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속담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
어 보면 `로마로 통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이 된다. 앞의 말이나
뒤의 말이 결국은 같은 뜻일는지 몰라도, 실은 그 뜻에도 차이가 날 뿐 아니
라, 뒤의 말이 보다 품이 넉넉하게 들린다.

세상 일이 대개 그런 것 같다.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가노라면 무언가 일을 하
나 이룰 것 같은 예감은 들지만, 대신 너무 숨가쁘고 여유가 없어, 산다는 일이
힘겹게만 느껴진다. 무언가 돌아가는 길은 없을까. 숨 한번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 제2캠퍼스는 다니기가 어려워서 문제이긴 해도, 일단 들어만 오면 넓고
시원한 자연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한결 여유롭게 다스려 준다. 거기에 공간배
치에도 여유가 있어 복작거리고 들볶이지 않아서 좋고, 넓은 잔디밭이 숨쉬기
를 편하게 해 주어 더욱 좋다.

잔디밭은 대학 캠퍼스에서 없어서는 안될 제3의 강의실이 아닐까 싶다. 수업
이 지루해질 때쯤 잔디밭에 앉아 분위기를 바꿔서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끼
리끼리 둘러 앉아 예술과 학문을 논하고 삶을 돌이켜 보는 자리가 되는가 하
면, 거기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도 불러보는 여유 또한 빼어 놓을 수 없는
학창 시절의 낭만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잔디밭이 너무 밟아대는 바람에 견디어 내지 못해 안타깝다. 외
국어대의 박 교수가 매일같이 잔디 밟는 학생들을 불러 타이르지만 잔디밭은
나날이 야위어만 가, 잔디를 거리낌없이 밟고 다니는 학생들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학생들만 탓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왜 잔
디밭을 그렇게 네모 반듯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왜 하필 사람들이 밟기 쉬운
자리에 깔았는지 모르겠다. 군 부대도 아닌데 두부모처럼 잘라 놓고 돌아가
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인간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가게 마련인 것을 무시한 사고 방식인 것이다. 물론, 돌아가는 여유도 우리
는 가져야 할지 모른다. 질러만 가는 것도 너무 숨가쁜 일이니까.

마찬가지로, 생각을 한번 돌려 보면 어떨까 싶다. 건물을 지어 놓고 서둘러 잔
디를 깔게 아니라, 건물을 지은 뒤 한 2, 3년 놓아 두면 자연히 사람들이 다니
는 길이 형성될 것이다. 그 다음에 사람들이 다니는 곳을 피해 잔대를 깔면 잔
디도 손상을 덜 입고 사람들도 편할 것이다. 꼭 네모로만 깔지 말고, 사람 다
니는 길을 피해 둥글게도 구불구불하게도 깔고, 자투리가 생기면 그 자투리
에, 넓은 공간엔 또 넓게 깔면 자연스러워서 더 좋을 것이고. 이상하게도, 사
람들에게는 소위 관행과 인습을 미신처럼 따르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남들
의 행태를 도습함으로써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에 크게 안심하고 비로소
편히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하필 잔디밭만이 아니라, 입시에서건 학사 운영
에서건 우리 학교도 그런 울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가끔 본다.
하긴,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크게 다치지 않으니 안전은 할 것이다. 다만,
관행이나 인습은 `타파'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가끔씩은 상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건강 비법의 하나에 뒷걸음질이 있다고 한다. 신체의 여러 근육과 기관을 골
고루 사용함으로써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생각도 때로는 거꾸로
해 봄으로써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고, 창의력도 키우고, 마음의 여유까지 얻어
보면 어떨까 싶다.

한정식<예술대 사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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