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저기, 멀리, 어두운 뜰에 한 여자가 서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못생긴 박색(薄色)의 추녀지만, 멀리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안다. 추녀를 사랑하게 될 누군가는 ‘예뻐’와 ‘착해’로는 정의되지 않는 추녀만의 매력의 강을 건너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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