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년째다. 학교에 오랜 기간 머물다 보면 새 학기에 반복적으로 듣는 질문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중대 앞에는 맛집이 어디 있나요?’, ‘중대 앞은 어디서 놀면 좋을까요?’와 같은 질문들이 그중 일부다.

 너무나 뻔하고 가벼운 질문이지만 누구에게나 해소가 필요한 부분이기에, 지난주 중대신문을 넘기며 ‘시시각각 맛집’이라는 기사의 제목을 마주했을 때 잠시지만 내심 반가웠다. 학교 앞의 맛집을 소개해주는 간단한 기사 하나로 메마른 중대 앞을 단숨에 갈 곳이 넘치는 오아시스로 변화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술면에 실렸던 해당 기사는 그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을 뿐, 기대와는 방향을 달리하고 있었다.

 중대신문이 중앙대학교의 학내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학술면을 통해 학생들의 지식을 고양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는 것 또한 공감할 만한 부분이다. 더불어 학내 구성원을 통해 그 내용을 채워 넣는 중대신문의 모습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호의 중대신문 또한 학교의 구조조정 문제와 비리 의혹, 다양한 학술 지식 등이 실려, 독자 입장에서 풍성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다 작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학교 안의 중점적인 사안을 보도하는 것에는 충실하지만, 학생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디테일한 사안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주고 있을까. 지난 몇 주간의 중대신문을 보면 3, 4월의 신입생이나 편입생, 혹은 학교를 오랜만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궁금해 할만한 중대 주변의 무언가에 대한 기사를 찾기는 힘들었다. 반면 문화면이나 기획면을 살펴보면 여느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의 기사들이 실려 있었다.

 어째서 보도면이나 학술면은 ‘중대’신문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다른 부분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것일까. 몇 년째 고정된 포맷으로 흘러가는 여론면에 학내 구성원들의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싣는 것만으로도 학교 앞의 다양한 맛집을 알릴 수 있다. 문화면을 통해 강남의 미술관이나 홍대 앞의 공연을 소개하는 것보다 흑석동의 꽃놀이 장소를 소개해 주는 것이 독자에게 더욱 유익할 수도 있다. 밑단의 작은 공간에 수업을 통해 배운 마그리트나 고흐의 그림을 평하는 것보다 서울캠 정문의 조각상을 조사하고 직접 평가해 보는 것이 기자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커다란 숲만을 보다가는 나뭇가지에 달린 아름다운 꽃은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무언가 커다란 사안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생활과 관련된 아주 사소한 부분의 정보가 궁핍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신문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임을 감안했을 때, 중대신문이 ‘중대’신문이니까 해야 하는 일에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비교적 작은 사안에 대한 관심 또한 추가하기를 바라본다.

이상준 학생
역사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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