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한다.
 
 패자부활전 없이 
탈락만 가득한 교육 현장
 
 
 
‘입시’말고 무엇을 할 수 있나
교사도 괴롭다
 
‘입시’말고 무엇을 할 수 있나 교사도 괴롭다‘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 참 많이 쓴다. 백면서생, 탁상공론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이익은 정점에서 과대포장되고 문제는 정점에서 과소평가 된다. 그래서 현장을 들여 보는 일이 중요하다. 수많은 교육과정 개편과 입시 위주의 교육 완화를 위해 대통령, 장·차관 휘하 수많은 사무관까지 머리를 싸매고 오늘도 야근한다. 교육은 전쟁이고 참모들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에 골치를 썩인다. 하지만 여느 전쟁터와 마찬가지로 ‘최전선’과 ‘최윗선’의 온도 차는 다르다. 전쟁 같은 입시교육을 몸으로 받아치고 있는 최전선의 교사들. 1학년 대학생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전선에서 분투 중인 그들에게는 ‘문제도 현장에 있다’가 맞는 말이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김이나 교사(가명·C고등학교)는 지난해 고3 담임을 맡았다. 그가 근무하는 학교의 위치는 8학군 근처. 그렇기 때문에 8학군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둔 제자들이 많다. 그야말로 입시교육의 최전선에서 강남과 비강남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선생님이 본 현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시간이 없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정말 공부만 해야 한다.” 서울 주요대학의 엄청난 경쟁률을 상기해보면 설렁설렁해서 이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는 것이다. 강남 학생들의 사교육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대충할 수도 없다. 공부만 하다 보니 요즘 아이들에게 자율성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김이나 교사는 “요즘 고등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학교와 교사가 입시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이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 사회로 나갔을 때 곧장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에 김이나 교사는 “이 친구들은 아기다”고 자답한다.
 
  아이들이 중등교육을 통해 행복한 인간으로 살 수 있을까. 요즘 학교에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자살예방’, ‘생명존중’ 공문이 끝없이 내려온다고 한다. 이순정 교사(S중학교)는 “지금의 공교육은 좌절이다”고 말했다. 학생마다 다양한 재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주고 개발시켜야 하는데 지금의 공교육은 오직 수능에만 집중해 아이들에게 좌절감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공부 잘해서 수능에 기대를 걸어볼 만한 소수의 학생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들러리다. 이순정 교사는 “교사들부터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에게만 열과 성을 쏟는 것이 문제다”며 “사회에 나가서 다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아이들을 학교에서부터 성적으로 가르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만 빽빽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관심은 소수의 학생에게만 집중된다. “애들이 꿈과 희망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도 그럴만하다 ”고 이순정 교사는 말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행복한 인간이란 좋은 대학에 가는 사람이다. 김이나 교사도 이런 부분에서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 김이나 교사는 “나의 제자들이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길 원한다”며 “하지만 사회가 행복한 삶을 살려면 좋은 대학을 갈 수밖에 없게끔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내 제자들을 사랑하니까 좋은 대학에 붙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사회체제가 바뀌지 않은 현실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벗어난 이상적인 교육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단적으로 느껴졌다.
 
  교단에서 파견 나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에서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진영효 교사(E중학교)도 ‘정상적인 교육’에 대해 ‘낭만적 꿈’이라고 말한다. 나의 실패가 남의 성공이 되는 비정한 룰이 있는 한 교실의 승자와 패자는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가 중등교육을 지배하고, 평가(시험)가 교육과정(학습)을 지배한다.” 가치가 전도된 현재의 교육을 설명하며 진영효 교사는 말한다. “일류와 이류, 삼류의 서열(대학)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입시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정원보다 대학 입학정원이 많은 시대에도 입시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모두가 일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 학벌이 철폐되지 않는 사회의 교육은 ‘비인간화의 첨병’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으로 말미암아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은 사라진다. 도덕적으로 피폐해지고 신체적 건강도 심하게 훼손당하고 있다. 참된 인간으로서 성장할 여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와는 다른 의견도 있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는 박선종 교감(가명·D중학교)은 “학생 본인이 꿈을 정했으면 그 꿈을 위해서 대학 입시 제도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이 중요한 사회에서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일반계 고등학교 외 다른 대안도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인데, 그것을 원치 않을 경우 특성화고, 홈스쿨링, 대안학교 등 선택의 폭이 있다는 것이다. 박선종 교감은 “공교육이 현 사회 시스템에 적합한 인재들을 내보내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김이나 교사는 고3 담임으로 재직 당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입시 준비로도 바쁜 수업시간에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오글거린다고 하지 말아라, 그 사람은 진심을 얘기하고 있다’, ‘용기를 낸 사람들에게 지지를 보내주고 박수를 보내줘라’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가져라, 너희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남자친구랑 데이트할 때 같이 돈 내라, 남이 돈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편지의 내용을 본 학생들은 “제가 어른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울었다. 확실히 문제는 현장에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 이번에도 크게 빗나가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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