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의 철길에서 욕망의 전차는 어디로 가나요
  • 정석호 기자
  • 승인 2015.04.05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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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고민 라캉으로 나누다
  “앞으로 무슨 일 하고 싶어?” 여기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진로는 대학생에게 항상 고민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나도 모르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하고 싶어 하는 것,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 정신과 의사가 있다. 라캉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에서 철학적 의미를 끌어낸 정신분석학자다. 진로로 고민하는 대학생들을 위해 김민환 박사(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동북아센터)가 라캉의 이론에서 사회학적인 부분을 추출해 소개했다.
 
▲ 사진 이효석 기자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우리
 
진정 원하는 바를
스스로 찾아야
 
  “Not my tempo.” 영화 <위플래쉬>에서 스승 플레처의 한마디는 앤드류를 지배한다. 플레처의 눈에 들기 위해 애인을 버리고, 그의 오케스트라에 서기 위해 차에 치인 몸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앤드류는 자신의 연주보다, ‘완벽함’을 향한 스승의 욕망을 더 욕망한 듯 보인다. 그러나 스승의 그늘 아래서 앤드류의 연주는 완벽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스승의 것이 아닌 오롯한 자신의 욕망으로 스틱을 잡았을 때, 앤드류는 전에 불가능했던 완벽한 연주를 펼친다. 영화는 앤드류를 통해 라캉의 ‘주체’가 욕망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내용을 김민환 박사를 통해 들어봤다.
 
-라캉의 욕망이론은 어떤 이론인가요.
“우선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어떻게 ‘인식’의 개념을 분류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라캉은 우리 인식의 영역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정의하고 있는데요. 우선 상상계는 유아기 때 발달하는 영역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본인을 동일시하는 때죠. 마치 내 손가락이 어머니의 젖이라고 생각하고 빠는 것처럼요. 상징계는 사회적 질서를 내면화하는 영역입니다. 언어와 각종 규범으로 이뤄져 있는 영역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실재계는 상징계에 담기지 못하고 남는 관념의 세계에요. 언어 밖의 영역이기 때문에 말로도 표현할 수 없죠.”

-설명이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체스를 예로 들 수 있어요. 일단 체스의 규칙은 상징계라고 할 수 있죠. 말이 움직이는 방식을 규정하니까요. 그리고 각각의 말들은 상상계에 해당해요. ‘왕’이나 ‘성’ 등으로 형태화되죠. 실재계는 체스의 규칙이 적용되는 밖의 세계에요. 이 셋은 개념적으로는 구분할 수 있지만 교집합처럼 겹쳐있어요. 그러다가 실재계가 타 영역을 불쑥 침범하기도 하죠. 예를 들면 지나가는 사람이 체스판을 엎을 때처럼요.”

-라캉이 말하는 ‘욕망’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라캉의 ‘욕망(Desire)’은 욕구(Need)나 요구(Demand)처럼, 동물적 본능이나 의식적 활동이 아니에요. 인간이기 때문에 추구하게 되는 무의식적인 개념이죠. 보다 존재적이고 근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인간은 왜 욕망하게 되는 건가요.
“자신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죠. 인간이라면 결핍될 수밖에 없어요. 누구도 태어나서 동물처럼 자유롭게 살 수 없잖아요. 사회 ‘질서’들을 내면화하는 상징계로의 진입이 필수적이죠.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갓난아기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사고가 언어의 방식으로만 표현된다는 사실이죠. 그렇게 되면 말로 담지 못하는 것들이 생겨요. 담기지 못하고 잘려나간 자리를 결핍이라고 합니다. 즉 라캉은 실재계를 모두 담지 못하는 상징계 때문에 결핍이 발생한다고 봤어요.”

-그럼 결핍은 나쁜 건가요.
“나쁘다고 하기 힘들죠. 사회화가 동물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처럼, 상징계를 거쳐야만 인간은 ‘주체(Subject)’를 형성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결핍이라는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계속 추구하게 되잖아요. 여기서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칸 하나가 빠져 있고 주위 조각들을 이동시켜 맞추는 퍼즐 게임 해보셨나요? 그것과 같습니다. 퍼즐의 조각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 비어있는 부분 때문이잖아요. 만약에 퍼즐이 꽉 차있다면 조각들을 이동할 수 없는 이치죠. 즉 결핍은 인간의 조건입니다.”

