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의혈창작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비보호]
  • 중대신문
  • 승인 2014.12.2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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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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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선율이 점차 선명히 귓가에 와 닿는다. 듣기 싫은 알람 소리 같아 당장에 꺼버리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가시면, 이불 밖에 나와 있던 손을 배에 얹는다. 현정은 두두룩 솟은 배 언저리를 손바닥으로 토닥인다. 조금 있으면 속에서 톡 대꾸를 해온다. 잘 잤니,라고 말을 거는 건 옆에 남편이 있을 때뿐이다. 눈을 뜬다. 벽면에 걸린 결혼사진을 본다. 박제한 듯한 자신의 웃음과 어깨에 손을 얹고 미소를 띤 남편의 얼굴을 얼마간 바라본다. 햇살이 액자를 가로지르고 있다. 줄기를 따라 창가로 눈동자를 돌린다. 암막 커튼이 서로 맞물리지 못한 사이로 햇살이 새어든다. 현정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다. 그대로 가부좌를 튼다.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까지 명상을 한다.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지만 곡조를 기억하고 있다. 십 분 정도 뒤 다음으로 넘어갈 것이다. 태아는 그동안 몇 번 발길질을 한다.
식탁에 놓인 컵을 집어 든다. 전날 밤에 미리 따라 둬서 냉기가 가신 물이다. 한 컵을 천천히 다 비운 뒤 화장실로 향한다. 용변을 보고 손을 씻다 거울 가까이 얼굴을 댄다. 턱을 숙이고 눈을 치켜떠 정수리를 살핀다. 밤새 새치가 더 는 것 같다. 기분 탓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숨을 쉬듯 시선이 툭 떨어진다. 바닥 타일에 낀 물때를 보고 슬리퍼 코로 때를 문지르다 시야를 가로막고 튀어나온 배를 본다. 윗옷을 든다. 아홉 달이 지나고 나니 더는 붇지 않는다. 완전한 만삭이다. 현정은 손바닥으로 배를 쓸다가 임신선을 따라 검지를 죽 내린다.
커튼을 걷는다. 이부자리를 개키고 마른 걸레를 빤다. 쭈그려 앉은 자세로 걸레질을 하다 보면 금방 요의가 느껴져, 몸을 일으킬 땐 오줌 방울이 찔끔 나온다. 현정은 괜히 민망해져 누군가의 시선을 피하는 양 텔레비전을 본다. 육아출산 관련 교양 프로그램에선 부부간의 성생활을 개월 수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현정은 남편과의 마지막 잠자리를 떠올린다. 두 달쯤 됐을까. 산달에 접어들면서는 섹스를 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풍경처럼 멍하니 브라운관을 보다가 문득 몸을 틀어 바닥을 닦는다.
샤워를 마치고 가뜬해진 몸으로 소파에 앉는다. 가져온 동화책을 읽는다. 하루가 시작되고 처음 입을 떼는 거라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다. 엇나가며 갈라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읽는 속도가 빨라지는데, 다시금 익숙해지며 마지막에 가선 꽤 괜찮은 구연동화 같은 마무리를 짓는다. 현정은 티브이 옆 책꽂이에 책을 꽂고 나서 티브이 받침 아래 서랍을 연다. 바느질과 자수, 뜨개질 거리가 들어 있다. 망설이다가 빨간 털실과 뜨개바늘을 집어 든다. 털실이 감추고 있던 자리에 놓인 화투갑이 보인다. 화투패의 등을 보다가 서랍을 닫는다. 일어나서 한쪽 창문을 살짝 연다. 후끈하게 끼치는 기운이 얼굴을 덮는다. 며칠 전만 해도 찬 바람에 으슬으슬 몸을 떨어서인지 현정은 더위가 거리끼지 않는다. 높은 수치의 온습도계를 보며 창을 닫을까 잠시 고민하지만 그대로 둔 채 열어둔 만큼 커튼을 친다. 물결처럼 흔들리는 커튼 자락을 보며 현정은 설핏 도리엄마를 떠올린다. 그녀가 올 것만 같은 날씨다. 현정은 달아오른 숨을 몰아쉰다.
소파에 기대어 뜨개질을 한다. 바깥 소음은 공사하는 소리가 주를 이룬다. 한창 건축 중인 빌라촌이었다. 거기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울음소리, 엄마들이 외치는 소리가 섞인다. 현정은 다른 건 개의치 않지만 아래층 편의점의 간이테이블에서 나는 손님들 목소리엔 항상 신경이 쓰인다. 쉬이 끊이지 않는 말들이 창을 타고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꼭 모기가 주변에 날아다니는 것만 같아서, 여름밤은 악몽처럼 끔직했다. 귀마개를 끼지 않고 자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을로 접어들며 아침저녁의 기온이 부쩍 떨어져 밤도 서서히 침묵을 찾았다.
