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브라운관이 아닌 외부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가수들을 행사용 가수라고 비하하곤 한다. 그러나 무대가 아닌 교단에서 ‘외부 행사’를 뛰는데 열중한 교수가 있다. 툭하면 강의실 밖으로 나가 학생들과 문학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했던 전영태 교수(문예창작전공)에게는 강의실 밖이 진정한 교단이었다. ‘행사용 교수’라는 별명은 그가 중앙대에서 있었던 27년을 마무리하며 받은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중앙대에서의 27년을 포함해 중·고등학교와 충북대까지 총 40여 년을 교단에서 보낸 전영태 교수는 정년퇴임이 아쉽지만은 않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강단에 섰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교직에 있었어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긴 시간 강단에 서 온 그였지만 문학을 사랑하기 시작한 삶은 훨씬 전이었다. 원래 소설가를 꿈꿨던 그에게 학부 시절 은사 김윤식 교수(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는 문학 비평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전영태 교수는 그날로 문학인으로 ‘낙인’ 찍혔다. “문학 하는 사람들은 대개 선생에 의해 영향을 받아요. 글에 대한 칭찬이 당사자를 문학의 길로 나아가게끔 하는 거죠.”

  전영태 교수가 그의 은사를 통해 문학인이 된 것처럼, 그 역시 문예창작전공 제자들과 교감하고 어울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같이 ‘노는’ 것이다. 자주 학생들과 술 마시면서 이야기를 즐기다 보니 그에게는 어느새 ‘술 권하는 교수’라는 별명도 생겼다. “학생들과 자주 여행을 다니며 술을 많이 먹었죠.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넉 다운’시키는 데서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웃음)”

  학생들과 놀다가 생긴 추억도 있다. 서남산 문학기행을 하며 기차에서 이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날 유독 술을 많이 마신 한 여학생이 얼굴이 창백해진 채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큰일 났다 싶었어요. 헐레벌떡 그 학생을 업고 병원 입구까지 뛰어갔죠. 근데 병원 입구에서 그 학생이 내 등 뒤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아 잘 잤다’ 이러더라고요. 숙취로 곯아떨어진 거였죠. 깜짝 놀랐어요.”

  그는 학생뿐 아니라 중앙대 문예창작전공에 대한 애정도 누구보다 크다. “중앙대 문창과는 타대 문창과의 효시가 되는 학과에요. 학교와 학생들이 이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최근 문예창작전공 전임교원충원 문제에 대해 아쉬움도 전했다. “문예창작에 있어 교수와 학생 사이는 도제관계와 같아요. 교원의 수와 역할이 중요하죠. 전임교원충원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충분히 오래 강단에 섰지만 전영택 교수는 아직도 더 ‘놀고’ 싶은가 보다. 그는 문예창작전공 명예교수로 임명돼 쉬는 기간을 가지면서 강의를 계속할 계획이다. 퇴임 이후 그는 전국 방방곳곳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오래 서울에서 살았더니 지루하더라고요. 제주, 거제 등 모르는 곳에서 1~2년씩 살아보고 싶어요. 아, 물론 월세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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