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검인실험
 
   
때로는 한 끝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1도의 각도는 우주선의 궤도를 바꾸고 시험에서의 1점은 당락을 결정하기도 한다. 비난과 비판의 차이도 그 한 끝이다. 대학 사회 안에서 대학본부를 비판하는 것은 모호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각기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앙대의 ‘한 끝’은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진입 장벽이 낮아 학내 공론장의 역할을 하는 게시판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중앙대는 ‘학생홍보물 게시에 관한 내규’를 통해 게시물들을 관리하고 있다. 내규에 따르면 각 단대와 학과는 지도교수 또는 소속 학과장의 승인을 받고 소속 단대 교학지원팀에서 검인을 필하여 게시 및 배부하도록 하고 있다. 총(여)학생회, 동아리, 각 동문회 및 외부의 게시물은 학생처 검인을 필하여 게시 및 배부하도록 되어있다. 학생 개인의 게시물에 대한 규정은 나와 있지 않고 규칙을 위반한 홍보물은 관리처장이 지체 없이 회수·철거한다고 명시돼있다.

 규정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학생처의 검인을 받기 전에 각 단대 교학지원팀에 게시물 검인을 받아보기로 했다. 각 단대 교학지원팀이 담당하는 게시판을 이용하는 경우 학생처가 아닌 해당 단대 교학지원팀에서도 관례적으로 검인해주기 때문이다. 실험에 필요한 게시물은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비판하는 내용의 만평으로 선정했다. 최근 가장 떠들썩한 학내 이슈이기 때문이다. 해당 내용의 만평은 표현 수위에 따라 3가지로 구분했다. A안은 다소 과격하고 잔인한 그림이었고 문구도 자극적이었다. B안과 C안은 조금 더 순화된 표현과 그림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A안에 대해 검인을 찍어준 곳은 대학원, 의대, 약대, 자연대, 예술대 교학지원팀으로 총 5곳이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담당자의 승인 없이 교학지원팀의 게시물 담당조교가 단독으로 찍어준 것이었다.

 인문·사회대, 공대, 적십자간호대 교학지원팀의 경우 “규정대로 학생처에 문의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다. 이에 학생처 관계자는 검인을 거부하며 “만평의 그림이 너무 자극적이다”며 “너무 학교를 파렴치한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영경제대 교학지원팀의 경우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은 전체 학과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특정학문단위만을 명시하면 곤란하다”며 “표현 방식이 잔인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만평이 잔인하다는 것을 이유로 검인을 거부했던 경영경제대 교학지원팀과 학생처에 표현의 수위를 낮춘 B안과 C안을 들고 다시 찾아갔다. 경영경제대 교학지원팀의 관계자는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은 학교에서 정책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며 “우리도 단위행정부서의 하나라 검인해주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처 측은 “해당 게시물은 담당자와 논의해봐야 한다”며 “담당자의 출장으로 월요일에 다시 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실험을 통해서 대학본부가 생각하는 ‘비난’과 ‘비판’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웠다. 각 단대 교학지원팀마다 게시물에 대한 반응과 검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비판에 대한 대학본부의 입장을 더 명확하게 알기 위해 대학본부 관계자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학본부 관계자는 “대학본부가 대학의 행정이나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뚜렷한 방침을 갖고 있지는 않다”며 “현재 대학본부의 대응이 사회 통념적으로 크게 벗어난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본부 측은 “비판은 허용하지만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비판은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 아닌 정확한 팩트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중앙대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본부 관계자는 “학교에 애교심을 가지고 학교의 명예에 위해가 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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