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 부채 = 취업?
  • 노채은 기자
  • 승인 2015.04.0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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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와사회>, 어떻게 들었니?
  
 
쿠키살롱은 쿠키(Cookie)와 살롱(Salon)의 합성어로 쿠키를 먹으면서 학생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도 해보고 친구도 사귀어보자는 의도로 기획됐습니다. 이번 주 주제는 ‘<회계와사회>, 어떻게 들었니?’입니다. 다른 대학에는 없는 중앙대만의 공통교양과목이 있습니다. 바로 <회계와사회>인데요. 어느 때보다 취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대학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역할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사회의 요구에 따라 학생들의 취업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것일까요? <회계와사회>를 수강했던 중앙대생들에게 들어봤습니다.
 

  대학도 무시할 수 없는 취업역량강화
  거절할 수 없는 호의는 집착과 폭력 될 수 있어
 
 
 
: 안녕하세요. 중대신문 시사기획부 차장 노채은입니다.
우삼: 중대신문 시사기획부 부장 심우삼입니다.
준희: 안녕하세요! 경영학부 13학번 한준희입니다.
태영: 독일어문학전공 12학번 김태영입니다.
김지: 도시시스템공학전공 14학번 김지훈입니다.
노: 이번주 쿠키살롱 주제는 ‘<회계와사회>, 어떻게 들었니?’입니다.
 
<회계와사회>, 학점 잘 받았어?
노: 다들 <회계와사회> 들으셨나요?
한: 중앙대 하면 다들 <회계와사회> 얘기를 먼저 하더라고요. 저는 경영학부니까 <회계와사회> 대신 <회계학원론>을 들었어요. 근데 <인사관리>나 <경제학원론>같은 경영학부의 다른 과목들은 생각할 요소가 있는데 회계는 생각할 것이 없더라고요. 그냥 숫자를 어떻게 계산할지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빡빡한 과목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김: 저는 수학에 약해요. 근데 <회계와사회>를 들어야 하는 건 그렇게 싫어하는 수학을 또 해야 되는 것이잖아요. 더군다나 시험도 사지선다형 문제로 치르다 보니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 보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어요. 속으로 그랬죠. “말도 안 돼! 무슨 소리야!”
한: 많이 지루하더라고요. 단순히 사칙연산을 어떻게 하는지를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딱딱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김: 저는 교수님들이 열정적으로 가르치셔서 굉장히 죄스러웠어요. 심지어 교수님께서 “여러분! 지금 전공과 관련 없는 회계를 듣게 돼서 불만스러운 것은 알지만 가능한 재밌게 가봅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듣기는 싫은데 교수님이 열심히 하시니까 죄송하더라고요. 사실 앞으로 회계와 관련이 없는 일을 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도 의욕을 갖기 힘드실 텐데 말이에요.
한: 생각해보면 다른 경영학 수업들과 달리 회계는 회계할 때 아니면 쓸 일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학문과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거죠. 예전에 용돈기입장을 쓰면서 ‘이걸 회계로 써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요.
 
