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수많은 목숨이 수장된 비극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DDA(사장 부사장급 대한항공 로열패밀리 앞에 붙이는 코드가 DD란다)로 불리는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이 2014년 하반기에 터지면서 일반인들의 마음을 부글부글 또 다시 끓게 만들었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과 재벌의 횡포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다른 갑질논란 사건이었으면 단타로 끝났을 방송이 대한항공 같은 재벌의 갑질이기에 ‘오너 일가’니 ‘로열패밀리’니 하면서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자체가 역겨운 일이 아닐 수 없고 세월호 사건을 의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언론 플레이인 듯하여 몹시나 불편한 사건이었다.

 넓은 의미에서 갑질이야 훨씬 이전부터 있었겠지만 2013년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대리점주 폭행에 따른 ‘대리점 갑질’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갑질 논란은 2014년에 이르러 유독 눈에 많이 띄던 것처럼 보인다. 갑질로 치자면야 과거에 아들을 위해 조폭 주목도 불사한 한화그룹 회장의 ‘조폭형 갑질’도 있었고 지위를 이용한 스폰서 검사의 ‘스폰서 갑질’만이 아니라 국무총리로 임명된 이완구 전 의원의 기자들에 대한 ‘기자갑질’에 이르기까지 갑질의 주체(재벌, 대기업, 국회의원, 검사, 교수, 유치원 교사, 구의원, 영업사원, 고객, 건물주 등)도 다양하고 갑질하는 방법(폭행, 무릎 꿇리기, 성 접대, 성추행 등)도 얼마나 다양한가?

갑질의 의미
 그런데 이상하고 궁금한 것들이 있다. 노동자들이 자살하고 굴뚝에 올라가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일은 왜 갑질 논란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갑질이라는 단어가 사회적 약자들의 은어라고 했을 때 갑질이라는 은어는 그저 한풀이용 기능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갑질의 범위가 슈퍼 갑질, 소비자 갑질 등의 용어로 확산되어 가는 동안 갑질 논란이 포괄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정작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대기업의 횡포는 어제오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기업의 횡포’라는 언어가 은폐하고 있는 사태는 어떤 것일까?

 갑질 논란과 연관하여 ‘갑을민국甲乙民國’이란 말이 SNS상에 유포되고 있다. 과연 이 말은 정당한 말일까? 갑을 관계가 계약에 근거하여 갑과 을이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된 사회계약이 이행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계약은 언제든지 파괴될 수 있고 돈과 권력이 법 위에 서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니 한국사회니 하며 불리는 이 동네 아니던가.

 갑질이란 업무상 종속관계, 업체 간 하청관계 등 확고한 권력관계에 포획된 사건을 일컫지만, 권력이나 지위, 신분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폭행하고 모욕 주는, 이른바 사회적 지위를 앞세운 행패를 가리킬 수도 있다. 따라서 갑질이란, 이 동네가(‘동네 동네’ 하니 독자분들이 헷갈리실 수도 잇겠으나, 필자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한국 ‘사회’도 아니고 대한‘민국’도 아니며 신분이나 지위가 사회적으로 강력한 무기로 작동하는 곳이자, ‘국가’라는 것마저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에 딱히 지칭할 말이 없어 ‘이 동네’라고 하는 것이니 양해 부탁드린다) 아직 사회적 계약 자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곳, 정상적인 시민사회 상태에조차 도달하지도 못한 곳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 일러스트 전은빈씨

종류도 다양한 갑질의 사례
 각설하고, 갑질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이 동네의 정치경제학적인 구조 탓에 청년실업이 늘어나는 악조건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그런 악조건에 악셀레이터를 걸며 청년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갑질의 사례를 보자.
 ‘2014년 12월 소셜커머스 위메프가 지역영업직 채용시 11명에게 현장 테스트 평가라며 2주 동안 5만원 일당 지급하고 딜(계약)을 따오게 하는 일시키고 불합격 통보.’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타고 온 차량이 조사를 마칠 때까지 4시간 동안 시동을 끄지 않고 대기하는 사이 영하 10도 강추위를 대한한공 관계자들이 밖에서 온몸으로 견뎠다는 데에서 나온 ‘공회전 갑질’도 치욕스러운 일이었겠으나 위메프의 ‘채용갑질’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선에 가득 찬 것인지 온 몸으로 보여준다. 이 뿐인가. 외국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국내의 다국적 기업이 저지르는 갑질처럼 이제는 ‘글로벌 갑질’까지 등장하고 있다.

 ‘2014년 9월 '가구공룡' 이케아가 직원 채용 과정에서 '갑(甲)'의 횡포를 부려 구직자들의 원성이 높다. 정규직 지원자에게 계약직 전환을 요구하는가 하면, 2달 동안 합격·불합격 여부를 알려주지 않는 등 국내 구직자를 '봉'으로 보는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슈퍼개미 복재성이 돈맛을 보자 경찰관들에게 유흥업소에서 막말하는 ‘슈퍼개미 갑질’도 있고 알바생을 무릎 꿇리는 ‘소비자갑질’도 있으며 대기업의 특허도둑질, 단가후려치기 갑질도 있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러한 여러 유형의 갑질들의 꼴깝질이 자본의 노동에 대한 갑질의 변종들이라는데 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도 문제지만 그것은 자본들끼리의 갑질일 뿐 자본의 노동자 착취라는 ‘거대한 갑질’과 질이 다른 것이다. 주차요원인 알바생의 무릎을 꿇리는 고객의 ‘소비자갑질’이나 ‘나 VIP 고객이야, 이거 바꿔 줘’라며 언성을 높이는 ‘고성방가형 갑질’이나 '슈퍼개미 갑질‘은 거대한 자본 대 노동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갑질의 축소판이거나 엄청난 부와 자산 및 권력에 기대 ‘거대한 갑질’을 욕망하는 ‘모방형 갑질’에 불과하다.

 그 한 예가 알바몬 광고 사태다. 걸스데이 혜리가 출연한 광고는 ‘알바가 갑이다’라는 카피를 사용했고 PC 방 업주들은 알바몬 탈퇴 운동을 벌였는데 알바몬 사태에서 PC 방 업주들이 ‘우리도 약자다’라고 한 주장은 흡사 자본이 기획하고 꾸며낸 노동분할(정규직/비정규직), 노-노 갈등을 닮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알바가 갑’이기는 커녕 업주의 갑질에 해코지당하는 알바생이 업주에 대해 약자이고, 업주가 다시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에 대해 약자라면 결국 알바생-업주-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대기업이라는 비엔나 소세지 사슬 꼭대기에는 ‘거대한 갑’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고 그 사슬 속에서 알바생과 업주가 같이 노-노 갈등을 겪고 있는 셈이다.

갑질의 배후에 도사리는 자본
 생각해 보면 갑질은 살아 있는 인간만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재벌 회장, 본부장, 의사, 교수, 대표이사 등이 나오지 않으면 드라마가 되지 않는 이 동네 TV 드라마는 시청자를 상대로 ‘문화적인 갑질’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종갑질’은 또 어떤가?

 갑질이라는 말로 자본의 노동력 착취라는 중대한 문제를 치환·은폐시켜서는 안된다. 갑질이란 그저 한풀이 이거나 해코지가 아니다. 갑질 뒤에는 성, 세대, 인종, 계급을 초월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이 숨어 있다.
  
▲ 이득재 교수 대구카톨릭대 노어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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