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걷는 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식후 한 잔의 커피도, 한 권의 전공 서적도 아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은 이제 우리에게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만큼이나 일상 생활을 함께하는 존재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듯 하다. 도대체 스마트폰은 얼마큼 우리 삶에 깊숙이 개입해 있는 것일까? 스마트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담아 보았다.


스마트폰의 사용이 ‘스마트함’의 반증이 된 사회
미래학자 커즈와일은
인간 두뇌의 인공지능화를 이야기하기도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라는 이름의 장치가 있었다. 노트북 이래 소지가 가능하고, 환경에 구애없이 손바닥에 올려놓고 볼 수 있는 전자계산기만한 컴퓨터였다. 사이즈 외에 노트북을 능가하는 획기적인 기능을 꼽으라면 바로 터치스크린이었다. PDA에 이동통신기능을 더하고 나서, PDA폰이 말 그대로 스마트한 디지털 조수가 되었다. 이동통신표준이 2세대일 때 이미 PDA폰을 사용했으나 3세대, 4세대가 되면서 단말기의 계산능력과 비서로서의 역량은 나날이 스마트, 더 스마트해지고 있다.

스마트와 인공지능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스마트함’을 좋아한다. 전화기에 컴퓨터 기능이 더해졌다는 점과 그 작은 면적에서 필요한 기능을 찾아서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만든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다양한 통신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한다. 더불어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위하여 사용자 스스로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기술에 익숙해질 정도로 영민함이 입증된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스마트폰의 이용범위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으로 21세기의 문맹은 아니라는 함의가 퍼져있는 듯하다.
공상과학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긴장이란, 지극히 아날로그적 심성과 말랑말랑한 육체를 가진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이질감이다. 대부분의 SF가 미래사회의 양극화를 과장하여 보여줄 때, 자신은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방어적 착각을 한다. 접해본 적이 없는 테크놀로지에 대하여 자신이나 자신의 자손이 생소한 환경에서 유리한 입지에 서있을 것인지 가늠하면서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점에 SF 영화의 스릴이 있다.
스탠리 큐브릭이 새로운 밀레니엄을 예측하며 1968년에 만든 영화 <2001: A Space Odeysey>는 이미 2001년을 관통했다. 2001년에 다시 이 영화를 보는 열풍이 불었었는데, 영화에서 낯설게 그려낸 미래 인간들의 부자연스러운 생활상이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경탄스러웠다. 같은 해 스티븐 스필버그가 <A.I.: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영화를 만들어 내놓았는데, 이 역시 처음 구상은 1980년대에 큐브릭 감독의 기획이었다고 한다. 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해리슨 포드를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도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보았는데, 큐브릭이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만든 같은 해 1968년에 출간한 필립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원작이다.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한 로봇을 부르는 말로, 스마트폰의 OS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A.I.>와 <블레이드 러너>는 공통적으로 인공지능로봇의 관점에서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기술 발달의 끝판에 디스토피아의 도래가 가능할 것 같은 암시의 서늘함이 시종일관 흐르는 영화들이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시간적 배경은 2019년이다. 1968년에 필립 딕이, 1982년에 리들리 스콧이, 2001년에 내가 염려하던 미래가 아닐 것 같기는 하다만, 문득 ‘스마트’가 ‘인공지능’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각성되었다.

