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들고 읽을거리가 절실했다고 해도, 그날 밤 내가 이청준의 책을 편집국까지 가져오게 된 데에는 어딘지 꼭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맘때부터 나는 심각한 ‘말의 변비증’을 앓고 있었고, 그런 내게 소설이 얼마간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에 강한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내가 많은 책 중에 ‘그 소설’을 뽑아든 건 순전히 우연이였다.
 
  소설 속 화자가 미치광이 흉내를 내는 박준을 만난 것 역시 지독한 우연이었다. 잡지사에 근무하던 ‘나’는 필자들이 좀체 글을 쓰려 하지 않는 현실에 개탄하며 허탈감에 젖어 있던 중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박준을 만난다. ‘전짓불의 공포’를 견디면서도 끝끝내 자기 진술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감내하던 소설가 박준, 그런 그가 마지막 도피처로 찾아든 정신병원에서조차 ‘소문의 벽’에 부딪혀 탈주했을 때 나는 책을 덮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작가는 그 전짓불 뒤에 숨은 사람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들과 상관없이 자기진술만 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작가의 양심이라는 것 아닌가. 나의 이야기는 다만, 그러나 나에게서는 이미 그 양심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이 지켜질 수 없게 되고 있다는 것뿐이다. 전짓불이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짓불이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니 나에게는 어떤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 그런 것은 알지도 못한 새에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편이 되어 있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가혹한 복수를 당하곤 한다.”(「소문의 벽」 내용 중 일부 발췌)
 
  대학신문에서 활동한 지난 몇 년은 흔들리고, 좌절하고, 조심스러워진 시기였다. 자기의 눈으로 정직하게 현실을 볼 수 있을 때 흔들림이 멈출 거라 자신을 다독였건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할수록 좌표가 희미해졌다. 발언은 조심스러워졌고, 커서의 깜박임 앞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갔다. 오직 자기진술이 강력히 요구되는 마감 시간에만 무겁게 입을 열 뿐이었다.
 
  ‘선전 선동 찌라시·대학본부 홍보지’라는 소문이 기사를 난도질할 때마다 좀 더 냉철했다면, 숙고했다면 비난받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을 다독여왔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전짓불의 횡포는 심해졌다. 어느 편에서 기사를 쓸건지, 어떤 편에 힘을 실어줄 것인지 선택을 요구해왔다. 아니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런 것은 알지도 못한 새에 내 기사는 언제나 누군가의 편이 되어 있곤 하는 것이다.
 
  공정한 언론·객관적인 보도·중립적인 신문은 존재할 수 있는가. 해를 거듭하며 스스로 던진 질문에 또 마지막으로 물음표를 찍는다. “공정한 언론·객관적인 보도·중립적인 신문은 존재할 수 있는가?” 지난 7년을 회고해 봐도 믿고 펜대를 꽂아둘 땅 한 평 찾기가 쉽지 않다.
 
  이 글을 쓰는 도중 편집장 후보자 공청회에서 후임 편집장 후보가 생텍쥐페리의 말을 인용하며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말에 아무런 이야기도 해줄 수 없었다. 전짓불의 공포에 겁을 먹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청준 선생님의 문장을 부목 삼아 바다의 수심을 일러주는 것뿐이다. 아무리 바다가 깊고, 넓고, 잔인하다고 일러줘도 후배들이 품은 동경심을 어쩌지 못하리란 걸,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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