<회계와사회> 취업역량 강화될까
한: 제가 <회계학원론>을 배울 때 교수님이 회계는 경영학의 언어라고 말씀하셨어요. CEO나 경영인이 어떤 판단을 할 때 보통 비용이나 자산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데 그때 필요한 기술이 회계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경영학부에 있어서는 필요한 학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독일어문학전공인 김태영 학우가 왜 배워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김: 취직을 한다고 가정을 해볼게요. 과연 면접관이 ‘오, 자네는 독일어문학을 전공했는데 회계까지 배웠군! 이런 대단한 인재라니! 좋아, 자네 채용!’ 이럴까요? 그냥 경영학부 애들 뽑을 거란 말이에요. 대학은 취업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회계와사회>를 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란 거죠.
심: 근데 우리 사회가 전공의 특성을 살릴 수 없는 구조잖아요. 그래서 대부분 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하려고 한단 말이에요. 기업의 일을 하는데 있어 회계는 중요한 요소인데 지금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그렇게 취업과 엇나간 정책일까요?
김: 원하는 사람은 배우면 좋죠. 뭐든지 원하는 걸 배워서 나쁠 것은 없어요. 하다못해 바퀴벌레 뒷다리에 난 털을 연구해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연 그 사람이 그걸 원하고 있는 가죠.
한: 대학의 장점은 고등학교와 달리 관심 있는 공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계와사회>는 선택의 영역도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전공 공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나요? 개인적 만족의 측면에서도 어긋난 부분이 많지 않나요?
김: 대학이 취업학교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근데 그것과 별개로 대학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 사람이라면 대학이 그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실정이야 어떻든 대학은 원래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잖아요.
훈: 대학이 취업학교가 된 데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대학 이름에 따라서 사람의 지식 수준을 판단하는 사회잖아요.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무조건 대학을 갈 필요는 없죠.
김: 그렇지만 취업과 무관한 것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온 사람들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필요도 충족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취업을 위해 대학을 온 사람들은 취업학교로서의 대학을 다닐 권리가 있어요. 왜냐하면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하니까. 하지만 딴 것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요구를 내칠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죠. <회계와사회>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워낙 취업에 목매고 있으니까요.
심: 그걸 강제하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죠? 그럼 교양영어수업이나 <글쓰기>, <독서와토론>도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 봐야하는 건가요?
김: <독서와토론>, <글쓰기>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어느 학과를 가더라도 정말 필요하니까요. 학문을 배우는 입장에서 보면 앞에서 말한 과목들은 필요하지 않나요?
한: 신입사원이 된다고 해서 회계장부를 다루는 것은 아니잖아요. CPA를 딸 사람들은 알아서 공부를 하겠죠. 근데 유럽문화학부에 있는 사람이 왜 <회계와사회>를 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김: 누군가는 제 전공인 독어독문학을 보고 ‘그런 거 하려고 대학을 갔냐’고 비아냥거리겠죠. 하지만 저는 그 학문을 위해 대학에 온 거예요. 등록금을 내는 저 같은 학생의 요구도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어요.
심: <회계와사회>는 전문적인 회계의 영역을 가르쳐 준다기보다는 교양과목으로써 기업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감각을 키워주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김: 근데 자본주의의 논리와는 상관없는, 심지어 그것에 반하는 것을 배우러 대학에 오는 사람도 있어요. 취업역량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건 알아서 하겠다는 거죠. 다들 취업에 도움 되는 스펙 쌓느라 정신없잖아요. 정말로 <회계와사회> 한 번 수강한 것이 나에게 빛나는 중요한 스펙이 될까요?
대학은 기본 교양을 갖춘 ‘사고하는 인간’을 만드는 곳이에요. 하지만 <회계와사회>는 학문의 전당에서 필요한 기본교양이 아니죠.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기본교양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다른 교양과는 다르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회계와사회>를 배우는 것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대학이 기업 논리나 효율의 논리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마지막으로 직업교육이라는 명분에도 의문이 들어요. 기업의 사무직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아니잖아요. 직업교육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원하는 직업에 맞는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맞죠.
 
나는 유대인이 아니니까
하지만 화살은 돌아온다

심: 취업역량을 강화해달라는 대다수 학생들의 요구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소수 학생들의 권리를 억압할 수도 없잖아요. 두 집단 모두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한: 다수냐 소수냐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두 종류의 학생이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두 종류가 있으니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맞죠. 그런데 한쪽만 우위를 주고 그 입장만을 강제시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잘해줄 때 내가 수용할지 거절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친절이 맞아요. 하지만 내가 거절하지 못하는 호의라면 그건 집착이나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죠.
김: 대다수가 원한다는 것을 이유로 선택권을 빼앗는 것은 이상한 것 같아요.
한: 선택보다는 강제가 훨씬 더 힘들다고 생각해요. 선택은 그냥 ‘여기다 놓을게 알아서 먹어’ 하면 되지만 강제는 들어서 입까지 떠먹여줘야 하잖아요. 학교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행동 같고 학생들도 그렇게 원하는 것 같진 않아요. 도대체 누구한테 이득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심: 근데 소수를 위해 선택지를 마련한다는 것은 상당한 비용이 드는 일이잖아요. 소수를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 않나요?
김: 소수자를 배려하는 것은 건전한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에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소수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대학은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기도 하고요.
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옆집 유대인이 잡혀가는데 난 유대인이 아니라….
김: 제대로 읽어드릴게요. ‘나치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를 잡으러 왔을 때도 나는 침묵했다. 난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잡으러 왔을 때도 난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난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으러 왔을 때도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그들이 날 잡으러 왔을 때 날 위해 변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한: 맞아요. 저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언젠가는 나에게 화살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선택의 부재라는 것은 되게 진부한 문제잖아요. 근데 아직까지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해요.
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죠. 선택권 부재의 문제가 사실은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기 때문일 수 있어요. 또 정말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선택권의 부재라는 간단한 말로 요약해버리기 때문일 수도 있죠.
한: 제가 동아리 회장을 하고 있는데 저 자체도 동아리원들에게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럽네요.
김: 그건 동아리가 자기 선택권을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죠. 근데 중앙대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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