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인재를 원한다. 아니 ‘쓸모 있는’ 사람을 구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성적도 우수하며 영어도 잘하고, 회사에 들어와서는 맡은 바 업무를 슈퍼맨처럼 잘 수행할 사람을 채용하려 한다. 그래서 소위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는 사람은 이러한 기업의 요구에 민감하여 각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원하는 ‘자질 명세서’, 즉 ‘스펙’을 쌓는 데 여념이 없다. 이미 들어왔거나 졸업한 대학의 레벨은 어쩔 수 없으니,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밤샘도 마다하지 않고, 학업 외에도 각종 인증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격증을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아낌없이 투자한다.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취업의 커다란 관문 앞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코가 꿰인 소들처럼 한 곳을 향하여 묵묵히 달리고 있다.

 서양의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이런 우리 젊은이들을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제한된 직접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던, 그래서 노예도 존재하며 여성은 시민의 자격을 도저히 가질 수 없었지만, 공동의 관심사를 시민이 검토하고 결정했던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상적인 정치 체제를 운용할 수 있었던 시대의 사색가들은 스펙에 목매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에피쿠로스 철학과 스펙 쌓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 학문의 출발점으로서, 소박하지만 최초의 철학적 활동을 시작했던 초기 그리스철학자들로부터 아테네의 화려했던 철학적 전성기가 막을 내릴 때까지 대부분의 그리스 사상가들은 인간의 욕망이나 감정을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는 ‘이성’(理性)의 활동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본능적 욕구와 극복할 수 없는 감정의 원천인 육체와 물질적 존재를 경시하는 철학자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에 세계의 근원을 물질에서 찾고, 인간의 본성을 쾌락추구로 규정한 에피쿠로스는 어찌 보면 다분히 현대적인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에피쿠로스를 우리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정하고 그에게 우리 젊은이들의 스펙 쌓기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 일러스트 전은빈 씨

 에피쿠로스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쾌락을 쫓고 고통을 멀리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이다. 윤리적 덕목조차도 쾌락적 삶과 연관되기에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 인간은 자신에게 있는, 또는 찾아오는 각종 고통들을 제거할 때 쾌락을 얻을 수 있으며, 이렇게 고통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우리 인간은 행복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취업을 쾌락의 원천으로 보고 취업에 실패했을 때 오는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스펙 쌓기에 힘쓰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에피쿠로스는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 일단은 취업이 우리에게 쾌락을 보장한다는 것이 확실시 된다면 에피쿠로스의 반응은 긍정적일 듯하다. 나아가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쾌락의 상태를 보장만 한다면 에피쿠로스는 기립 박수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취업이라는 것이 이러한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쾌락을 보장하느냐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직장에 취직됐을 때 우리는 환호성을 울리고 인생의 최고의 목표에 도달한 양 즐거워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즐거움도 잠시, 매일 매일 치러야하는 직장에서의 일과가 우리 삶의 다른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가끔은 자신의 연봉과 비교했을 때 내가 얻는 쾌락이 고통보다 많지 않음에 절망하는 경우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쾌락을 위해 성취한 취업의 결과가 오히려 내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면 에피쿠로스는 우리에게 다시 취업 이전으로 돌아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 번 살펴보기를 권할 것이다. 물론 의기양양 입성한 직장이 자신의 능력과 끼를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는 곳인지 되돌아보도록 독려할 것이며, 나아가 취업 전 온갖 노력으로 쌓아올린 스펙에 대한 반성도 조심스레 요구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 그 오랜 시간, 적지 않은 경비로 스펙이라는 것을 쌓아올렸던가? 새삼스레 곱씹어보는 우리들에게 에피쿠로스는 미소를 띠며 나지막하게 말해 줄 것이다. 취업만을 위해, 오로지 취업을 위해 쌓은 스펙은 취업과 동시에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이미 취업은 되었고 취업에만 필요했던 스펙은 사실상 이제 아무 필요가 없다. 하지만 어떤 취준생이 취업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전체 미래에 필요한 스펙을 살펴보고 이를 준비하려고 노력했다면, 취업 후에 닥쳐오는 위기나 권태로움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삶은 쾌락적이고 고통의 반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만족할 만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쾌락’을 위한 스펙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쾌락의 상태’를 추구하고 이를 얻거나 유지하는 방법을 수없이 고민했었을 에피쿠로스에게 취업이든, 인생 전체에 있어서든 스펙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처럼, 행복한 인생을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스펙은 과연 무엇일까? 에피쿠로스의 대답은 참으로 놀랍다. 큰 빵 한 덩어리와 신발 몇 켤레, 그리고 몇 명의 친구만 내 곁에 있다면 더 이상의 스펙은 필요 없다고 에피쿠로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끼니를 채울 수 있는 최소한의 식사와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신발, 또한 나를 지지해 주고 또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몇 명의 친구들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에서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스펙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을 원하거나 또는 그 이상의 쾌락을 추구할 때 우리가 최초에 목표로 했던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쾌락’은 우리에게서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요구하고 직장에서 요구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젊은이들, 진짜 자기 자신의 쾌락보다는 ‘기업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펙에 스펙을 쌓는 우리의 착한 취준생들에게 에피쿠로스는 점잖게 말한다. 여러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아가라고. 그 쾌락이 지속적이고 변함이 없도록 하기위해 우리가 취사선택해야 할 목록을 작성하여 그것을 자신이 쌓아야할 스펙, 즉 자질명세서로 삼는다면, 그 사람의 취업은, 나아가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실시간 쾌락을 줄 것이며 행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지 않은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최근 몇몇 기업들이 대졸 공채에서 외국어능력이나 IT자격증, 해외연수경험, 봉사활동과 같은 소위 기존 스펙을 보지 않고 구직자의 실무 능력이나 도전 정신 등을 직접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이러한 탈스펙 바람은 자기소개서를 강조하는 입사지원서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앞으로는 보다 경쟁력있는 구직자 자신의 자기어필이 새로운 스펙의 형태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기존의 스펙이라는 것이 구직자의 진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또한 그러한 스펙을 통해 만들어진 능력이라는 것이 실무 현장에서 제대로 된 능력으로 변신하지 못한다는 판단을 기업은 이제야 통감하게 된 것 같다. 이러한 탈스펙 현상은 보다 현명해진 기업의 ‘인간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에 맞서는 취준생들의 전략도 보다 본질적이며 ‘인간적’으로 변해야 할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여, 쾌락추구의 대상이 기업임을 진심으로 밝힌다면 상대방 기업의 반응은 결코 차갑지 않을 것이다.
 
김 진 교수
성균관대 학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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