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 열린 책들 | 508쪽
 
 
 
 
 
 
 
  요즘 ‘의미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기자만 하더라도 이 말을 매일 입에 달고 산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의미의 축제』 등의 서적이 순위를 앞다투며 베스트셀러 진열 칸에 버젓이 점철되어 가는 모습만 보아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의미’라는 단어와 가깝게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올해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요나스 요나슨의 첫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인생의 일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주인공이 창문을 넘어서면서 겪게 되는 해프닝을 그린다. 주인공 알란은 기자만큼이나 삶에 대해 염세적이고 무저항적이다. 
 
  100세 생일파티를 앞둔 전날에 알란이 양로원을 탈출한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사의 전개가 꽤 충동적이고 황당하다. 등장인물의 행동과 이야기의 전개는 단순히 픽션들로 짜깁기 되어진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내용들이다. 때문에 러시아 혁명부터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더더욱 흥미롭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알란을 창문 밖으로 끌어낸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두 자리에서 곧 세 자리로 늘어나게 될 나이에 대한 초조함 때문이었을까? 삶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일지 모를 인생을 불사르고 싶었던 늙은이의 변덕 때문은 아니었을까? 당장 내일 숨이 끊어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신체 나약한 노인이, 멀쩡한 문을 놔두고 창문을 넘어선 행동은 좀 더 면밀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삶의 크고 작은 재난이 다 지나간 것 같아 보이는 백발의 노인은, 100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라는 그의 무의미적 인생관 덕분이다. 
 
  살다 보면 창문을 넘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용기내기를 주저한다. 거의 한 세기를 산 100세의 노인은 창문 밖으로 나가는 일에 있어, 무릎의 통증이나 신고 있는 낡은 슬리퍼 따위를 큰 제약이라 여기지 않았다. 100세의 노인치고는 꽤나 강단 있는 선택이다. 만약 그가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가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며 생을 마감하게 되었으리라. 
 
  진짜 세계는 그곳에 가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실체라고 생각했던 것의 배후에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 몰랐다는 것을 절대 모른다. 
 
  유명한 철학자 로즈 와인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는 건 위험하다.하지만 열매는 다 그 위에 있다”는 말을 했다.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달콤한 열매를 먹게 하는 열쇠란 것이다. 만약 본인이 삶의 권태로움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100세 노인처럼 창문을 넘어 넓은 마당으로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100세를 목전에 앞둔 노인도 창문을 넘는다. 취업난과 학점 메꾸기를 핑계로 현실에 주저앉아 있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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