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이 방학을 보내고 있을 무렵, 내가 몸담은 학과에서 간행물을 발간할 거라는 소식을 접했다. 마침, 언론과 미디어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보고 있었던 나에게 학과 간행물은 흥미롭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난 친한 동기 두 명과 함께 초대기자단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게 되었고, 나란히 셋이서 학과 학회지의 첫 순간을 시작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교수, 동문, 학생 간의 교감을 형성하는 것이 학회지의 취지였다. 첫 미팅이 끝나고 다음 회의까지 약 1주일의 기간이 있었다. 신문을 직접 만들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선 다른 신문들을 예시로 보고 배우기로 했다. 교내에 있는 모든 간행물과 심지어 미용실이나 커피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지까지도 참고자료가 되었다.

 먼저, 학기 중 매주 월요일이면 볼 수 있었던 제일 익숙한 ‘중대신문’을 손에 쥐었다. 독자의 입장으로서 별다른 생각 없이 읽었던 신문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게 되니 전에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읽기 따분한 신문을 독자들로부터 어떻게 관심을 받게 하는지의 관점으로 다가가 보았다. 신문이 단순히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대충 짐작이 갔지만 이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는 몰랐다. 어떠한 내용을 실을 지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돋보였다. 글도 글이지만, 글씨체와 크기, 기사의 배치와 구조, 디자인까지 생각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 A4용지에 정해진 폰트로 리포트만 평생 써온 내가 이런 사소한 부분을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신문 한 장에는 내가 독자로서 볼 때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많았다. 실제 기자를 하게 되면 취재하느라 인터뷰 따느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중대신문 정식 기자가 된 동기로부터 ‘중대신문을 읽고’ 기고를 부탁받았다. 나는 역으로 중대신문에게 조언을 얻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온 캠퍼스를 뒤집고 뛰어다니는 기자가 된 동기를 보면 기사 한 줄에 아니 기사 한 글자에 얼마나 많은 땀과 시간과 노력이 담겨 있는지 알기에 오늘은 사랑의 채찍질보단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내가 중대신문을 찾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중대신문은 내가 교내에 있었던 일들을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교내 구조변경사항이나 행사, 학생으로서 유용한 복수전공 커트라인이나 장학금 신청정보 또는 교수, 동문, 학생들의 인터뷰와 정황까지. 그리고 빼먹으면 아쉬운 기숙사 식단까지도 챙겨볼 수 있다. 신문, 그리고 언론이 가지는 역할과 특성상 기자들이 남다른 책임감과 기자 정신으로 일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다음주 신문 발행을 위해 밤샘작업을 하실 홍길동이 된 기자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고도연 학생
유럽문화학부
프랑스어문학전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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