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문제 페미니즘으로 나누다

60년대 여성운동에서 외쳤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구호는, 오늘날 연인들의 데이트 문화에도 시사점을 준다. 둘만 즐기는 데이트가 결코 사적인 공간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형성된 ‘연애 매뉴얼’이 정하는 바대로 행동한다.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계산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도 이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매뉴얼’은 우리를 편하게 하는 지침서일까 아니면 사적인 공간을 침해하는 불청객일까.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를 만나봤다.
 
▲ 이나영 교수가 기자에게 페미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효석 기자

-페미니즘이란 어떤 학문인지 궁금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 모두를 포괄하는 ‘인간’에 대한 학문이에요. 인간이 다양한 차이들로 인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과 실천이죠. 인권 지향적인 이론이자 학문으로 볼 수 있어요.”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닌가요.

“일반적으로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는 학문 혹은 사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 말이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에요. 적어도 과거에는 말이죠.”

-과거 페미니즘은 어땠나요.

“페미니즘이 등장한 19세기 이전에는 여성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어요. 근대 시민을 상징하는 시민권을 비롯해 다른 권리들이 남자에게만 주어지고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거든요. 그때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남자와 같은 취급을 받기 위해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는 일이었어요.”

-기본권을 보장받은 후에는요.

“그 후 여권운동을 통해 권리를 신장시켰지만 실제 생활에선 남성에게 억압받던 과거와 다를 바가 없었어요. 여전히 노동 현장에서 차별받고, 가정에서 남편에게 맞기 일쑤였죠. 그래서 일부 급진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의 경우 여성억압이 근본적인 섹슈얼리티 자체에서 비롯한다고 보고 여성문화를 만들어 성폭력, 성매매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죠. 한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구조에 주목해 여성이라는 ‘계급’은 자본주의를 척결함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고 봤어요.”

-그렇다면 현대의 페미니즘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요. 
 
“페미니즘은 80년대에 이르러 다양성에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같은 여성이라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여성들이 존재하고 다르게 대우받잖아요. 주위에만 해도 예쁘고 부자인 여학생이 못생기고 가난한 여학생보다 대우를 잘 받는 것처럼, 같은 여성이라도 다양한 조건에 따라 심한 억압을 받을 수 있죠. 여자-남자도 마찬가지에요. 예쁜 부자 여학생은 여성이지만 이주 노동자에 동성애자인 남성보다 억압받는 위치에 있진 않죠. 이런 면들을 다루기 위해선 여성성과 남성성이 단일하지 않다는 논의가 이뤄져야 했어요.”

-남자도 페미니즘의 범위 안에 포함될 수 있겠군요.

“남자에게도 다양한 남성성이 있잖아요. 그리고 그 중 이상적인 남성성에 부합하지 못하는 수많은 남성들도 피해를 입고 힘들어해요. 사실 가부장제의 피해자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해당되요. 지배자가 되지 않으면 다 루저(loser)가 되는 피라미드가 되는 구조니까요. 충분히 남성적이지 않거나 경제력이 부족한 남자들은 전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거죠. 즉 남성과 여성 모두 사회적 성별이라고 하는 젠더(gender)로 인해 차별 받는 거죠.”

-성(sex)과 젠더를 구분하는 이유가 있나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은 생물학적으로 구분되는 남자/여자를 말합니다. 반면에 젠더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이라고 해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남·여의 정체성이나 역할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젠더는 계급, 인종, 민족처럼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는 주요한 질서가 되요. 문제는 젠더가 불평등한 억압의 축이 된다는 점입니다.”

-연애를 할 때도 젠더가 많이 개입되는 것 같아요.

“연애할 때 ‘남자는 이래야 해’, 혹은 ‘여자는 이래야 해’ 하는 것들을 ‘젠더화된 연애각본’이라고 해요. 남자는 여자에게 돈을 써야 하고 여자는 예쁘게 보이기 위해 꾸며야 한다는 생각이 이에 해당하죠.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각본에 충실하지 않는 남자는 찌질해지고 여자는 매력을 잃게 되잖아요. 가부장적 사회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죠. 남자가 결혼하면 가정을 부양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보조하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연애에 있어서 남자가 여자에게 물질적인 공여를 하는 건 동일하죠. 여자는 대가로 성을 제공하는 것도요.”

-마치 교환처럼 이뤄지는 건가요.

“그렇죠. 그리고 그 교환을 통해 연애 주체들은 젠더 역할을 재학습하게 되요. 연애 자체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재생산하는 기제에요. 남성끼리 혹은 여성끼리도 이뤄지지만 주로 이성을 통해 자신의 젠더를 재확인하게 되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남자는 돈, 여자는 성을 교환하면서 유지되는 연애는 문제가 있어요.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바가 가려지게 될 수 있거든요. 이를테면 여자가 역도선수를 하고 싶어 하는데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포기할 수 없어 갈등하는 경우가 그것이죠. 또한 데이트 성폭력 문제도 발생할 수 있고요.”

-데이트 성폭력은 뭔가요.

“데이트에서 주로 남성이 지불한 경제력과 그에 대한 보상, 즉 여성의 몸이 교환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죠. 남성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여성의 성을 요구하면서 충분한 상호 동의가 없을 경우 연인 간에도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혹은 주로 포르노를 통해 성교육을 한 남성이 왜곡된 지식으로 여성과 성관계를 가질 때도 발생할 수 있어요. 여성이 싫은 의사표현을 하더라도 그것을 으레 포르노에서 여성들이 하는 ‘빼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여기에 강압성이 들어가게 되면 데이트 성폭력이 됩니다.

-주로 미디어를 통해 연애와 관련된 학습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반영이론이라고 하죠. 미디어가 재현의 결과물로 현실을 구축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요. 수용자가 미디어를 통해 학습하고 직접 행위를 하면 그 행위를 미디어는 구현하니까요.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미디어에서의 젠더 불평등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미디어에서 젠더역할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최근의 방송 중에 ‘삼시세끼’ 같은 경우, 여성 출연자가 전무하다는 한계도 있지만 자상하고 음식을 해먹여주는 새로운 남성성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더라고요. 기존의 마초적인 남성성이 아닌 새로운 남성성의 기대와 확장을 보여주는 점에서 신선했어요. 이런 부분에서 페미니즘의 방향을 미디어에서 기대해볼 수 있죠.”

-그럼 연애를 하면서 젠더화된 각본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고정된 성역할이 연애하는 남녀 모두에게 억압적이라는 점을 서로 대화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자는 데이트에서 주로 돈을 내야 하는 게 솔직히 부담된다고요. 여자도 마찬가지에요. 남자친구에게 항상 예뻐 보이기 위해 옷도 사야하고 화장품도 사야하는 과정이 힘들 수 있거든요. 이렇게 젠더화된 각본의 고리들을 하나씩 해체해가는 겁니다.”

-페미니즘에서 보는 바람직한 연애는 어떤 모습인가요.

“배타적 친밀성을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마치 부부처럼 남들과는 공유하지 않는 ‘친밀성’을 둘이서 나누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잊지 않는 겁니다. 내가 없으면 친밀성은 존재할 수 없어요.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해야하고, 그 일을 수행할 개인의 영역이 필요한 거죠. 그러면서 서로에게 지워진 인생의 짐을 나눠서 지는 게 페미니즘이 보는 바람직한 연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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