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봄기운이 만연해진 날에는 맛집을 찾아 다니는 행인들이 거리에 차고 넘친다. 온갖 ‘맛집’이 방송 매스컴을 타고 국민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있는 요즘, 맛집은 이제 ‘맛있는 요리를 제공하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맛집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 만큼 맛집과 음식, 그리고 문화적코드에 대해 좀 더 분석해 볼 필요가 있겠다.
▲ 일러스트 전은빈씨
‘맛집’이라 하면 나는 미디어가 떠오른다. 내가 미디어 전공자라서 그렇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미디어 없는 맛집을 상상하기란 분명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그렇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맛집과 미디어는 일종의 공생관계에 있다.

대표적으로 VJ가 끌어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연성뉴스를 제공하는 매거진형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맛집 소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누가 누구를 베낀 것인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으로 상호동화되어 버린 이런 프로그램 속에서는 늘 어디서 본 듯한 광경, 어디서 들은 듯한 음성, 어디서 만난 듯한 식객들이 늘 예상 가능한 표정과 문구로 맛의 절정을 외친다.

온라인에서도 다를 바 없다. 포털 검색에노출되는 맛집은 소위 ‘블로거지’들이 장악한지 오래고, ‘오빠랑’이라는 검색어가 시효를 다하자 ‘부모님 모시고’라든가 ‘현지인들이 가는’, ‘숨은 맛집’ 등의 새로운 검색어로 대체된다. 낚시질을 피하고자 하는 이용자들과 그들을 쫓아 늘 새로운 낚시로 무장한 자들 사이의 경쟁이다.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건 채 난립하고 있는 온라인 홍보 업체들은 말 그대로 온갖 바이러스를 풀어 온라인 세계의 ‘신뢰’를 오염시키고 있다.

다른 나라는 좀 다를까? 비교할 만한 모든 나라들을 조사해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 경험의 반경 안에서, 한국의 경우는 확실히 독특하다.
 
미디어와 맛집의 은밀한 동거
물론, 맛난 음식을 찾는 열망 혹은 최소한 실패 확률을 줄이려는 노력은 세계 어디를 가나 그리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자기가 아는 좋은 레스토랑을 추천하거나 맛본 음식에 대해 별점을 매기는 인터넷 사이트, 스마트폰 앱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자기 레스토랑에 좋은 별점을 달아줄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무료 식사권을 주는 업주도 적지 않다. 소위 ‘알바’를 풀어 경쟁 레스토랑에 악평을 남기는 전략 역시 낯설지 않다. 경험담과 별점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광고주협회 차원에서 공식 조사에 착수한 다음 해당 사이트를 제재한 사례도 있었다. ‘믿을 수 있는 평가(review you can trust)’라는 야심찬 이름의 별점 부여 시스템을 운영했던 그 사이트는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우리 회원들의 평가(review from our community)라는 소박한 이름으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래도 여전히 이들 사이트의 영향력은 무섭다. 구글의 소셜미디어와 지도 서비스를 지역에 특화시킨 검색엔진은 외식 산업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판관이 되어 있다.
 
이렇게 이들 나라에서 레스토랑 추천 서비스가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래도 ‘믿을 만한 구석’이 꽤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운영자들은 소위 알바들을 걸러내고 축출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돈과 노력을 들이며, 커뮤니티와 전문 평가자들에 의한 자정 시스템을 만들고, 전체적으로 별점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높여줄 방안을 찾기 위해 애를 써왔다. 그 덕분인지, 한국과 같은 혼돈과 무질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어서 이용자들은 이와 같은 사이트의 평가 시스템이 전체적으로는 믿을 만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광고와 홍보가 정보를 오염시키는(abusing) 것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는 거대 포털. 그 대안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알바와 식당주가 이용자 평가를 조작하는 게 당연시 되어버린 배달앱. 그리고 편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결국 간접광고(PPL)보다도 못한 저열한 홍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묵인하고 있는 주요 텔레비전 채널. 단순히 정도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거대한 사기가 떠받치고 있는 한국의 미디어-맛집 공생관계에는 분명 지나친 구석이 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차이를 짚자면, 한국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그 수효나 종류가 워낙 많기도 많을 뿐더러 거의 대부분 맛집을 소개하는 포맷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영국이나 미국, 유럽 등지의 해외 주요국들의 경우엔 전문 요리사가 조리법을 알려주거나, 각 지역을 찾아 다니면서 지역 음식의 독특함 혹은 숨은 고수의 요리 비결을 소개해주는 정도가 음식 프로그램의 대종을 이룬다. 한국에서도 나름 주목을 받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 <한식대첩>, <한국인의 밥상> 등의 프로그램이 대략 이와 같은 포맷을 갖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해외 프로그램의 포맷을 사왔거나 참조한 결과물이다. 이들은 요리가 기본적으로 창조적인 행위라는 것,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재료를 이용해서 독특하고 정체성 있는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생산과 창조, 그리고 음미의 실종
하지만 이를 제외한 대부분은 결국 홍보와 조작질의 혐의를 안고 있는 단순 ‘맛집 탐방’이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소비 대중’으로 호명될 따름이다. 어딘가에 있을 저 맛집에 가서 나도 저들처럼 게걸스럽게 먹어줘야 할 것 같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게 고작이다. 그런 프로그램이 나가고 난 뒤에는 늘 ‘**에 방영된 맛집 리스트’가 마치 숨은 비법이라도 되는 양 온라인에 돌아다니고, 실제로 그 집을 찾아가보면 ‘**에 방영된 집’이라는 배너와 간판이 자랑스레 걸려 있다. 여기에는 생산과 창조, 그리고 음미(appreciation)의 미덕이 없다. 다른 이들의 창조적 음식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힌트를 얻어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게 해준다거나, 적어도 그런 음식을 만들어준 이에 대한 고마움을 품으면서 그들의 음식 미학에 상상적으로라도 공감해주는 과정은 철저히 배제돼 있다는 이야기다. 연신 땀을 흘려대며 “마, 쥑인다 아입니꺼!”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맛집 탐방 프로그램의 과장된 리액션과, 촌로가 차려준 밥상에 “음~ 허, 참 맛있습니다.”라고 공감해주는 최불암의 절제된 대화 가운데 어느 것이 음식을 만든 이와 그 음식을 먹는 이,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지 묻고 싶다.

소비에 비해 언제나 생산 혹은 창조가 우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쨌든 음식이 산업이 된 시대에 살고 있고, 그나마 나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맛집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지금 당장 텔레비전을 끄고, 배달앱을 없애고, 자신의 손으로 프라이팬을 잡으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성실한 음식으로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맛집은 그래도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어주는 게 좋고, 합리적 외식 소비를 도와주는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먹방이 대세를 이루고 억지로 고안해낸 것이 뻔한 과장된 레토릭과 리액션으로 ‘조미료를 듬뿍 친’ 음식 품평이 연예인들의 인기 척도가 되는 세상은 어딘가 불편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많은 미디어가 소개시켜주는 맛집의 음식은 왜 그리도 하나같이 맛이 없는가? 설혹 맛집이라는 타이틀에 값하는 음식점이 있다 하더라도 잠시간 떳다가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인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먹방의 종결점이 결국 먹튀가 되고 마는 현실을 나는 도저히 긍정하지 못하겠다.

최소한의 미덕도 품지 못하는 이런 그릇된 공생 관계라면 누군가 그 고리를 끊어줘야 한다. 그 누구는 과연 맛집일까, 미디어일까, 우리 자신일까.
 
정준희 강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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