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빨리 가네요.” 서울 국립국악원 주변 커피숍에서 처음 만난 김기재 교수(관현악전공)가 말을 건넸다. 긴 세월만큼이나 가늘어진 머리카락이었다. 그가 처음 바이올린의 현을 켜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첼로의 중후한 저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바이올린의 가는 고음에 매력을 느껴요.”
 
  그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4년 동안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있다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80년대 초, 그때는 외국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다른 분들도 그랬겠지만, 저 역시 식료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어요. 늦은 나이에 간 유학이라 언어가 가장 힘들었죠.” 유학을 다녀온 후 그는 1986년 음악대학(現 음악학부)에 전임대우강사로 부임했다. 1년 뒤 전임교수가 된 그는 28년 동안 강단에 섰다.

  “미술이 공간의 예술이라면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죠. 미술가는 그림을 그리다가 망치면 화폭을 구겨버리면 되지만 음악가는 그럴 수 없거든요. 시간은 흘러가 버리잖아요. 다시 되돌릴 수가 없죠.” 그는 음악은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완벽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천 번을 무대에 서봤지만 매번 공포심을 느껴요. 그래서 매일 연습해야 해요.” 그의 목에는 고된 연습의 흔적으로 붉은 바이올린 자국이 남아 있다. 오른팔을 들 때마다 통증이 있다고도 했다. 그리곤 ‘직업병’이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김기재 교수에게는 연습의 고됨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학생도 ‘동료’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학생들과 격이 없는 술자리를 한다. 그럴 때면 학생들도 제자가 아닌 ‘미래의 동료’다. “학생들도 나이 들면 누군가를 또 가르치게 될 거잖아요? 그래서 선생의 역할이 중요해요. 학생들에게는 제가 모델이 되는 셈이죠.” 그는 학생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요즘 학생들의 강한 자의식과 독특한 개성이 그에겐 때론 자극이 된다고 했다.

  그는 음악학부 학생들에게도 잊지 않고 말을 전했다. “음악학부 학생들 중에서 음악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참 많아요. 몇 번씩 슬럼프가 와요. 그걸 이겨내야 하거든요. 연습하다 보면 진전이 안 되는 경우도 그래요.” 김기재 교수는 그동안 음악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많이 봐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학생들에겐 다양한 진로와 방향이 있는데 너무 먼 미래까지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매 순간이 중요해요.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사실 다 헤쳐나갈 길은 있거든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매 순간을 살자는 것이 김기재 교수의 철학이다.

  퇴임 후 김기재 교수는 명예교수로 강의 수는 줄어들지만 조금씩 강의를 이어 나가게 된다. 인터뷰 이후 일정을 묻자 다시 바이올린 연습을 하러 간다고 했다. 그의 인생에 제2악장이 열린다. 그의 새로운 연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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