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겐 학교, 교직원들에겐 직장인 중앙대지만 누군가에겐 집이 되기도 한다. “중앙대를 내 집으로 생각할 때 일을 즐겁게 잘 할 수 있었어요.” 32년 동안 안성캠 방호원으로 정년을 채운 이상봉씨(59세)의 업무 노하우다. 24시간 동안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는 그에겐 학교가 곧 집이라는 말이 어쩌면 당연하다.

  1983년까지 목수로 일하던 그는 중앙대에서 방호원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중앙대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 하게 된 일이지만 방호원이란 직업은 그에게 천직처럼 잘 맞았다. “이전에 일하던 때보다 근무 환경이 훨씬 좋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일할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았죠.” 그의 책임감은 이후 2년, 5년 동안 각각 반장과 방호원장으로 결실을 맺기도 했다.

  근무 환경에 늘 만족하던 그였지만 정년퇴임을 앞두고 아쉬운 점은 있었다. “공부가 짧았던 점이 늘 아쉬워요. 학생들과 대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특히 외국인 학생들이 길을 물을 땐 내가 영어를 못해서 어려움이 있었죠.”

  그가 일을 시작한 30여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옛말이 아니다. 당시 청소할 때는 빗자루로만 건물 전체를 일일이 쓸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건 학생운동이었다. 학생운동이 많았던 그 시절 학생들과 전경들이 한바탕 하고 난 뒤에는 바닥에 널린 돌과 최루탄 잔해를 치우는 것이 고역이었다. “특히 보도블럭을 깨서 많이 던졌어요. 안성캠 정문 바닥이 원래 보도블럭이었는데 하도 깨져서 아스팔트를 깐 거라니까요.(웃음)”

  그는 동시에 중앙대의 학부모였다. 아들이 행정학과로 입학해 경영학과로 졸업했기 때문이다. “중앙대는 내 가족을 먹여 살린 오랜 직장이기도 했고 내 아들의 모교이기도 해요. 결국 내 삶 전체나 마찬가지죠.”

  정년퇴임 후 그는 건강을 챙길 계획이다. 목수 일을 할 때 술을 자주 마셔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퇴임한 후에는 공기 좋은 시골에 내려가 요양을 좀 할까 생각 중이에요. 여기저기 등산도 자주 다니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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