남편과 짧은 통화를 마친다. 뜨개 거리를 옆에 두고 담요를 집으려다 안방에서 모시이불을 꺼내 온다. 누워서 이불을 배에 덮는다. 옆으로 눕고 싶어. 현정은 눈 감을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밤잠은 진이 빠져버려 쉽게 들지만 낮잠은 그러질 못했다. 휴대폰을 든다. 같은 지역의 유부녀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접속한다. 최신 글들부터 훑는다. 모 식당의 유아방 서비스가 별로였다, 시부모가 이런 참견을 했다, 돌잔치 때 금반지를 이만큼 받았다, 아이가 상처를 입었다, 남편의 태도가 께름칙했다, 식의 말들이 이어져 있다. ‘들이 모인 곳인 만큼 그들의 글은 대부분 가정을, 그중에서도 자신들을 맘이 되게 해준 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정은 지역맘 카페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궁금하기도 했지만, 편의점 잡담과 다를 바 없겠거니 하는 생각이 뒤이어 들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생활의 사이사이로 카페에 접속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단순한 흥밋거리 이상의 어떤 의미로 자리 잡게 된 듯했다. 특히 남편이 떠난 후로 체감을 했다. 활동이 잦은 맘들의 익숙한 이름을 보며 현정은 그들에게 친근감이 들고 한 번씩 말도 섞어보면서 그녀 나름의 정을 쌓아갔다.
한 게시판이 어제 방영했던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이야기로 한창이다. 현정도 시청을 한 거였다. 세 달 전쯤부터 지역의 전철역에서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노숙 부부의 사연이었다. 생후 삼 개월짜리 아기를 데리고 전전긍긍 사는 부부를 방송에 제보하고, 제작진이 촬영에 나서자 직접 물품구호까지 나선 것 모두 이 카페의 주동이었다. 부부는 구청의 도움을 받아 방 한 칸을 얻고 일자리 지원도 받게 되었다. 게시판을 채운 제목들만 나열해 보아도 카페의 자긍이 오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정은 덧글이 많은 글을 누른다. 프로그램의 장면이 캡처되어 있다. 구호에 앞장섰던 주호엄마의 인터뷰 장면이다. 흰 셔츠에 머리를 가볍게 묶어 올린 그녀는 한 팔에 주호를 안은 채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같은 엄마로서 그저 지켜만 볼 수는 없었어요. 이번 기회에 그분들이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알아주셨음 싶네요. 장면에 같이 캡쳐된 자막을 읽으며 현정은 방송에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생김새와 어울리는 단정하고 깔끔한 음성이었다. 현정은 방송이 아닌 다른 곳, 어느 작고 비좁은 원룸에서도 그녀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손을 내민 주호엄마는 자신 앞에 앉은 도리엄마의 무릎을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같은 엄마로서 그저 지켜 볼 수만은 없었어, 무슨 말인지 잘 알죠? 도리엄마는 작은 입술을 좀체 열지 않으며 그저 설면한 기색으로 벽면에 쌓인 육아용품들만 바라보았다. 현정은 주호엄마의 옆에서 천장 구석의 거미줄을 올려보다가 언뜻 시선을 느꼈다. 자신을 보고 있던 도리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현정은 움찔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기억에 남았다.
도리엄마의 닉네임을 검색해 본다. 늦여름 이후론 흔적이 없다. 자신의 집에 마지막으로 왔을 즈음이다. 현정은 커튼을 치지 않은 쪽 창을 본다. 지금 더위와는 맞지 않은 에어캡이 붙어 있다. 지난 주말 남편이 온 집 안의 창에 붙인 거였다. 그는 어수선하게 의자를 끌고 다니며 에어캡을 붙이다가 땀이 맺히자 벌써 단열 효과가 나려나 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장기출장으로 남편이 집을 떠난 뒤로 주말부부가 된 지 어느덧 두 계절이 지났다. 현정은 가볍게 고개를 젓는다. 휴대폰을 놓고, 배에 손을 얹으며 눈을 감는다. 자야 해. 자야 할 시간이야. 속으로 달래듯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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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엄마는 한때 카페를 들썩인 유명인사였다.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의 풋기운이 가득한 그녀와 그녀의 아이가 찍은 사진이었다. 카페의 여느 맘들처럼 딸 자랑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회원들이 규칙 어긴 글을 보기라도 한 듯 술렁였다. 그 속에는 도리엄마가 카페에 남긴 이전 글들을 검색해 본 이들의 우려가 있었다. 이전 글들이라고 해봤자 한밤중에 귤을 먹고 싶은데 혹시 살 데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 아이가 갑자기 토를 심하게 했는데 괜찮으냐, 지금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육아용품을 사본 사람이 있으면 어떤지 좀 알려 달라, 식의 평범한 게시물 수준이었다. 당시의 덧글들도 모난 것 없었다. 하지만 그게 스무 살 애엄마가 쓴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투였다. 호구조사 같은 궁금증들이 쌓여갔다. 아기는 생후 오 개월이었다. 남편은 없고, 부모에게 쫓겨나다시피 해 겨우 전세금만 받아 혼자 사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껍질이 벗겨질수록 조언을 빙자한 덧글이 달라붙었다. 사정이 딱하다, 남일 같지가 않다, 인사치레를 바탕에 깔고선 아이를 위해서라면 본인이 집에 그렇게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주먹구구식의 생계가 언제까지 갈 것 같으냐. 가지의 가지가 뻗쳤다. 그 와중에 그녀를 위해 도움을 줄 물품을 모집하는 사람이 생겼다. 도리엄마는 사양했지만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입금까지 해주겠다는 이들이 있을 만큼 참여도가 대단했다. 현정 역시도 미리 사두었던 속싸개나 로션 같은 걸 몇 개 챙겼다. 도리엄마가 지내는 곳은 현정의 집에서 몇 정거장 안 떨어진 대학가 원룸촌이었다. 저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괜히 더 마음 아프네요. 큰 도움은 아니지만 힘이 되었으면 해요. 딸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예뻐요. 좋은 엄마가 되실 거예요. 현정의 댓글을 보고 개인 쪽지가 왔다. 물건을 모으고 있는 회원인 주호엄마였다. 현정은 물건을 택배로 부쳐줄 생각이었는데 주호엄마가 물건을 직접 가지러 오겠다며, 그 김에 같이 도리엄마의 집을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도리엄마와 현정은 그 이후 우연히 산부인과에서 마주쳤다. 둘은 현정의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고, 도리엄마는 대여섯 번을 연락 없이 더 찾아왔다. 대여섯 번 모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아주 궂은날이었다. 도리엄마는 마치 그날이 오기만 기다린 사람처럼 인터폰 너머에 서 있었다. 폭염주의보 발령이 나서 창문이 불판처럼 달아오른 날이나, 하늘에 구멍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일 때였다. 그녀가 메고 온 아기띠는 늘 땀 아니면 비에 젖어 있었다.
