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문제 종교철학으로 다루다
 
마루 종(宗), 가르칠 교(敎). ‘산꼭대기의 으뜸이 되는 교훈’이라는 뜻이다. 이 어원은 과거 종교의 가르침이 갖는 권위에 대해 짐작하게 한다.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곤 했던 종교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삶에 깊숙히 관여해 왔던 것이다. 긴 시간 명맥을 이어온 종교는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 학생들에게 자신의 종교철학관을 역설하고 있는 윤병운 교수.
 
삶은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미로다. 인간이 삶의 좌절과 소외의 막다른 골목에서 고민할 때 종교는 답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마태복음 11:28) 신을 의지하는 것만이 비로소 죄악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답에 무신론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우선 믿어보라’라고 말하는 종교가 마치 만병통치약을 이야기하는 선전과도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연 신앙은 좌절이라는 수렁에 빠진 이들에게 명쾌한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종교철학을 전공하는 윤병운 교수를 찾았다.

-힘들어하는 대학생들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나요.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자신이 왜 사는지에 대해 고찰하지 않잖아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증세도 없죠. 이것은 말기 암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지 않는 것과 같아요. 종교는 이들에게 실존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에요.”

-그렇다면 종교철학은 무엇인가요.
“종교철학은 종교가 추구하는 종교적 진리들을 이성이라는 도구로 검토해 보는 작업이에요. 단순히 종교가 말하는 진리들을 주장하고 논증하는 기존의 신학과 다르죠. 종교를 철학적으로 본다는 것은 신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종교적 진리가 현실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지 반추해 보는 겁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삶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고요.”

-이성으로 검토하다 보면 종교적 이론들이 충돌하게 될 것 같은데.
“자신이 믿었던 종교가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인간들은 자신의 종교에 실망과 번민을 느낄 수 있어요. 신도들이 자신의 종교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면서 종교적 진리가 약화되는 거죠. 그러나 종교적 진리가 현실에서 입증되었을 때는 반대로 진리가 강화되기도 해요.”

-최근 종교의 역할이 많이 축소된 것 같아요.
“그건 신앙의 기본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과학의 발전은 많은 것들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보이긴 하죠. 더 이상 천둥번개가 치는 이유를 예전처럼 신의 분노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의 ‘현상’에 불과해요. 반면에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각 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이야기하죠.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가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예를 들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나’와 같은 실존적인 질문이 그에 해당합니다. 과학의 발전은 오히려 종교가 해야 할 일들을 증가시킬 것이고 종교의 가치가 발현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봅니다.”

-인간의 실존문제는 인간의 기원을 추적하는 문제와도 관련된 것 같아요.
“인간의 기원을 묻는 이론은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나뉩니다. 진화론은 인간이 침팬지에서 진화했다고 보는 학설이고 창조론은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됐다고 보는 학설이에요. 저는 두 이론 중에 창조론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진화론은 인간의 궁극적 기원을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미생물의 시원을 밝힐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 반쪽짜리 이론에 불과하니까요.”

-창조론도 신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아닌가요.
“논리적으로 유효하지 않은 질문이에요. 모든 존재는 원인을 갖고 있다는 ‘충족 이유율’은 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원리니까요. 신은 기본적으로 전지전능전선(全智全能全善)의 존재인데, 스스로 자존하는 신이 누구로부터 만들어졌냐는 질문은 우스운 질문 아닌가요? 이것은 신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신이 전능하고 모든 것을 계획하신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요.
“신의 전지전능함과 인간의 자율성은 사실 충돌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에덴동산의 아담은 사과를 따 먹지 말라는 신의 말에도 사과를 따 먹었어요. 이런 경우, 신은 아담이 사과를 따 먹을 것을 알았을까요? 아니면 아담은 신의 계획에 따라 사과를 먹게 되었을까요? 아담은 자유의지로 사과를 따 먹은 겁니다. 신 또한 아담이 사과를 따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요. 인간은 자신이 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셈이죠. 이 때문에 신의 전능함과 인간의 자율성은 공존 할 수 있는 겁니다.”

-신은 왜 인간에게 해로운‘악’을 만든 건가요.
“애초에 신은 인간을 만들 때 인간만 유일하게 신의 형상으로 만들었어요. 인간이 로봇과 다르게 능동적 선택을 하며 살기를 원한 거죠. 또한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직접 악 자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둠이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처럼 악도 ‘선’이 없는 결핍된 상태라고만 보고 있죠.”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종교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종교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 원인은 종교집단의 내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기독교 교인들은 밖의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죠. 교회 안에 젊은이들이 없으니 종교가 세상을 읽어내기 어렵게 되고 이는 결국 종교의 고립을 더욱 가속화 시켜요. 그러나 저는 역설적으로 종교에 대한 불신을 종교에게 갖는 기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대를 말하는 건가요.
“종교에 대한 불신은 종교에 대한 갈증이에요. 요즘 다들 워낙 힘들잖아요. 사람들은 힘들수록 힘든 현실을 탈피할 만한 안식처를 찾아요.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세상과 현실의 불일치는 ‘좋은’ 종교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키죠. 그리고 좋은 종교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해 불신이 생기는 거예요. 따라서 종교 스스로도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종교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있을까요.
“나의 어려운 상황을 종교가 전부 해결해 줄 거라는 기복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해요. 종교를 통해 진짜 삶을 바라보고자 하는 실존적 태도가 중요합니다. 또한 종교를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인간의 자유이지만, 적어도 종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왜 그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해야 해요. 이것은 비종교인도 마찬가지고요. 종교에 대한 질문은 삶에 대한 질문과 연관되니까요.”
 
종교적 체험에 대한 논쟁
▶작두에서 펄쩍펄쩍 뛰고 앞일을 예언하는 등의 종교적 체험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런 현상을 강한 신앙으로 자연현상을 극복하고 실제로 일어난 기적이라 보아야 할까?   
신이 세계를 창조만 하고 세계는 자연법칙 내에서만 움직인다고 믿는 이신론자들은 기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연의 질서는 신의 명령이고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적 체험’이라는 건 자연법칙에 어긋나기 현상이기 때문이다.
중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적이란 인간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에게는 알려진 질서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말하는 것이다. 즉 신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기적’이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