-퍼즐의 전체 그림은 무엇인가요.
“그림을 정하는 존재가 있어요. 대타자입니다. 쉽게 말하면 상징계의 주인으로서 질서를 만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를테면 종교적 질서로 구성된 상징계에선 신이 되겠죠. 법치사회에선 법이고요. 가부장제 가정에서는 아버지입니다. 상징계에 편입하기 위해선 대타자가 원하는 바를 내가 원하는 것이라 여겨야 하죠. 그래야 잘 살아갈 수 있거든요. 이를테면 내가 의사를 꿈꾸는 것이 사실 아버지의 욕망을 욕망해서라는 거죠.”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는 건가요.
“그렇죠. 예를 들면 아주 멋진 커플이 지나갈 때 남자들은 백이면 백 여자를 봐요. 그런데 여자는 동성인 여자를 보는 경우가 많죠. ‘저 여자는 얼마나 잘났길래 저 멋진 남자 옆에 있을까’ 하는 거죠. 그래서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들은 남성이라는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주체는 종속되는 존재인건가요.
“종속되지만 주체는 대타자가 욕망하는 바를 마치 자신이 자율적으로 욕망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대타자의 상징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꼭두각시이지만요. 본인의 대타자를 확인하고 싶으면 일기를 쓰면 돼요. 흔히 일기는 자신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일기를 쓰는 순간마다 자신도 모르게 독자를 상정하게 되거든요. 그 독자가 대타자에요.”
  
▲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

-그럼 평생 대타자의 욕망대로만 살게 되는 건가요.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이걸 원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문득 실재계를 인식하는 거죠. 하지만 상징계를 벗어나는 과정은 라캉이 ‘상징적 죽음’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힘든 일이에요. 기존의 질서들을 뒤로하고 혼자 사막에서 새롭게 주체를 쌓아올리는 일이니까요. 자유가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건지 드러나는 지점이죠.”

-실재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런 농담이 있죠. ‘아직도 내가 니 엄마로 보이니.’ 한밤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쭈뼛하는 느낌이 들었다면 상징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느낀 거에요. 즉 상상할 수도 없는 실재계가 드러나는 순간은 공포에요. 대타자는 이 순간의 지속을 막기 위해 ‘봉합’을 합니다. 처음엔 놀랐다가 ‘아, 그럼 귀신이구나’로 바뀌게 돼요. 귀신을 상정함으로써 실재계를 뒤로하는 거죠.”

-대타자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실재계를 마주했을 때 세 가지 방식을 택할 수 있어요. 첫째는 모른척하고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것. 두 번째로는 대안적 대타자를 찾는 거에요. 다만 구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여전하지요. 마지막으로는 대타자, 즉 상징 질서가 없는 삶인데 이는 불가능해요. 무의식에 있는 언어까지 없앨 수는 없으니까요. 썩 좋은 선택지들은 아니지만 실재계를 대면하기 전과 비교해보면 그래도 선택권이 있잖아요. 의미가 있죠.”

-결국 두 번째 선택지를 택해야겠군요.
“그렇죠.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에요. 최근에 진로를 모색하는 학생들 중에 ‘자본주의’라는 대타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기업 취직이 아니라 적성을 찾아 취업하겠다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두에게 가능한건 아니죠. 경제적 뒷받침이 전제된 학생들에게만 허락되니까요. 그리고 찾아 나선 새로운 상징계가 어떨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취직 이전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진로를 못 찾겠어요.
“여태껏 아버지, 주변 사람들, 혹은 기업으로부터 ‘좋다고 하는’ 진로를 욕망하도록 만들어졌으니까요. 여기서 내가 종속됐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주체적으로 욕망하기’의 첫 걸음이에요. 사장될 수 있었던 문제를 제기하는 거잖아요. 물론 어떤 대타자로 대체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대타자보다는 평등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할 수 있죠.”

-진짜 원하는 진로를 결정해도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이에요.
“대학생들의 취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취직 시장의 전반적인 게임의 룰(상징질서)을 바꾸는 집단운동이 필요해요. 최근에 ‘백수들의 노동조합’이라고 불리는 ‘청년유니온’이 좋은 예죠. 취직을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나서는 거예요.”

-실천으로 옮겨야 하는 문제라는 거군요.
“조그마한 연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이미 취직한 선배라도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과 꾸준히 노동시장에 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게 첫 걸음이 아닐까요. 상징계의 그물을 인지하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변화는 실천에서 나와요. 이론은 현실을 뒤따라가서 설명할 수는 있어도 현실을 나서서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죠. 바꾸는 것은 결국 운동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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