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있어 저출산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당장의 결혼 비용과 신혼집 마련이 코앞의 문제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되면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애과정의 하나이다. 단순히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일생일대의 일로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그런데, 결혼은 남녀 당사자들 사이의 지극히 사적인 일이다. 과거에는 결혼으로 양가 부모들 사이에 사돈 관계가 맺어지고, 새로운 식구로 살게 되면서 결혼은 가족 혹은 가문의 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 결혼은 성인 남녀 당사자들 사이의 애정에 기반을 둔 일로 여겨진다.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은 결혼과 관련하여 ‘만혼’이 한국에서 지속되고 있는 초저출산의 핵심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초저출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일찍 결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초혼 연령 낮추기’ 대책을 모색하겠다고 발언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으로 이제 결혼이 정부가 관여하는 사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서로 결혼을 약속한 미혼 남녀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초저술산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결혼비용과 신혼집 마련이 당면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체 여성들의 출산아 수를 모두 합친 결과로 나타나는 초저출산 문제는 그들의 관심 밖의 일이다. 부부가 출산을 결정할 때, 한국의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산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대부분의 결혼은 남녀 당사자들의 낭만적인 사랑에 바탕으로 두고 이루어진다. 낭만적인 사랑에 기초한 결혼은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낭만적인 사랑이 결혼의 전제가 되는 일은 근대 이전에는 없었다. 오늘날에는 낭만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결혼으로 가족이 만들어지고, 가족생활도 정서적 교류와 친밀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결혼은 가문의 재산을 세습하거나 혹은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제도였다. 대부분은 결혼과 출산을 통해서만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늦게 결혼하는 만혼(晩婚) 현상은 아주 최근에 나타났다. 조선시대에는 일찍 결혼하는 조혼(早婚)이 풍습이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남성은 15세, 여성은 14세가 되면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10대에 결혼하는 조혼이 일반적인 결혼 형태로 남아있었다. 조혼은 때때로 10대 중반의 남성이 나이가 더 많은 10대 후반의 여성과의 결혼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요즈음 말로 연하남과의 결혼인 셈이다.
결혼 연령은 수명과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35세 정도였기 때문에, 조혼은 지극히 당연한 관습이었다. 조선시대 평균적으로 자녀를 6,7명씩 낳았고, 자녀들이 자라서 혼인을 할 때까지 부모가 살아있으려면 조혼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혼 연령도 수명의 증가와 더불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 평균 수명은 47세 정도였다. 1981년 평균 결혼 연령은 남성 26.3세, 여성 22.8세였다. 2013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2.2세, 여성 29.6세로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대만에서도 평균 초혼 연령은 1981년 남성 27.1세와 여성 23.6세에서 2013년 남성 31.9세, 여성 29.5세로 높아졌다. 일본에서도 1980년 평균 초혼 연령 남성 27.8세와 여성 25.2세에서 2013년 남성 30.9세, 여성 29.3세로 높아졌다.

 만혼 현상은 선진국에서 더 심하게 나타났다. 먼서 산업화를 이룩한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영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이 1961년 25.6세에서 2010년 32.1세로 높아졌고, 여성도 1961년 23.1세에서 2010년 30.0세로 높아졌다. 독일도 동일한 양상을 보여서, 남성의 초혼 연령은 1960년 25.9세에서 2010년 33.3세, 여성의 초혼 연령은 1960년 23.7세에서 2010년 30.5세로 높아졌다. 남녀 모두 30세 넘어서 결혼하는 시대가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남성 초혼 연령은 1960년 26.4세에서 2008년 32.1세로 그리고 여성은 1960년 23.0세에서 2008년 30.0세로 높아졌다.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 경우에도 초혼 연령이 지속적으로 높아서, 남성 초혼 연령은 1960년 26.4에서 2011년 35.6세로 9.2세 더 높아졌고, 여성 초혼 연령도 22.5세에서 33.1세로 10.6세 더 높아졌다.

 서구 유럽의 만혼 추세는 만혼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모든 산업사회들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 조선시대에 살았다면 거의 생을 마감할 나이에 가까운 30세가 넘어서 남녀가 결혼하는 최근의 현상은 인류 역사에서 정말로 극적인 변화가 현재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근대사회가 만들어 낸 제도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등교육을 받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평균적인 결혼 연령이 높아졌다. 고등교육이 확대되면서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에 덧붙여 한국의 남성들의 경우, 군대 복무 기간이 더 추가되기 때문에 그리고 대학 재학 중 휴학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에 한국의 남성 평균 초혼 연령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만혼은 정말로 저출산의 원인인가? 만약 그렇다면, 초혼 연령을 앞당기는 것이 낮은 출산율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말하자면, 만혼과 저출산과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유럽에서 출산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프랑스의 경우, 1997년 합계출산율은 1.73으로 가장 낮았으나 그 이후 계속 높아져, 2010년에는 2.2에 달하였다. 영국도 합계출산율은 2001년 1.63으로 저점을 통과한 후, 2010년에는 1.93에 달하였다. 스웨덴도 1999년 합계출산율 1.60에 도달한 후, 다시 증가하여 2010년에는 1.98에 달하였다. 대체로 유럽의 경우 합계출산율이 1990년대 말을 저점으로 찍었다가 다시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유럽의 만혼 현상은 지속적으로 더 강화되었지만, 유럽의 출산율은 1990년대 후반 이후 계속해서 높아졌다.
 

 저출산은 결혼 연령보다 가족 복지와 더 관련되어 있다. 가족 복지가 잘 발달한 곳에서 출산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가족 복지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의 출산율은 2013년 1.19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였다. 결혼 연령이 한국보다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들은 가족 복지 수준도 높다. 예를 들어, 전체 GDP에서 공적으로 지출되는 가족복지(현금과 서비스) 비율은 OECD 평균이 2.55%이었고, 영국 4.26%, 스웨덴 3.64%, 프랑스 3.61%, 독일 3.05%였지만, 한국은 1.16%에 불과하였다. 한국과 같이 초저출산을 겪고 있는 일본도 가족 복지는 대단히 낮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저출산이 시작된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거의 20년 동안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가족 복지는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다.
 
 결혼은 대단히 사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개인들의 결혼은 집합적으로 사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여부를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결혼과 관련하여 개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무시하는 사회는 몰락을 피할 수 없다.
▲ 신광영 교수 중앙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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