우산을 쓰고도 비에 쫄딱 젖은 몸을 털어내고 수건으로 아기의 몸도 닦아준 도리엄마는 여름 매트에 앉아 거실을 빙 둘러보더니 대뜸 집에 화투가 있느냐고 물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던 현정은 어리둥절해진 얼굴을 가로저었다. 도리엄마는 곧장 편의점에 가 화투를 사왔다. 시간 때우는 덴 이게 딱이에요. 한 판 할래요? 뒤집기를 하려고 몸을 끙끙거리는 도리를 보다가 현정은 아뇨, 괜찮아요, 하고 커피를 내왔다. 도리엄마가 어깨를 으쓱하며 패를 섞으려는데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그녀는 익숙하게 알람을 끄고 물 한 컵을 청했다. 현정이 물을 건네자 챙겨온 약과 같이 삼키며 웃었다. 언니 집 보리차 맛있네요. ,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언니도 편하게 말 놔요. 현정은 주호엄마 앞에서 난처해 하던 도리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던 것도 잠시, 온몸 힘껏 기지개 켜는 도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혹시 생리대 있어요? 현정은 작은 방으로 가 기저귀 옆에 둔 생리대를 집었다. 좁은 방은 열기로 그득했다. 서둘러 거실로 나왔다. 화장실 문틈 사이로 내민 도리엄마의 손에 생리대를 쥐여주고 에어컨 앞에 등지고 섰다. 도리는 소파에 대자로 뻗어 색색거리며 자고 있었다. 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카페의 닉네임이기도 한 도리는 아기의 태명이었다. 고도리의 도리. 화투패에서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라고 했다. 뭐랄까, 가장 자유로워 보이잖아요. 새라서 그런가? 변기 레버 소리에 현정은 도리엄마가 가져온 모포로 가 앉았다. 도리엄마도 현정의 맞은편에 앉았다. 둘은 각자의 패를 들었다. 임신했을 땐 생리 안 하는 게 그렇게 좋았는데. 도리엄마는 딱 소리가 나게 홍초단에 홍싸리를 놓으며 투덜거렸다. 현정이 홍싸리 말고는 먹을 패가 없어서 머뭇거리는데, 도리엄마가 금세 웃는 얼굴이 돼선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아, 가슴 커진 것도 좋았어요. 나 완전 절벽이었는데 비 컵까지 큰 거 있죠? 언니처럼 원래 큰 사람들은 이 기쁨을 몰라요. 현정이 패를 낸 걸 보긴 한 건지 도리엄마는 제 차례가 온 줄도 모르게 깔깔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치를 보더니 혹시 이런 얘기 싫으면 관둘게요, 했다. 아냐, 그런 거. 현정은 자신이 너무 빨리 대꾸해 버려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도리엄마는 수다스러운 편이었지만 현정은 그게 편의점 잡담을 듣는 것처럼 불쾌하지는 않았다. 한 번씩은 도리엄마 본인도 조절할 수 없는 말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내기도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차마 막지 못할 연민이 들었다. 도리엄마는 집게손으로 패를 집으며 웃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오케이, 청단. 언니는 남편분이랑 사이가 어때요? 현정은 쟁반으로 손을 뻗어 포도알을 입에 넣었다. 혀로 굴리다가 과즙이 툭 터지게 씹었다. 언니는 몸매도 되고, 주말부부겠다, 남편이 가만두질 않을 것 같은데. 도리엄마도 잘라놓은 수박을 포크로 찍어 먹었다. 현정은 포도 씨를 뱉고 비도리에 비광을 놓았다. 딱히 그렇지도 않아. 다른 패는 맞는 게 없었다. 우리는 꼭……. 모르겠어. 각자 해결하는 것 같아. 서로의 몸을 이용해서. 비도리와 비광을 집어서 자리에 뒀다. 그러는 것 같아. 반쯤 내리깐 시선으로 포도 한 알을 더 떼어 먹었다. 적막이 찾아오나 싶을 때 도리엄마가 가부좌 튼 현정의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언니, 나도 전에 남편이랑 살았을 때 그랬어요. 분명 침대엔 오빠랑 나 둘뿐인데 어느 순간 세 명이 또 네 명이 되기도 했어요. 서로로는 만족을 못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막 떠올리면서 상상하는 거예요. , 삼광까지. 