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다니던 시절 난 유달리 해부학이라는 과목이 좋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사람 몸의 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것이 의대를 들어가고 싶었던 작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해부학이라는 과목은 늘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방부제 냄새로 가득 찬 해부 실습실에서 이뤄지던 해부학 강의는 단순 실습 이외에도 너무나 외워야 할 것들이 많아 버거웠지만 반드시 이를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큰 장벽과도 같았다. 하지만 해부실습을 하면서 사람의 몸은 해부학 그림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로봇과 같이 일률적인 생김새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마치 모든 사람들의 성격이 다르듯 각자 서로 조금씩 다른 몸의 생김새를 가지고 있음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이러한 재미가 지금의 해부학 교수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점차 몸의 구조에 대해 하나둘 연구한 결과, 나는 한국인의 몸속 구조와 크기, 모양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축적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료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직접적으로 이용되어 수술해부학이나 임상해부학이라는 분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에 인접한 다른 학문과 연계하여 의료기기를 만드는 공학 분야뿐만 아니라, 몸의 구조에 대해 전문 자료가 필요한 미술, 체육, 음악 분야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처음 해부학이라는 학문에 들어서던 연구원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종종 받곤 한다. “선생님은 왜 해부학을 선택하셨어요?” “왜 환자를 보는 임상 의사를 하지 않고 기초의학 연구를 선택하셨어요?”라는 질문들 말이다. 나는 이런 말들의 뒤편에 “당신은 환자를 보기엔 실력이 부족해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일 거야. 아주 오래전에 연구가 완결되어 더 이상 추가 연구가 필요 없는 철 지난 해부학이란 학문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돼.”라는 의미가 숨어 있음을 알고 있다. 심지어는 연구원 시절에 같이 기초의학을 연구했지만 전공이 다른 선배교수들조차도 “의사라면 암을 정복하거나 질병을 극복하는 새로운 원리를 찾아 연구해야지, 왜 하필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미 다 알고 그림으로 남긴 ‘사람 몸의 구조’를 공부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으니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이해가 된다.

 하지만 올해로 사람의 몸을 연구한지 27년이 되는 중견 교수가 되어 있는 지금까지 난 늘 이렇게 대답을 해왔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으나, 아직도 새로운 지도는 만들어지고 있고 내비게이션은 잘 팔린다.”라고. 해부학이라는 분야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해부학을 연구한 지 2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연구해야 할 과제는 무궁무진하다. 지도에 위치 추적이 가능한 GPS를 접목시켜 내비게이션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만들어지듯, 해부학이라는 ‘인체 지도’에 많은 새로운 학문이 접목되어 멋진 걸작들이 나오길, ‘무시무시한’ 해부학 교수가 기대해본다.

한승호 교수
의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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