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닐슨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응답자 중 55%가 다이어트 중이다. 이젠 유행이라고 하기 무색할 만큼 삶의 한 부분처럼 여겨지는 다이어트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토마토 다이어트, 바나나 다이어트 등 각종 음식물부터 단식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등 계급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방식까지 총망라한다. 그러나 뜨거운 관심들은 다이어트 앞에 붙는 합성어에만 있는 듯하다. 두 교수님의 글을 통해 다이어트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자

                                                              일러스트 전은빈 씨
인간의 신체가 생존의 기반이자 사회적 삶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다이어트는 우리의 육체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차원에서 다이어트를 신체적 건강을 유지함으로써 올바른 정신이 함양될 수 있다는 측면으로 해석할 경우 얼마든지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학문적 수신(修身)과 종교적 수행에 있어 육체는 정신과 영혼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점에서 금욕을 통해 신체적 욕구를 절제하고 제한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온 것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네 영혼을 돌보라!’고 단언하면서, 그의 말을 빌려 플라톤은 신체적 욕구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영혼을 불순하게 만들기 때문에 영혼의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며, 자신의 신체적 욕구에 비록 반하더라도 오직 영혼(이데아)에 따른 삶만이 행복해질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불행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말은 육체적 욕구 충족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에 상처를 주거나 정신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영혼이 인도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깔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수용하려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삶 속에서 신체의 건강이나 아름다움을 위한 수단으로 다이어트를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어 관건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건강이나 미(美)적 측면을 부인하고 소크라테스적 지침을 수용한다는 것은 곧 현세적 삶의 부정과 마찬가지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이어트가 곧 건강과 직결된다고 여기기에도 극히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동치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다이어트가 체중 조절, 체중 감소, 체중 유지라는 의미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건강이 다이어트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충분조건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갖는 핵심적인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신체적 아름다움과 다이어트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다이어트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에 대부분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면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아름답고 호감이 가는 외모는 이성은 물론 동성들 사이에서도 일종에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기에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행복한 삶을 위한 외적 조건의 충족이라는 측면에서도 육체의 아름다움은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도 부인하기도 어렵다.
 
황금사과의 주인을 찾아라!
이러한 논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인간이 갖는 근원적 본성 가운데 하나를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가장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믿음일 것이다. 이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아름다운 신체(외모)는 곧 타인으로부터 부러움과 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래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충동질하게 된다. 이렇듯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듯이 이와 관련한 뷰티 산업 역시 불황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통계에 따르면 뷰티 시장의 규모는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여기에 신체보다 정신 혹은 마음을 고양시키고 잘 다스려야 할 것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한다고 했을 때, 이에 대해 현대인들은 과연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인간의 본성인 한 이러한 주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리스로마신화의 일화를 통해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미르미돈족의 왕 펠레우스와 요정 테티스의 결혼식에 불쑥 나타나 황금사과 한 개를 던지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그 황금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아름다움으로는 결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헤라와 아테나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제각기 그 사과를 자기가 차지해야 한다고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세 여신의 말다툼은 『신통기』에서 묘사하기를 ‘아이가 태어나 다 성장할 때까지 이어졌다’라고 적고 있다. 이에 공정한 판정을 위해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양치기 목동 파리스에게 황금사과를 주고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 황금사과를 주도록 요청하게 된다. 세 여신들은 파리스로부터 황금사과를 받기 위해 제각기 환심을 사려고 애를 쓴다. 헤라는 자신으로 결정할 경우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를, 아테나는 뛰어난 지혜와 용기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미녀를 주겠노라고 각기 공약을 하게 된다. 파리스는 아름다운 미녀를 주겠다는 말에 결정을 내리고,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게 된다. 황금사과를 받지 못한 두 여신은 파리스와 아프로디테에게 앙심을 품게 되고, 아프로디테는 약속을 지켜 파리스에게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헬레네(Helene)를 짝지어 주게 되는데, 이로 인해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결국 파리스의 조국 트로이는 멸망하게 된다.
 
미(美)를 향한 추구, 방법론의 문제
물론 이 신화는 신인동형설(神人同形說)을 전제로 한다. 이 스토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 핵심에는 인간의 본성적 차원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근원적 자존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본성에 비추어 볼 때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삶을 보다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외모는 시대에 따른 미적 기준의 유행에 맞추어 몸을 변형시키거나 육체적인 고통을 참아가며 자신의 외모를 정성들여 꾸미고 다듬어야 했다. 이런 측면은 과거나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쯤이면 신체적 아름다움의 추구에 대한 우려 섞인 비판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결국 다이어트가 갖는 현대적 의미는 인간의 본성상 미의 추구와 결코 동떨어질 수 없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물론 문제가 있다면 미의 실현은 오직 다이어트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우리의 확신일 것이다. 여기에는 미의 추구에 대한 다른 가능성 역시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다이어트는 미적 가치를 확보하는 다양한 수단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라는 문제만 남은 셈이다. 어쨌든 미의 추구라는 인간의 본성적 측면을 염두에 둘 경우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한층 고양시킬 수 있게 하는 수단의 확보는 미래지향적 가치의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홍병선 교수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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