스톱. 내가 너무 이겨버리네. 모포 위로 작고 하얀 손이 패를 뒤섞었다. 등 뒤로 도리가 우는 소리를 냈다. 도리엄마는 도리를 안아 어르면서 데려왔다. 지금 젖 먹이면 더 자요, 잠깐만요. 윗도리를 들추고 수유 패드를 빼고선 브래지어를 끌어올렸다. 아기는 곧장 젖을 빨았다. 등을 도닥여 주자 숨소리가 점차 커지며 거실을 메웠다. 자면서 입술은 계속 오물거렸다. 목 넘기는 소리가 현정에게도 들렸다. 긴 속눈썹과 또렷한 입술산이 도리엄마와 꼭 닮았다. 현정은 화투패의 우둘투둘한 등을 만졌다. 남편은. 도리엄마는 아기를 내려다보던 눈썹을 들어올렸다. 남편은, 항상 마지막에 가서 죽여 달라고 그래. 현정은 패를 놓고 손바닥을 모포에 문질렀다. 다른 말은 덧붙이지도 않아. 그냥, 죽여줘,라고 해. 죽여줘, 죽여줘, 하고. 도리엄마는 현정을 가만히 보다가 젖을 뗐다. 아이를 눕히고 손수건으로 젖꼭지에 솟은 모유 방울을 닦으며 패드를 넣고 브래지어와 옷을 내렸다. 그럼, 죽은 남편의 몸에서 보석이 나온 거네요. 어깨를 으쓱하며 도리엄마는 웃었다. 안 그래요, 보석엄마?
아이를 밴 동안 현정은 남편과 다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금요일 밤에 와서 일요일 저녁에 떠나는 시간 정도는 부부가 각자 충분히 감정을 다스렸다. 무언의 규칙 같기도 했다. 현정은 남편이 자처해서 출장을 갔다는 걸 어렴풋 짐작했다. 어떤 날은 그가 제 몸만 사린 것 같아 사무치게 괘씸했다. 그러다가도 한밤중 회식자리의 술에 절어 아이처럼 징징거리는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듣고 있노라면, 그래, 서로에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고깃집이나 곱창집 앞 보도블록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어 대는 몸이 곁에 없다는 게 안심이었다. 현정은 누군가를 더 보듬을 여력이 없었다.
자잘한 불만들이 쌓여 터지는 때도 있기는 했다. 시시콜콜한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문지라, 나중에 되짚어보면 발단이 무엇이었는지 감도 잡지 못했다. 비가 들이붓는 새벽에 화를 제대로 삭이지도 못한 남편이 떠나고, 몇 시간 뒤 도리엄마가 찾아왔다. 현정은 사소한 말에도 날이 서 있었고 도리엄마는 그런 현정의 기분을 풀어줄 요량으로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카페의 화젯거리랄지 안 보던 사이 도리가 새로이 움직이게 된 점들……. 언니, 그거 알아요? 언니 카페 사람들이랑 우리 집 다녀가고 나서 나중에 산부인과에서 마주쳤잖아요. 실은 그전부터 나는 언니 얼굴 알고 있었어요. 로비에서 몇 번 봤거든요. 언니가 매번 남편 없이 오길래 나처럼 혼자 애 키우는 줄 알았어요. 말 한번 걸어보고 싶더라구요. 가까스로 몸을 뒤집으며 방싯거리는 도리를 우두커니 보고만 있던 현정은 그제야 도리엄마를 쳐다봤다. 나도 미혼모인 줄 알았다고? 도리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나쁜 뜻은 아니에요, 언니. 현정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도리엄마도 입을 다물었다. 현정은 텅 빈 기분이 휩싸였다. 이게 허전한 건지 허기진 건지도 분간이 안 됐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공허함이 바깥의 비처럼 온몸에 쏟아졌다. 뱃속의 발길질을 무시하며 현정은 남편과 싸운 대화 한마디 한마디를 집요하게 짚어 보았다. 요 몇 달 깜박 잊어 제때 내지 못한 관리비, 빨래거리를 늘 집으로 가져오는 남편, 출장 기간이 더 늘지도 모른다는 한숨……. 그중 고기 얘기도 있었다. 부부는 둘 다 육고기를 좋아했지만 바짝 익히는 건 남편의 취향이었다. 남편은 다 익은 고기도 불판에 꾹꾹 누르고서야 입으로 넣는 성미였다. 한번은 현정이 육회를 먹고 싶다고 하자 적잖이 황당한 얼굴의 남편은 좀 참아, 알아서 먼저 가리지는 못할망정, 하고 핀잔을 놓았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손톱도 제대로 안 자르고 뭐 했냐는 소리에 대꾸를 하다가 그때의 고기 얘기까지 나왔다. 