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사이에서 서헌제 교수(법학과)의 강의는 빡빡하기로 유명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미리 예습해오지 않은 학생에게는 어김없이 교수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강의에 대한 집요함은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할 정도였다. 강의면 강의, 연구면 연구,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던 호랑이 교수. 그런 그가 어느덧 33년이라는 긴 교수생활을 마무리하며 지난날을 반추해보고 있다.

 유신정권 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서헌제 교수는 사회 정의와 인권에 관심이 많아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기업에 취직해 무역과 관련된 일을 했지만 그는 시키는 일만 하고 싶진 않아 교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교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연구를 하면서 살 수 있기 때문에 적성에 잘 맞았죠. 대신 이를 뒷받침할 실력을 갖춰야 했어요.”

 그는 젊은 시절 하루 열 시간 이상을 연구에 매진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전공인 상법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했다. 재직 기간 동안 집필한 『국제경제법』, 『국제거래법』 등 스무 권 이상의 전공 관련 서적이 그의 노력을 증명해주고 있다.

 강단 위에서도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서헌제 교수는 학생들에게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법학을 좀 더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심했다. “미국 유학 시절, 그곳의 로스쿨에서는 수업 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의 토론 열기가 활발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진정한 대학수업이 이런 것이구나’하고 깨달았어요.” 이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살아있는 강의’를 하기 위해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날그날 강의할 내용에 대한 질문 열 개 정도를 미리 만들어간 후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학생들이 좀 더 능동적으로 지식을 얻어가길 원했다.

 그러나 앞만 보고 살아왔던 서헌제 교수에게도 아쉬운 점은 있다. 그는 지난날 학생들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고자 하는 욕심에 그들을 좀 더 부드럽게 이끌어나가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젊은 시절, 수업 도중 말을 듣지 않는 한 학생에게 사랑의 매를 든 적도 있어요.(웃음)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날카로웠던 그의 눈매도 60여 년의 세월과 함께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제 곧 중앙대를 떠나는 그는 법학을 배우는 학생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편치가 않다. 중앙대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의 대부분이 로스쿨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남아 있는 법학과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진로 면에서도 많은 회의감을 갖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는 학창 시절 취업준비에만 매달려야 하는 어린 학생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교회법학회’ 학회장이자 목사로 거듭난 서헌제 교수는 퇴임 후 종교 활동과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현역에서는 은퇴했지만 평생 연구하는 학자로 남고 싶어요.” 한국의 교회법을 개선하고 싶다며 제2의 삶을 시작하는 그의 눈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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