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술자리였다. 평소 친하던 선배, 동기들과 으레 갖는. 술이 몇 순배 돌아가면서 잡다한 일상사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나누던 중, 민감한 부분에 이야기가 닿았다. “나 이번에 시작한 아르바이트 있잖아. 사실 아는 사람이 꽂아 준거야.”
 
  너무 모났던 탓일까. “그럴 수도 있지, 다들 그러고 살잖아.” 맞장구치며 한 잔 술과 함께 떠오르는 의문을 속으로 털어 넣었으면 무탈했을 것을. 튀어나오는 한마디를 참지 못했다. “너 그거,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야?”
 
  결국 그날의 술자리 뒤에 친한 친구 하나를 잃었다. “너는 뭐 그렇게 잘나고 깨끗해서 남을 욕하느냐”라는 말만 얻은 채.
 
  종종 공·사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의 부정이나 비리를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주어지는 선택지는 보통 두 개다. 가감 없이 직언하고 상대방에게 자성하는 모습을 촉구하거나 감싸주고 묵인하거나.
 
  선택지별 장단점은 확실하다. 직언했을 경우 상대방이 받아들인다면 상대방과의 인간관계는 물론, 스스로의 양심도 지킬 수 있다. 상대방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기본이고. 반면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사람을 잃고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
 
  묵인할 경우 사람을 잃을 필요가 없는 데다 일단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다만 양심을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 언제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최근 학기 초와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이번엔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공적인 관계라고 보는 게 맞겠다. 중대신문 기자로서 전직 총장을 대하는 입장이니.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을까. 어쨌든 모교에 특혜를 주려 했던 ‘중앙가족’이니 되도록 관련 보도를 피하고 묵인해야 할까. 아니면 굳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감춰진 사실들을 끌어내 비판하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자고 꼬집어야 할까. 
 
  감싸주고 묵인하는 건 쉽다. 주요 취재원이어야 할 대학본부 측에서 관련된 결과가 공식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함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학보사 입장에서 외부 언론사보다 검찰과 교육부 관계자를 취재하기 힘들다는 건 굳이 상술하지 않아도 뻔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적 차원의 그럴싸한 변명 몇 개를 방패 삼아 모르는 척 다른 면만 보도하면 결국 ‘이 상황 또한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핑계를 대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중대신문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묵인한다면 오히려 외부에서 오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문제를 발생시킨 근본 원인 또한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오히려 이런 상황일수록 더더욱 강력한 자기비판이 요구되며 자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모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문제의 규모가 확대된 만큼 선택에 부과되는 책임과 결과도 그에 비례해 커질 것이다. 친구 하나 잃는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이 몰아칠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진짜 중앙가족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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