그거 조금 먹는다고 애 망칠 일 없다고, 당신은 보석 말고 내가 보이기는 하는 거냐며, 그럼 당신도 내 앞에서 익힌 고기 먹지 말라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을 되는대로 지껄인 현정이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던 현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리엄마가 뭐라 말 붙이기도 전에 집 밖으로 나가 근처 고깃집에서 육회를 이 인분 포장해왔다. 식탁에 펼쳐놓고 도리엄마에게 먹으라고 하며 먼저 앉아 자기 몫의 뚜껑을 열었다. 가슴처럼 봉긋하게 쌓아놓은 육회 가운데에 젓가락을 꽂았다. 모양을 흐트러뜨렸다. 몇 가닥을 집어 들어선 침이 고이도록 앞에 들어 보다가 입을 벌렸다. 맞물리는 치아 사이로 연한 질감을 느꼈다. 혀끝을 통해 육즙의 맛이 퍼져나갔다. 바짝 구운 고기에선 절대 맛볼 수 없는 거였다. 한참을 내씹다가 삼켰다. 쉬지 않고 젓가락질을 했다. 마지막 가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코를 박듯 구부정히 있던 허리를 펴고 물을 마시려고 하니, 식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도리엄마를 발견했다. 안 먹어? 육회 좋아한다지 않았니? 도리엄마는 엷게 웃으며 현정에게 그릇을 밀었다. 마저 먹어요, 언니.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도리엄마는 알람을 끄고 알아서 냉장고로 가 물을 따랐다. 현정은 남은 몫의 육회를 씹어 삼키며 저게 무슨 약인지 여태 물은 적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다가, 이내 다시 젓가락질에 몰두했다. 그리고 분리수거통에 그릇을 넣은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먹은 걸 모조리 게워냈다. 도리엄마는 참을성 있게 변기통을 붙잡은 현정의 옆에 쭈그려 앉아 등을 쓸어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언니. 화장실 문 밖으로 도리 우는 소리가 자지러졌지만 도리엄마는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게 그녀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3
 
외출은 몰아서 하는 편이다. 주로 남편이 오는 금요일로 잡는다. 현정은 아침 일찍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남편의 옷을 찾아와 시간 확인을 한다. 산부인과 예약까지 여유가 있다. 냉동실에 얼려둔 소고기가 생각나 뭇국을 끓일 생각으로 간단히 장도 본다.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 남자들이 알은체를 한다. 남편 오는 날 아니냐며, 고기는 필요 없느냐고 묻는다. 저번에 사고 남은 거 있어요. 예에, 그럼 언제든지 또 오세요, 좋은 놈으로 드릴게. 희롱 같은 웃음을 뒤로하고 현정은 걸음이 빨라진다.
간단히 청소기를 돌리고 나갈 채비를 한다. 냉동실에서 얼린 고기를 빼 싱크대에 둔다. 병원에 다녀오면 알맞게 녹아 있을 것이다. 손수건을 챙겨 넣으며 집을 나선다. 건물 현관부터 부산스러운 목소리들이 울린다. 편의점 간이테이블은 공사장 인부 셋의 술상이 되어 있다. 그들은 종이컵에 가득 채운 막걸리를 주고받는다. 빈 막걸리 통들과 과자 안주, 담배꽁초 따위가 제멋대로 늘어진 술판을 보며 지나가는데 정적이 찾아오자 현정은 인부들에게 눈을 돌린다. 그들의 시선이 자신의 배에 꽂혀 있다. 그러곤 이내 아무것도 안 본 듯 벌겋게 오른 서로의 얼굴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현정도 마찬가지로 모른 척 발걸음을 옮기려다 정육점 방향인 걸 알고 반대편으로 돌아선다. 그쪽에서 불어오는 마른바람에 흙먼지가 인다. 현정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다. 빌라의 바로 옆, 짓다 만 앙상한 철골 구조물로 탓잡는 눈길이 간다. 있죠, 난 전에 오빠랑 공사장에서 자본 적도 있어요. 도리엄마의 웃음소리가 바람처럼 스친다. 현정은 배를 감싸고 앞으로 나아간다. 뜻밖에도 자신은 도리엄마를 꽤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뜻밖이라고밖에는, 그녀도 자신의 속을 알 수가 없다.
