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의혈창작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절집 아기, 교동 골목]
  • 중대신문
  • 승인 2014.12.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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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집 아기

 
아기가 살지 않는 깊은 산골 절집에 사는 아기.
 
고추도 가리지 않은 오동통한 아기는
할머니가 짜준 마가목 열매처럼 빨간 모자에
이모랑 고모가 사준 쬐만한 고무신을 신고
보드레한 뺨이 복숭아처럼 발그레해지도록
담장 밑으로, 연꽃이 핀 작은 못가로, 극락전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깨금발로 뛰다 개나리꽃잎 하나 머리에 이고
모둠발로 뛰다 벚꽃잎 하나 뺨에 붙이고
훌쩍 뛰다 연꽃잎에 주룩 미끄러진다.
괜히 서러워 쪼르르 지장보살님한테 달려간다.
 
보살님, 보살님! 연꽃잎이 나를 밀었어요.
나쁜 꽃이에요. 때찌 해주세요!
엄마처럼 때찌해주세요. ? 네에?
 
눈물방울에 콧물방울까지 매단 아기의 조름에
지장보살이 인자한 손으로 물 한 방울 튕겨
제 자리에 피어 있을 뿐인 연꽃잎을 때찌하고
아기는 손뼉 치며 두 발로 콩콩 뛴다.
 
극락전 지키는 검둥이 녀석이 달려와
석양에 기대 까무룩 잠든 아기를 컹컹 부른다.
아가, 아가. 어서 일어나!
손님 왔어, 손님 왔다고!
 
사람 그리운 아기는 검둥이 녀석을 쫓아
절집 찾아온 손님을 마중 간다.
날듯이 내달린다. 아기의
고무신 한 짝이 벗겨져 저만치 날아간다.
짝발로 손님 마중간 아기가 훌쩍훌쩍 운다.
고무신들 사이에 노란 새 고무신을 놓는
긴 머리 손님 앞에서 운다.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며 운다. 코를 줄줄 흘리며 운다.
엄마, 엄마아. 나 여기 있어.
 
 
교동 골목
 
 
구름처럼 몰리고 밀리는 관광객에
바가지로 무장한 잡다한 먹거리들
수시로 흉기로 변하는 셀카봉 행렬.
 
수로와 함께 흐르던 낭만도 운치도
사라진 골목, 전주의 교동 골목.
어쩌다 이렇게 됐어. 눈물 나잖아.
 
서글픈 마음에 맞잡은 손 꼭 쥐고
살 오른 길고양이 발자국 따라
어둑한 오래된 골목에 그림자 찍는데
 
감나무, 개 조심, 빨랫줄, 녹슨 대문
익숙한 내 친구 얼굴처럼 정겨워라.
골목아, 넌 변치마라. 지금이 너다워.
 
 
[심사평]
 
  대학생들의 시 창작에 대한 욕구가 예전 같지 않다. 시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시가 우리 꿈의 우물에서 찬물을 길어다 줄 두레박을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투고되는 작품의 수도 많지 않고 작품의 수준도 하향 평준화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당선작을 못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밑에 깔려 있던 마지막 작품을 힘없이 손에 들었다. 한 편 한 편 읽어 나가는데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하나같이 해학성이 깃들어 있는 시였다. 서구에서는 위트나 유머라고 하는 것, 우리의 전통적인 미학인 골계미가 편편의 시에서 느껴져서 됐다, 하고 무릎을 쳤다. 사람을 그저 웃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주면서도 애잔함을, 쓸쓸함을, 따뜻함을 전해주는 것이 골계미가 아닐까. 여기에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가미되면 풍자가 되는 것이다.
  투고된 작품 중 똥 밟았다!」「휴일」「냉장고」「5월이란 말이시등도 재미는 있지만 시적 대상에 대해 너무 가볍게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위트나 유머가 해학성을 동반하지 않을 때, 농담이나 재담의 차원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투고자는 유념했으면 한다. 당선작은 10편의 시 중에서 절집 아기교동 골목2편을 선정했다.
깊은 산골에 아기가 살지 않는데, 어떻게 된 게 "고추도 가리지 않은 오동통한 아기"가 깊은 산골에 자리잡은 절간에서 커가고 있다. 절의 이곳저곳이 자신의 놀이터다. 그런데 넓은 절에 사람이 없다. 아기는 혼자 뛰어놀며 넘어지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한다. 사람이 너무나 그립다. 마침내 "긴 머리 손님"이 참으로 오랜만에 이 절에 찾아왔다. 고무신 한 짝이 벗겨져 저만치 날아갔는데 그 고무신 찾아 신지 않고 짝발로 달려가는 장면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아기는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며 울고 코를 줄줄 흘리며 운다. 기쁨과 설움이, 웃음과 눈물이, 외로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의 가슴에 온기를 전해줄 것이다. 전주의 교동 골목을 노래한 시도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한다. 전주시 교동에 있는 한옥마을이 관광지가 됨으로써 옛 정서가 사라지고 있음을 투고자는 안타까워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 눈물 나잖아.""골목아, 너 변치 마라. 지금이 너다워." 같은 구어체 표현이 정답고 따스하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데, 그 미소 속에 슬픔 내지는 서글픔이 깃들게 한다. 이 시를 쓴 학생은 실력을 더욱 탄탄히 다져 침체기에 든 것 같은 우리 시단에 시의 금자탑을 세워주었으면 좋겠다. 휴일이나 냉장고처럼 지나치게 말의 재미, 상황의 엉뚱함에 치중하려고 하면 시가 '개그'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기를.
미아 66편을 투고한 학생은 틀림없이 등단할 것이다. 언어를 운용하는 재주가 비상하다. 그런데 명분이 없는 난해함이라고 할까, 뛰어난 말재주와 튀는 상상력이 오히려 약점이라고 느꼈다. "이름에서 이름을 놓치고/ 약국 문을 흔들립니다" "타인의 낱말을/ 당신 없는 이름에서/ 결정된 당신입니까?" 같은 비문을 쓰는 것이 오늘날 우리 시단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위험천만한 일이다. 언어를 신중히 다루기를 바란다. 아무튼 절집 아기의 짝발 뜀박질 장면은 오래오래 나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이승하(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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