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변화 체감 못하는 청년세대,
정치적 환멸이 곧 무관심으로 이어지다

 
2015년 청년세대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55년 전 4월 19일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이념을 쟁취하고자 했던 청년들은 실어증에 걸린 가녀린 여주인공이 되었다. 더 이상 사회에 저항하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 두지 않는다. 입을 닫고 함께 저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공무원연금 개혁보다는 공무원 되는 방법에, 성완종 리스트보다는 대기업 공채 리스트에 더 관심을 가지며 정치와 이별을 선언했다. 인간은 애초에 정치적 동물이기에 무엇이 그들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기질마저 포기하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이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환멸이다. 상대에게 갖고 있던 꿈이나 환상이 깨지기 때문에 관계에도 금이 가는 것이다. 청년세대와 정치도 그런 관계로 볼 수 있다. 최용기 교수(창원대 법학과)는 정치에 대한 환멸이 결국 젊은이들의 정치참여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탁상공론과 전시행정으로 말은 많지만 체감할만한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는 정치에 대해 청년세대가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청년세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기에 그들은 시끄러운 정치에 대한 허무를 느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듯 책임은 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청년세대에게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청년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의 원인으로 오시영 교수(숭실대 법학과)는 세대의 전환을 꼽는다. 운동장에서 뛰놀던 기존 세대와는 다르게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게임기나 컴퓨터를 가지고 방안에 혼자 고립되어 온 세대다. 방안의 컴퓨터를 통해 그들은 무언가를 탐닉하고 무언가에 몰입한다. 이런 세대는 공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특징을 지니게 되고, 이들에게 사회 현상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 즉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게임기와 컴퓨터의 유혹이 가득한 방안에서 나가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또 게임기와 컴퓨터가 없는 곳으로 나가는 무의미한 일이다.

경제적 문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경제적 궁핍이야말로 관계를 어긋나게 한다. 최용기 교수 역시 젊은 세대의 빈곤을 청년세대의 정치무기력증의 원인으로 꼽는다. 등록금도 내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 청년세대에게 정치는 ‘밥’도 ‘떡’도 주지 않는 비실용적인 영역이다.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정치는 밥벌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딴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이기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문제다. 정치하는 데 있어 청년세대는 항상 하라는 대로 했다. 기득권 세력인 어른들에게 청년세대들은 항상 패배해 왔고 그것에 익숙해졌다. 계속 지다 보면 이기는 법을 까먹는 법이다. 이제 청년들은 패배자로서 기득권을 가진 어른들 밑에서 움직일 힘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답은 복잡하지 않다. 정치에 무관심해졌다면 정치에 다시 관심을 가지면 된다. 오시영 교수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연합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는 곧 쪽수 싸움입니다. 정치인들은 결국 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유권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되기 마련이죠”라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기존의 세력과 과감히 맞서는 사회변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조윤영 교수(정치국제학과)는 리더쉽 교육이 청년세대의 정치 무관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리더쉽 교육을 하는 것은 곧 책임감을 가르치는 행위다. 책임감은 곧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며 이것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견표명을 해야 한다는 의식을 학생에게 심어주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면 실질적인 성공 모델을 청년들에게 제시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오시영 교수는 기득권 세력에게 맞서 목소리를 내어 성공한 개인의 사례를 보여주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청년들은 구체적으로 자신만의 정치적 청사진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해줌으로써 청년들 스스로가 바람직한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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