휴대폰 사진을 들여다본다. 찰흙을 조물락조물락 만져서 나온 것 같은 얼굴이 있다. 이제는 제법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산부인과 나왔어, 보석이 상태는 아주 좋대.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는데 타고 있던 버스가 휘청거린다. 현정은 반사적으로 기둥을 붙잡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기둥 옆에 앉아 현정을 보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현정은 멋쩍은 웃음을 흘린다. 아주머니는 같이 웃어주다가 돌연 미간을 찌푸리며 뒷사람에게 눈치를 준다. 이어폰을 끼고 게임을 하는 여학생이다. 현정이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저기 학생, 하며 무릎을 탁탁 두드린다. 학생은 힐긋 아주머니를 보는가 싶더니 어어, 하며 잽싸게 게임 조종을 한다. ! 아주머니는 아예 뒷좌석 쪽으로 몸을 튼다. , 왜요? 고개를 쳐들던 아이가 현정의 배를 발견한다. 이어 현정과 눈이 마주치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다. 게임을 망친 모양인지 액정을 보며 아 씨, 하고 읊조린다.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학생! 하고 날을 세운다. 일어났잖아요! 지지 않은 대꾸가 나오기 무섭게 현정은 그들을 번갈아 살피며 손사래를 친다. 전 괜찮아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거라 앉을 필요 없어요. 학생, 거기 앉아, 괜찮아. 아주머니도 저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학생은 현정을 보더니 고개를 꾸벅이곤 자리에 앉는다. 아주머니도 뭔가 말을 붙이려다 혀를 차는 걸로 대신하며 돌아서 앉는다. 아무도 벨을 누르지 않았는데 다음 정거장에 다다르니 버스가 선다. 기사가 거울로 현정을 본다. 모두의 시선이 느껴진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버스에서 내린다. 더운 바람을 일으키며 떠나는 꽁무니를 본다. 가슴께에 찬 땀이 배를 타고 흐른다. 해가 따갑다. 요 며칠 가을 날씨 같지 않은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며 정거장 정차 버스를 확인한다. 방금 탄 버스가 다시 오려면 이십 분 가량은 있어야 하고, 나머지는 다 환승을 거쳐야 한다. 밀린 답답함이 속을 누른다. 좀 걷고 싶은 마음에 현정은 집 방향으로 발을 딛는다.
녹색불인데도 현정이 횡단보도를 지나자마자 대기 중이던 승용차가 움직인다. 현정은 종종걸음으로 인도에 다다르며 뒤늦게 휴대폰 벨소리를 감지한다. 액정에 주호엄마가 떠 있다. 아까 진료를 받던 중에도 전화가 왔던 게 떠오른다. 현정은 가로수 그늘 아래로 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보석맘님, 지금 바쁘세요? 무슨 일 있나요? 현정은 미미한 어지럼증을 느낀다. 시간 되시면 지금 좀 같이 가주셨음 해서요. 어디를요? 도리맘님 집이요. 이왕이면 처음 갔던 멤버대로 갔으면 싶네요. 연락이 닿았는데, 아무래도 대화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요. 주호엄마는 현정이 기억하던 음성보다 높아진 톤으로 말한다. 현정은 얼마 전 카페에서 도리엄마의 근황을 묻는 글이 올라왔던 걸 떠올리며 호기심이 앞선다. 하지만 등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하던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어 망설여진다. 건너편에 고꾸라진 노점 파라솔을 멀거니 보다가 현정은 입을 연다. , 죄송해요. 지금 사정이 여의치 않네요. 많이 바쁘세요? 그게 좀……. 그래요. 어쩔 수 없네요. 알겠어요, 일 보세요. 통화 종료된 액정을 보고서 손을 떨군다. 현정은 티셔츠 자락을 잡아 펄럭인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주변을 살핀 뒤 옷 속으로 손수건을 넣어 살이 접힌 곳을 닦아낸다. 제법 축축해진 손수건을 본다. 도리엄마가 집에 두고 갔던 손수건이다. 귀퉁이에 곰돌이가 그려진 가제수건이다. 그걸 알아차리자 괜히 겸연쩍어져, 손수건을 가지런히 접어서 가방에 넣는다. 남편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확인한다. 아직 읽은 흔적이 없다. 늦을 수도 있다고, 일이 밀려 끝마치는 대로 올라올 거라더니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여긴다. 다시 걷는다. 천천히, 지나치는 나무의 수를 꼽아간다. 나무줄기나 잎사귀에 눈길을 두다가, 현정은 휴대폰을 든다. 주호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보석맘님, 하고 부르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차창이 내려간 승용차에서 주호엄마를 발견한다. 뒷좌석에 몸을 싣는다. 조수석에는 안면이 있는 카페 회원이 타고 있다. 육아일기처럼 아이들 일상 사진을 카페에 즐겨 올리는 회원이다. 인사를 나누고 옆을 본다. 베이비 시트에 앉아 휴대폰 게임에 열중인 주호가 있다. 김주호, 아주머니한테 인사해야지. 주호는 그제야 현정을 발견한 양 안녕하세요, 하곤 다시 휴대폰을 본다. 주호엄마는 룸미러로 못마땅한 눈치를 주다가 내비게이션 설정을 한다. 도리엄마의 원룸이다. 말이 원룸이지 고시텔 수준과 다를 바 없는 탁한 환경이다. 차가 나아가고 몇 분 안 돼 앞좌석에 앉은 회원이 도리엄마가 사는 대학촌이 치안이 안 좋다는 둥, 거기서 요즘 오피스 성매매가 유행이라는 둥, 시궁창 같은 곳이라는 둥의 말을 던진다. 주호엄마는 적당히 받아치며 룸미러로 현정을 보다가 간단한 안부를 묻는다. 현정은 머쓱한 티를 내지 않으려 밝게 대답을 한다. 신호를 받고 차가 서자 주호엄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트레이에 컵을 놓고 유연하게 핸들을 돌린다. 컵에 묻은 입술 자국을 보고 있자니 현정은 가방에 든 손수건이 생각난다. 후회감이 밀려왔다 스러지길 반복한다.
