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5년 서울캠 새내기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안성교정에서 생활하다 이번학기부터 서울캠으로 연구실이 이전되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차츰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말수가 많아졌고, 걸음걸이가 빨라졌고, 그리고 운전도 조금은 거칠어진 것 같습니다. 이번학기도 월요일 교양학부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번 안성교정에 갑니다. 지난 월요일 이미 영신기념관으로 이어지는 수상무대 옆길에는 벚꽃이 활짝 피기 시작해서 학생들이 공강 시간에 나와 봄꽃의 향연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친 후 오랜 세월 머물렀던 원형관의 옛 연구실을 치우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잠깐 목적지가 몇 층인지 망설여졌습니다. 눈을 감고도 위치를 알았던 6층 버튼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아, 나도 이제 이곳에선 이방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해오던 대로 저녁시간 학교 테니스코트에서 정겨운 교수님들과의 운동을 마치고 교수회관에 씻으러 들렀을 때, 세면대 위에 처음 보는 큼지막한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아침운동을 할 때 사용하려고 가져다 두었던 고물 탁상시계를 교수회관 미화원분께서 실수로 떨어뜨리시고는 저를 위해 새로 가져다 두셨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는데 이렇게 따뜻한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돌아보면 안성교정에서 생활한 지난 세월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봄의 화사한 꽃나무들, 여름의 푸름, 캠퍼스를 노랗게 물들이던 가을의 은행나무, 그리고 백색의 눈 내린 교정, 모두 저의 걸음을 멈추게 했던 아름다운 모습들입니다. 그 품안에서 저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캠퍼스 생활의 낭만과 여유로움을 향유하면서 자신의 꿈을 한껏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든 안성교정은 이제 폐쇄된 건물과 빈 연구실들로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어디에서나 줄을 서서 다녀야하는 서울캠 학생들과 안성교정의 텅 비어 가는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한 번쯤 서울캠 학생들도 안성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됩니다.

 몇몇 외국 대학처럼 신입생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끔 우리 신입생들도 한 학기 정도 안성교정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외국어와 필수교양들을 집중적으로 익힐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져 봅니다. 안성교정에 인접한 내리 학사촌의 좋은 사설 시설을 지정하여 필요한 기숙 공간을 확보한다면 주변도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겠고, 서울캠도 얼마간 여유로움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월요일 안성교정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서울로 떠나올 때 교문 안내소를 지키고 계시는 친숙한 방호원분께서 저를 알아보시고 반가운 얼굴로 한 말씀 건네 주셨습니다. “교수님, 서울 가시더니 얼굴이 하얘지셨네요.”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안성교정에서 공찬 지가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습니다.
 
백훈 교수
정치국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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