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한국사회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식으로 얘기하면 우리 사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붕괴되고 침몰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과학은 발전하고 기술은 고도화되는데 왜 삶은 더 위태로워질까.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30년 전 이미 『위험사회』를 발표하면서 그 원인을 꿰뚫었다. ‘20세기를 결정지은 중요한 책’ 중 한권으로 뽑힌 이 책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를 홍윤기 교수(동국대 철학과)가 전해준다.
 
▲ 홍윤기 교수가 반사적 현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효석 기자
 
  과거 유럽인들은 백조가 무조건 하얗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1697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흑고니)를 처음 발견했고 유럽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때까지 발견된 모든 백조는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충격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가해질 때 가장 타격이 크다. 2007년 월가(Wall Street)의 허상을 통렬히 파헤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경제학 교수는 ‘블랙스완’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거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는 사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가 블랙스완이 도처에 숨어있는 ‘위험사회’라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한 ‘위험’의 의미와 그것을 막기 위한 대책은 무엇일까.
 
제목과 부제에 관해
 『위험사회』에 대한 이해는 ‘위험’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위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Danger’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제를 영어로 번역하면 ‘Risk Society’며 이는 Danger로 이해했을 때와 미묘한 의미 차이가 존재한다. 리스크는 보험업계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보험액을 산정할 때 보험회사가 감수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생명보험의 경우 80살 고객은 리스크가 높게, 20세는 적게 산정되는 방식이다. 즉 Danger가 명백하게 현전해 있는 위험이라면, 리스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잠재적 위험을 의미한다.
 
  벡은 리스크 개념의 의미를 확대한다.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어 특정 사회·문명의 구체적인 위험성을 재는 측정기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다 정확한 책의 제목은 ‘위험담보사회’, 혹은 ‘위험감수사회’ 로 해야 한다.
 
  홍윤기 교수는 부제인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덧붙였다. 제목을 고려할 때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는 마치 벡이 위험사회의 대안이 되는 새로운 근대성을 추구한다는 함의를 담게 된다. 그러나 부제를 ‘또 다른 현대를 뚫고 들어가다’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벡이 보기에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현대가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현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험사회』는 또 다른 현대로 걸어 들어가 보는 책이다.
 
현대화의 과정과 위험사회
  오늘날의 현대화는 하나가 아닌 다양한 근원에서 형성됐다. 르네상스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고, 종교개혁은 기존의 가톨릭주의에서 개인을 기반으로 한 프로테스탄티즘으로 변화시켰으며 산업혁명은 생산력 증대를 통해 산업적 기반을 조성했다. 국가마다 현대화가 진행된 시기도 다르다. 과거 완성된 봉건제도를 형성하고 있던 조선이 서양 문물을 통해 현대화를 받아들인 일본과 충돌했듯 말이다.
 
  다양한 양상에도 불구하고 현대화가 갖는 기본적인 공통 속성이 있다. 인간의 자연 극복이라는 점이다. 현대화는 인간이라는 주체가 자연이라는 객체에 승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는 인간이 풍요로워지는 과정이다. 부를 축적해 국가가 부강해지고 과학이 발전하며 민주주의가 확산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현대화의 단면만을 본 시각이다. 벡은 『위험사회』에서 현대화의 이면에 주목한다. 1984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돼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유출됐다. 당시 소련은 붕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20만 명의 주민을 동원해 해당 지역을 시멘트로 부으며 치부를 감춘 것이다. 그러나 방사능 낙진은 새어나가 유럽에 뿌려졌고 세계적인 문제로 확대됐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고르바초프는 나중에서야 서방에 도움을 요청했고, 소련은 폐쇄적 경제를 개방하게 된다. 문제는 당시 소련 사회 내부적으로 억눌려있던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민족갈등이 촉발되고, 일률적인 생산라인은 개방경제를 버티지 못하고 파산했다. 결국 소련은 70년 만에 주저앉는다. 원자력 발전소 하나가 당시 최신의 과학 기술을 보유했던 거대 제국을 무너뜨렸다. 소련의 붕괴는 그동안 안전하고 풍요롭다고 믿었던 현대를 의심하고 재고하라고 경고한다.
 
  현대는 단순하게 단층으로 구성돼 있지 않다. 안전한 사회라고 믿었던 현대를 ‘1차 현대’라고 한다면 시한폭탄 같은 위험사회는 ‘2차 현대’로서 그 이면에 존재한다. 1차 현대가 발전해 그 뒤로 2차 현대가 차후에 부수적으로 따라온다는 인식은 순진한 오해다. 현대의 발전과 리스크는 항상 겹층으로 존재하며, 특히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리스크는 발전 정도의 제곱만큼 증가한다.
 
  현대에서 최첨단 운송수단은 비행기다. 안전한 탈것이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그 안의 승객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Danger하지는 않지만 리스크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우주선은 어떨까. 하이테크의 절정으로 만들어진 우주선은 가장 정교한 과학기술로 최고의 안전성을 고려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주공간에서 작은 사고라도 발생하면 탑승객들의 생존을 점칠 수 없다.
 
반사적 현대와 지식의 정치
  2차 현대는 1차 현대의 반사적(Reflective) 결과다. 발전과 리스크는 거울에 비친 상처럼 하나로 붙어있다는 의미다. 과학의 발전이 사회를 안정시켜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와 달리 그 결과는 결국 현대인에게 재앙으로 돌아오지 않던가. 간혹 ‘Reflective’를 ‘성찰적’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벡은 해결책으로 단순히 철학적 성찰을 주장하지 않았다. 문명의 발전에 반사적으로 동반하는 리스크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함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리스크는 실체화되기 전에 알아채기 힘들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이 지식이다. 2006년 부안에 핵폐기장을 유치하려던 계획이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후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사건 등을 보면 시위자들이 핵폐기장의 위험성에 대해 올바르게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지식을 기반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지식의 정치’다.
 
  문제는 현대가 턱없이 복잡하고 방대한 지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한번은 미국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천재 수학자들로 하여금 투자 상품의 모기지를 설계하도록 한 적이 있다. 머리를 싸매고 계산했지만 결국 발생하는 변수를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게 됐다. 어찌됐든 금융 시스템은 굴러갔지만 빚은 늘고 신용은 불안정해져 결국 시스템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미국의 금융위기가 한국경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매우 방대한 양의 지식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표시도 없이 떠도는 유전자조작식품을 섭취했을 때 인간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식 습득을 방해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수 년 전 광고에서 원자력에너지가 청정에너지라고 선전하는 광고가 있었다. 이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원자력발전소 폭발의 공포를 경험한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프로파간다는 원자력에 관해 잘못된 지식을 주입하려 한다. 이는 지식을 오도하는 것이며 정치 행위자로 하여금 잘못된 정치적 결정을 야기한다. 즉, 현대사회에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선 발전 속도에 맞게 지식을 쌓는 것 못지않게 올바른 지식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정치
  현대의 문제는 마치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어 잠재 리스크를 파악하기 어렵다. 동시에 리스크를 파악하기 위한 정치지식의 양과 수준도 상당하다. 소수의 직업 정치가들만으로는 대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민정치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단순한 참여도 제고를 넘어 시민들의 지식수준을 끌어올려 하위정치(Subpolitik)를 구성하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편재하는 시민들이 지식을 통해 정치 행위를 해야 급격한 기술·사회발전에 발맞춰 증대하는 파생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다.
 
  정치의 범위도 넓혀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 중 지역적인 문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국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메커니즘에 의해 리스크가 알 수 없는 경로로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황사문제가 중국과의 외교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듯이 말이다. 이에 따라 지역문제라 하더라도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연계된 정치행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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