도리엄마는 건물 앞에 나와 있다. 살이 조금 빠진 것 같기도 하다. 도리는 포대기에 싸여 그녀의 품에 안겨 있다. 주호에게 차에 가만히 있으라 주의를 주고 뒤따라오던 주호엄마가 슬쩍 현정의 곁으로 와 중얼거리듯 말한다. 보석맘님, 오늘 있는 일 카페에 좀 올려주시겠어요? 회원님들이 궁금해해서요. 현정은 순간 눈이 동그래져 거절하려는데 주호엄마는 바로 도리엄마에게 가버린다. 도리엄마는 두 여자와 인사를 나누고서 현정을 본다. 현정은 얼떨떨하게 주호엄마를 보다가 일단은 도리엄마에게 눈인사를 한다. 그녀도 따라 고개를 숙인다. , 일단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주호엄마가 자연스럽게 발을 내디디려는데 도리엄마가 마주 서며 가로막는다. 아니요, 얘기는 여기서 끝냈으면 해요. 여기서요? 주호엄마는 도리엄마 또래의 대학생들이 오고가는 길목을 휘 둘러본다. 여기는 좀……. 도리엄마는 아랑곳 않는 얼굴로 말한다. 하실 말씀 하시고 가주셨으면 해요. 집은 좀 내키지 않아서. 그와 동시에 현정은 예고 없는 태동으로 몸을 움찔한다. 괜찮아요? 세 명의 시선이 쏠린다. 언니 힘들면 들어가구요. 현정은 땀을 닦는 척 손바닥을 옷에 문지르며 도리머리 짓는다. 아냐, 난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마세요. 주호엄마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더니 등을 돌린다. 둘이 따로 연락하고 그랬나 봐요. 말도 놓는 걸 보니. 어머, 그러네. 차에선 별말 없었잖아요. 생쥐를 모는 듯한 둘의 시선이 도리엄마에게 가닿는다.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으로 현정도 도리엄마를 본다. 도리엄마는 침착하게 대꾸한다. 하실 얘기 있던 거, 아니셨어요? 주호엄마는 슬그머니 팔짱을 낀다. 맞아요. 분위기가 예상과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아 현정은 자리가 불편해진다. 어딘지 모르게 위태롭게 서 있는 듯한 도리엄마에게서 시선을 돌려, 제 앞에 선 주호엄마의 뒷모습을 본다. 그녀가 신고 있는 얇고 뾰족한 하이힐 굽을 보다가, 발목과 종아리를 지나 허벅지의 튼 살에 눈길이 머문다. 도리맘님, 저번에 왔을 때 알려준 구청실무조사 신청 혹시 해봤어요? 아니면 영유아 어린이집이나, 미혼모 센터는요? 돌아오는 답은 없다. 도리엄마는 다문 입술에 힘을 준다. 함께 온 회원의 입에서 기가 찬 듯한 웃음이 터진다. 주호엄마는 회원을 힐긋 보고 말을 잇는다. 분명 이런저런 혜택 받을 길이 있을 거예요. 카페 사람들이 우리 도리맘님 동생 같아서 그런 거 직접 알아봐 주고, 도움 될 만한 물건도 주고 한 건데……. 도리맘님 엄마잖아요. 품 안에 든 그 작은 핏덩이 위해서 뭐라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아요? 주호엄마는 한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본다. 저만치에 서서 구경하고 있던 여자 둘의 눈이 이쪽과 마주치자 발길을 돌린다. 주호엄마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도리엄마를 본다.
도리맘님. 주호엄마가 달래듯 한발 다가간다. 도리엄마는 시선을 떨구는가 싶더니 도리를 고쳐 안고서 입을 뗀다. 전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예전에 오셨을 때도 전 나름대로 충분히 거절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듣지 않으셨겠지만. 그게 무슨 말이죠? 고개를 갸웃하는 주호엄마를 향해 도리엄마는 허탈한 듯 웃으며 말한다. 주호맘님은 저를 티브이에 나오던 그 노숙자들처럼 취급하는 거 아니세요? 못사는 사람들 위해 대신 여기저기 손 벌리고 나서는 거 말이에요. 어머, 얘 좀 봐. 지금 좋게 좋게 어르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회원의 날 선 소리를 뒤로 주호엄마는 구두 앞굽으로 바닥을 딱딱 두드리다가 현정에게 고개를 돌린다. 현정은 방금 전 구경하던 여자들과 다를 바 없이 꿀 먹은 양 지켜만 볼 뿐이다. 주호엄마는 현정을 훑어보다 앞으로 몸을 튼다. ……그게 나쁜 거니? 주호엄마는 회원과 현정, 그리고 도리엄마를 다시 한 번씩 쳐다본다. 그게 나쁜 거야? 잠깐의 정적을 뒤로, 엄마아, 하는 주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호는 시트에 나와 차창 밖으로 고개를 쑥 빼고 있다. 들어가 있어, 김주호. 도리엄마는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포대기 안을 본다. 회원은 더 상종할 것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젓는다. 어디선가 서로에게 욕설을 외쳐 대는 무리의 소리가 야단스럽게 들려온다. 도리엄마는 무어라 입속말을 하는가 싶더니 한껏 충혈된 눈으로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저는 그냥, 거기서라도, 다른 엄마들이랑 똑같이 있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뒤에서 테이프가 늘어지는 것같이 주호가 엄마를 부른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김주호! 가만히 있지 못해? 저는 더 할 말이 없어요.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돌아서는 도리엄마를 주호엄마가 머뭇거리다 붙잡는다. 붙잡고도 계속 소리 내는 주호 쪽을 살핀다. 도리엄마는 포대기가 기울어지자 손을 뿌리치며 포대기를 바로 잡는다. 주머니에서 알람 소리가 울린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대려던 도리엄마는 다시 중심을 잃는다. 주호가 고장 난 기계처럼 반복해서 엄마를 부른다. 엄마아. 엄마아. 나 쉬 마려. 