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30년이 되면 우울증이 질병부담이 가장 큰 질환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덧붙여 한국 성인의 약 12%가 우울과 만성질환의 동반양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취업난과 스펙전쟁에 힘겨운 대학생도 예외일 수는 없다. 찬 비 흩날리는 3월의 늦은 저녁, 국내 최초의 멜랑콜리 학자 김동규 교수(연세대 철학과)를 만나 대학생의 우울 문제를 ‘멜랑콜리’로 다뤄보기로 했다.
▲ 비 내리는 날, 신촌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인 김동규 교수. 사진 정석호 기자

-교수님은 ‘멜랑콜리’를 ‘우울’로 번역하기보다는 정착된 외래어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 말에서 ‘우울’은 ‘우울증’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질병의 의미가 강합니다. 하지만 멜랑콜리는 더 다양한 의미를 많이 담고 있어요.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철학·문화·예술의 복합적 의미가 담겨있죠. 최초 멜랑콜리는 ‘검은 담즙’이란 뜻이었어요. 과거에 고대 의학이론인 ‘4체액설’에 근거해 나온 말이죠. 서양인들은 몸속에 4가지 체액이 있는데 그 중에 어떤 특정한 체액이 과도하게 흐르면 그 사람의 체질을 좌우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중 검은 담즙이 많으면 우울하고 작은 일에도 근심·걱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검은 담즙이 많으면 무조건 ‘멜랑콜리커’가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죠. 의학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범한 철학자·시인·예술가·정치가들이 모두 멜랑콜리커’라고 말할 정도로 인문학적 시각에서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했어요. 우울은 철학적으로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천재와 광기’라는 상투어가 붙어요. 멜랑콜리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밝은 면이 강조되기도 하고, 어두운 면이 부각되기도 했죠.”

-시대마다 다른 멜랑콜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멜랑콜리의 기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죠. 멜랑콜리의 조건은 사랑과 상실이에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멜랑콜리커가 될 수 없고, 또 사랑한 사람을 잃지 않아도 마찬가지죠. 여기서 사랑은 폭넓은 의미의 사랑이에요.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사물, 국가, 지식 등…. 이걸 상실했을 때 사람들은 슬픔을 느껴요. 슬픔을 진정시키고 정화하는 작업을 애도 작업이라고 하는데, 이 작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설명이에요. 우리가 각 시대의 멜랑콜리를 이해하려면 시대마다 무엇을 사랑했고, 또 무엇을 상실했으며, 또 애도 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봐야죠.”

-한국 사회의 우울은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유한 슬픔은 한(恨)이죠. 반면에 서양 지식인들의 독특한 정조가 멜랑콜리에요. 한과 멜랑콜리는 사랑의 구조가 달라요. ‘한’은 타자 중심의 사랑이고, 일반적으로 피지배층의 정서에요. 이에 비해 멜랑콜리는 자기중심적이고, 일반적으로는 지배층의 정조입니다. 반면에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구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섞여있다는 것이죠.”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세월호 사건이 있은 뒤, 유가족의 슬픔을 보면 분명 멜랑콜리가 있어요. 유가족들은 모임을 조직하고, 1인시위도 하고, 정치가들을 찾아가서 항의도 하는 것을 보면 민주시민으로서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갖고 있죠. 이건 독립적인 주체이자 주권자로서의 서양의 멜랑콜리 정서를 갖고 있는 거예요. 반면에 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는 한국인의 독특한 피지배층 정서인 ‘한’이 같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죠. 그 둘이 동거하고 있는 형태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한국 대학생들은 언제 멜랑콜리의 감정을 느낄까요.
 “과거와 달리 젊은이들은 개인의 자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에 멜랑콜리가 우울로 발현되기 더 쉬운 경향이 있어요. 사회 구조적인 측면으로는 나날이 심해지는 경쟁을 들 수 있겠죠. 경쟁이 가능하려면 동일한 욕망의 대상을 설정해야하는데, 지금은 점점 사회가 획일화되고 있죠. 예컨대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라고 하는 것이 만능의 마법상자와 같은 것이죠. 자본을 계속 추구하려하다 보니 경쟁이 과열되고 여기에 학벌주의 사회까지 이걸 부추기고 있어요.”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학생 멜랑콜리커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요.
  “정확하게 대학생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또 가장 중요하게 무엇을 잃었는지를 따져봐야죠. 학벌주의 사회에서 아주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10대를 다 보내고 지금은 취업조차 어려워지니 대학이 취업의 전초기지가 됐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하더라도 대학은 4년간의 충전 기간이었고 취업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대학생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어려워졌다는 생각은 분명히 들어요.”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 이제는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요.
  “욕망이 있는데 텅 비어있는 거죠. 다른 학생들이 취업하고 돈을 버니까 따라가잖아요. 애초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포기감 이전에 무력감이 있겠죠? 심리학적으로는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이야기해요. 쥐를 대상으로 했던 실험인데요. 쥐를 물에 빠뜨린 후에 거의 죽을만하면 살려주는 실험이었어요. 처음에는 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헤엄치는데 나중에는 헤엄을 안쳐요. 무력감이 학습된 거죠.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멜랑콜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작용 기제죠.”

-그렇다면 이런 우울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자신이 왜 우울에 빠졌는지, 그 우울감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형성됐는지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중요해요. 사실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과 비슷하기도 한데(웃음), 다행스러운 점은 프로이트가 말하길 우울증 환자 중에 진리를 바라보는 아주 날카로운 시선을 갖은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우울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가차 없는 자기 비판 혹은 자기 비하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점이나 단점은 감추려고 미화하려고 하지만 멜랑콜리커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근거가 돼요.”

-그러면 멜랑콜리커는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기제를 갖고 있다는 거네요.
  “멜랑콜리의 가장 긍정적이고 핵심적인 의미는 고통과 역경, 혼란과 모순 속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전무후무한 창조적인 무엇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창조성의 동력이죠. 우울의 시간 혹은 우울의 상태를 오랫동안 잘 버티고 잘 헤쳐나가면서 기존의 안 좋은 구조나 모습을 고쳐나갈 수 있는 동력으로 사용해야죠. 지나치게 낙관적 혹은 낙천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능사는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라고들 하잖아요.
  “그게 지나칠 경우 문제죠. 우리나라 교육 이데올로기는 그걸 너무나 강조해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자신은 얼마나 나약하고 허약하고 비겁한지, 정확하게 직시하는 것이 우울을 벗어날 수 있는 첫 단계죠. 가장 대책 없는 게 망각을 망각하는 거죠.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거죠. 우울감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힐링’이니 ‘긍정적으로 사고하라’니 같은 말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거예요.”
 
▲ 멜랑콜리를 화폭에 담다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은 푸르스름한 색감을 배경으로 근심과 걱정의 사로잡힌 찌푸려진 미간으로 멍하게 화가를 바라보는 의사 가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기연민에 빠진 멜랑콜리커는 비참한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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