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은 그의 저작 『에크리』를 통해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도둑맞은 편지』를 분석한다. 소설은 왕비의 불륜 내용이 담긴 편지에서 시작된다. 방 안에서 몰래 편지를 읽던 왕비는 갑자기 들이닥친 왕과 귀족에 당황하지만, 침착하게 편지를 중요하지 않은 것인 양 화장대 위에 올려놓는다. 왕은 편지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눈치 빠른 귀족은 슬쩍 왕비의 편지를 가져간다. 왕비는 이를 보고도 발만 동동 구를 뿐 저지하지 못한다.

  편지를 얻은 귀족은 이를 이용해 권력을 키우게 된다. 왕비는 편지를 회수하기 위해 경찰을 불러 귀족의 방을 샅샅이 뒤지지만 성과를 얻지 못한다. 이때 탐정 뒤팽이 등장하고 여왕은 그를 통해 편지를 회수한다.

▲ 욕망의 구조에 위치되는 인물들

타자에 의해 고정되는 자리
  여기서 편지(Letter)는 글자 그대로 언어를 의미한다. 라캉이 보기에 편지는 언어라는 상징적 질서인 셈이다. 위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편지(언어)를 통해 관계를 맺으며 각자의 위치가 정해진다. 눈이 있어도 못 보는 왕, 편지를 못 가져갈 것이라 생각하는 왕비, 결국 편지를 눈치채고 가져가는 귀족. 그리고 이 구도는 편지를 못 찾은 경찰, 편지를 철저히 숨겼으리라 여기는 귀족, 마찬가지로 찾아내는 뒤팽으로 동일하게 반복된다.

  왕비가 도둑맞는 편지를 보고도 가만히 있던 이유는 왕에게 편지가 없음을 인정받기 위해서였고, 마찬가지로 귀족이 왕비가 보고 있음에도 도둑질한 이유는 편지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찰 역시도 편지를 찾아 왕비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욕망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각자는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갖고자 하고, 타인의 욕망의 대상임을 인정받고자 한다. 즉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편지를 매개로 타자들에 의해 위치가 지정된다. 위치는 고정돼있다. 물론 왕비는 귀족이 편지를 훔쳐가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저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한 왕비’로서의 기대되는 행동이 아니므로 왕비는 지정된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알아서 위치하는 것을 ‘동일시’라고 한다.

▲ 욕망의 도식

편지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한다

  소설을 도식으로 설명하면, 대타자(Other)는 왕비(me)의 자리를 지정한다(me←Other). 왕비는 왕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이 자리를 받아들인다. 자리를 동일시하면서 왕비는 타자에게 인정받는 ‘주체(Subject)’가 된다.(S←Other). 문제는 이 과정에서 왕비는 왕비의 욕구가 아닌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주체는 결핍을 야기한다.(S→o).

  이 결핍은 근원적으로 채워지지 않지만 주체는 이를 메우기 위해 여러 대상을 욕망한다. 때로는 귀족의 도둑질을 모른척하거나 경찰로 하여금 귀족 집을 뒤지게 한 것과 같이. 결국 이런 다양한 모습들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상상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o→me), 즉 ‘오인’함으로써 타자에 의해 나의 자리를 채워나간다. 즉 대타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지(언어)는 왕비를 주체화시키고, 왕비 자신의 동일시를 거쳐 애초 대타자가 지정한 자리로 배달되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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