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반역>_르네 마그리트, 1929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다
가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만약에 ‘파이프’라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사이퍼’와 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사이퍼는 현실 세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동료들을 배신한다. 그는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유명한 배우다. 클래식이 나오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부드러운 육질의 스테이크를 썰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스테이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내가 이걸 입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나의 뇌로 이게 아주 부드럽고 맛있다고 말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9년이란 세월을 보낸 후에 내가 깨달은 게 뭔지 알아? 무지가 바로 행복이라는 거야.”

 다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돌아가자. 이 그림 밑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파이프가 파이프가 아니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이 그림을 그린 마그리트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것은 파이프를 그린 그림(재현·가상·이미지)이지 결코 파이프가 아니다.” 이제 조금씩 감이 잡힌다. 단순한 말장난 같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재현이고 가상이며 이미지다. 즉 미술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다. 이 그림에는 파이프라는 대상이 갖는 어떤 속성도 없다.

 가상임을 알면서도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오래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철학은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탐구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다.” 그가 말하는 ‘시’란 모든 예술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현실을 모방하는 시는 물론 가상이긴 하지만 보편성과 개연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때로는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보편성과 개연성을 확보하는 시가 때로는 더 진리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책 『시학』에서 밝혔듯이 시가 보편성과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플롯(Plot)’이다. 플롯을 번역하면 서사구조 정도가 된다. 플롯을 갖추고 있는 가상은 우리를 그 상황이 자신의 경험인 것처럼 느껴 반응케 한다. 우리는 이것이 가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현실처럼 반응한다. 만약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데 공포와 연민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져 감정이 해소된다고 말한다면 좀 무서운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극을 지금도 읽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가상임을 안다. 아니, 우린 가상이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현실 모방론’은 다시 뒤집어진다. 가상은 이제 현실을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실과 가상 간의 위계를 위협한다. 현대는 ‘이미지 소비사회’라는 것이 장 보드리야르의 말이다. 이미 가상과 허구, 이미지로서 모든 것이 대체되는 사회다. 스타벅스의 ‘터무니 없는’ 원가를 자신만 알고 있는 것처럼 젠체하며 말한다면 모두가 허무해진다. 알면서도 우리는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신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커피맛보다도 스타벅스가 주는 이미지다. 우린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뉴요커’가 만들어내는 그 이미지를 구매하는 것이다. 가상과 이미지들은 우리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급기야 가상은 현실을 대체하고 주변부로 밀려난 현실은 간혹 가상성을 폭로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이퍼’와 같은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현실에서 ‘트리니티’를 좋아했지만 그에게 거부당한다. 더군다나 ‘모피어스’처럼 권력과 식견을 가지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매트릭스와 현실은 모든 감각적인 면에서 일치한다. 두뇌의 물리적 상태가 곧 정신 상태다. 매트릭스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자유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단, 그 매트릭스 시스템을 탈출하거나 깨부수는 자유만은 허락되지 않는다). 유명한 배우가 되고 돈과 명예, 사랑 모두를 가질 수 있다. 단순히 육체적·동물적 쾌락이 아니다. 물론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빨간 약’을 선택할 수 있을까? 포스트 모더니티 사회에서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우리는 이것이 파이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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