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깨지는 것
  • 홍주환 기자
  • 승인 2015.03.0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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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복구는 거의 끝났고 학생들도 비밀번호 요구에 동의했어요.” 처음 ‘인문학 40선 읽기’ 프로그램의 독후감 소실에 대한 취재에 나섰을 때 학술정보원 측 취재원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에게서 ‘독후감 복구는 문제없으니 문제 삼을 것도 없다’라는 확신이 보였습니다. 그 확신이 저의 의구심을 일으켰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애초엔 비밀번호를 요구받았다는 학생을 취재하려 했지만 뜻밖에도 비밀번호를 요구받지 않은 학생이 먼저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 학생은 “독후감이 사라졌지만 학술정보원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제가 만난 ‘인문학 40선 읽기’에 참여한 학생 대부분은 독후감 소실에 대해 몰랐습니다. 취재원이 게시했다던 공지에도 독후감 소실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다시 취재원에게 갔습니다. “왜 학생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았냐”고 물었죠. “데이터의 빠른 복구가 더 시급했어요.”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이 사건을 복구에만 관련된 것이라 여기는 듯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취재원과의 통화 도중 발견됐습니다.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고도 독후감 복구는 가능해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왜 학생들에게 다른 방법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나요?” 놀란 저는 재빠르게 질문했습니다. 그는 ‘빠른 복구가 시급했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 다른 방법을 설명하는 것. 이 두 가지는 가장 중요시해야할 것이었지만 이 사건에서 배제돼 있었습니다. 

그때쯤 ‘복구 기간이 지났는데 복구되지 않은 독후감이 있다’는 제보가 들려왔습니다. 확인해보니 실제로 복구 작업은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어 북구 지연의 이유가 무엇이고 학생들에겐 언제 이 사실을 알릴 것인지 등을 약간은 예민하게 물었습니다. 제 말투가 그를 건드렸는지 돌아온 대답은 전처럼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그걸 일일이 기자님께 알려드려야 하나요?”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후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치가 끝나면 공지하겠다’며 통화를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쯤일까요?” 또 질문했습니다. 이윽고 ‘공지하고 연락을 주겠다’는 답이 왔고 이번 사건의 취재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습니다.

처음에 취재원은 ‘학생들이 동의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짜리 소통’에 의한 ‘동의’였습니다. ‘동의’에 대한 그리고 ‘빠른 복구’와 ‘소통’의 선후에 대한 인식 차는 컸고 그것이 느껴질수록 그와 저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사람은 타인을 처음 만날 때 그와의 관계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관계는 유리잔처럼 쉽게 깨지고 다시 붙이기는 어렵습니다. 저와 취재원과의 관계도 그렇게 쉽게 깨졌습니다. 사람도 그런데, 학교와 학생의 관계는 어떨까요? ‘반쪽짜리 소통’일 뿐이라면, 이미 깨져버린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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