나 쉬이. 엄마아아. 주변에 생긴 몇몇 구경꾼은 이제 당사자와 눈을 마주치고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매캐한 잡내가 바람결에 밀려든다. 도리엄마는 알람 소리가 계속 나는 채로 모두의 얼굴을, 그리고 현정의 얼굴을 눈에 담는 듯 보고 건물로 들어간다. 층계를 밟으며 지하로 향한다. 주호엄마는 도리엄마를 따라 몇 걸음 나아가다 돌아선다. 주호를 안아 들어 주변을 살피다 한 상가로 걸음을 친다. , 뭔가 드라마 덜 본 기분인데요. 회원이 현정을 보곤 입맛을 다신다. 근데 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주호맘님 저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입꼬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듣자하니 결혼하고 남편 월급만 꼬박꼬박 타서 쓰고, 자식들 꼬박꼬박 키워서 지내기가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에요. 구경꾼들도 흩어지고 사위는 금방 고요를 되찾는다. 출처 모를 소음만이 메아리처럼 왔다 간다. 현정은 가방에 든 손수건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누가 그렇게 말했어요? 회원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알 만한 회원들은 다 알아요. 현정은 빛이 들지 않아 어둑하고 음습한 건물 입구를 본다. 아래 층계는 보이지 않아, 발을 디디면 그대로 몸이 고꾸라질 것 같은 상상이 든다. 현정은 건물로 한 발을 내밀다가 그를 축으로 삼아 몸을 튼다. 전 좀 피곤해서, 택시 타고 먼저 들어갈게요. 현정은 똑같이 생긴 건물과 건물 사이로 간다. 회원이 얼마간 현정을 부르다 그치고 만다.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만 무작정 가던 현정은 골목을 빠져나와 교차로 횡단보도 앞에 선다. 움직이던 차들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휴대폰 문자음에 퍼뜩 정신이 든다. 맞은편 횡단보도 등을 본다. 죽은 듯 꺼져 있다. 제 곁의 등도 확인하는데 마찬가지로 꺼져 있어 현정은 기운이 빠진다. 승합차가 지나가며 더운 바람을 일으킨다. 현정은 손수건을 꺼낼 생각도 못하고 자동차 신호등으로 고개를 든다. 놓여 있는 네 대의 신호등 모두 노란불만을 깜박인다. 현정은 돌아서서 자신이 나온 골목을 본다. 내키지 않는다. 다시 몸을 돌리는데 지나치는 차를 보고 지레 뒷걸음을 친다. 현정은 숨을 천천히 들이켜며 배를 만진다. 그 속이 고요하다. 익숙한 소음이 찾아오자 잠에 든 모양이다. 문득 싱크대에 있을 고깃덩이가 생각난다. 이미 다 녹아서, 주변에 잔뜩 물이 고여 있을 것이다. 구름 없는 하늘을 본다. 마냥 멀기만 한 그 거리를 가늠해 보려다 현정은 일순간 몸이 나른해진다. 해가 떠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낯선 졸음이 밀려온다.
 
 

[의혈창작문학상 소설 심사평] 관계를 꿰뚫어보는 생각의 깊이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과 인간을 그려낸 작품들을 읽으며 오늘의 대학생이 지난 어느 시대의 젊은이 못지않게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선작 [비보호]는 관계를 꿰뚫어보는 생각의 깊이와 절제된 문장의 힘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드러난 현상이 감추고 있는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의 서늘함이 행간에서 느껴졌다. 당연한 관계와 익숙한 일상이 실은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어조는 낮고 차분하기 그지없다.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 깃든 적의와 공격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한순간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문장을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습작의 과정에 있는 대학생의 문장에서 이런 밀도의 문장을 만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비보호]는 호의가 드리우고 있는 그림자에서 욕망을 읽어내는 내공을 발휘하면서도 그것을 다 드러내지 않고 반쯤은 덮어두는 놀라운 절제력을 보여준다. 빈틈없는 문장이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의 관계를 꿰뚫어보는 생각의 깊이와 과잉을 경계하는 절제력에서 비롯된 것임은 온라인 공간에서 예비한 공격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실행에 옮기는 주호엄마, 거기에 당하는 도리엄마,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서 구경꾼으로 물러서는 현정에 대한 정치한 서술에서 명확해진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계속해서 정진한다면 반드시 한국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작가로 발돋움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쉽게 당선의 영광을 다음 기회로 미룬 다른 응모자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방현석(소설가/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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