욕망의 분신
스마트폰이 잠식한 시장은 카메라, MP3, 전자사전, 종이책, 지도 등이 있고, 통계는 없지만 심심풀이 땅콩, 껌도 소비가 줄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아마 요즘 금연 성공사례에도 손을 떠나지 않는 스마트폰이 기여하지 않았을까? 스마트폰이든 피처폰이든 전화번호는 개인의 아이디가 되었고,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 무난한 사회생활에 핸드폰은 필수가 되었다. 즉, 핸드폰 회사는 팔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핸드폰을 팔았다. 핸드폰도 더 이상 팔리지 않을 것 같은 포화 상태이지만, 이상하게도 평균 3년 정도 쓰면 고장이 난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매하게 되는 동기는 두 가지 정도이다. 고치는 수리비용이 새로운 단말기의 구입보다 결코 경제적이지 않거나, 3년 후 스마트폰의 테크놀로지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나 만물인터넷(IoE: Internet of Everything)은 동기화라는 통제시스템을 원하는 사용자의 욕망과, 모든 사람에게 스마트폰을 팔고서, 모든 물건에게도 칩을 팔겠다는 기업의 욕망을 동시에 만족시키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은 충성스럽다. 사용자와 개인적으로만 상호작용하고, 컴퓨터의 속성대로 시킨 것만 하고, 주인이 모르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통신인데, 오프라인의 대화가 스마트폰 때문에 단절되는 예는 쉽게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SNS의 파급력이나 사람들이 스마트폰이 없을 때의 불안 심리에 대하여 논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항상 손에 들거나 자신의 시야범위에 스마트폰을 두려는 행동방식은 컴퓨터를 신체의 일부로 고려하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이미 해석되고 있다는 경고를 하고 싶다.
상용화된 것이 구글 글래스나 갤럭시 기어와 같이 착용하는 컴퓨터이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스마트폰이 습관성 중독이고, 타인과 연결되는 데에 옳지 않은 방법인 것 같아서 구글 글래스를 제작했다는데, 결국 글래스는 많은 문제를 지적받고 보급에 실패했고, 그의 말은 궤변이 되었다. [참고1] 하지만, 또 다른 충격적인 뉴스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를 지향하는 과정에 구글 글래스의 출현이 의미가 있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원이 시각피질에 이미지를 주입할 수 있는 직접신경 인터페이스를 개발 중이라고 보고했다. [참고2]

커즈와일의 미래학
커즈와일(Ray Kurzweil)은 미래학자이면서 구글에서 인공지능개발을 맡고 있는 디렉터이다. 지난 2월에 발표한 향후 25년에 대한 예측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참고 3].
● 2010년대 후반, 안경이 직접 망막에 이미지를 투사할 수 있음.
● 2020년대, Turing 테스트[*]를 통과하는 컴퓨터가 생기기 시작함.
● 2030년대, 가상현실이 100% 현실처럼 느껴지고, 인간의 마음과 의식을 소프트웨어처럼 업로드 할 수 있음.
● 2040년대, 비생물학적 지능이 생물학적 지능을 10억배 능가함.
● 2045년 이전까지, 인간은 대뇌의 신피질을 클라우드에 있는 합성 신피질과 무선으로 연결함으로써, 자신의 지능을 10억배까지 개선시킬 수 있다.
빌 게이츠가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가장 예측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일컬은 커즈와일은 인터넷에 인간의 두뇌를 무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참고 4]. 나노기술은 가속발전하고, 몸의 일부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사용하던 인류는 나노봇이 주입된 하이브리드 뇌를 가지고 인공지능의 클라우드에 접속하는 스마트폰 자체가 된다는 뜻이다. 당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업로드해서 전송하는 텔레파시가 실현된다. 두렵지만, 상상하기 어렵지만, 통신회사와 단말기회사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스마트폰을 팔고 나면, 더욱 인체와 일체감을 주는 컴퓨터를 만들어 팔 것이라는 점은 미래학자의 말보다 더 설득력 있다. 소비자는 문제없이 훈련 중이다. “Get ready for hybrid thinking.”

 

 

[참고1] BLOTER.NET, 오원석, ‘구글글래스’의 5가지 숙제, 2015.01.20
[참고2] BLOTER.NET, 이성규 “인간 기억, 컴퓨터에 업로드” 커즈와일이 옳았나, 2015.02.25
[참고3] http://www.inquisitr.com/1805304/ Ray Kurzweil predicts some fantastic thins coming in the next 25 years.
[참고4] http://www.ted.com/talks/ray_kurzweil_ get_ready_ for_hybrid_thinking
[*] 인공지능이 인간지능과 얼마나 비슷한지 알아보기 위해 하는 테스
트.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지능을 보이는 첫 번째 컴퓨터에 뢰브너
메달과 10만달러 상금이 걸려 있음. 

김시연 교수
중앙대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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