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이다. 우연히 본 ‘라디오 스타’에 한재권 박사가 출연을 했다. 멋진 로봇을 선보였는데, 그 로봇보다 빛났던 것은 그의 말이었다. “기계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을 해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잘 컨트롤해야 한다. 기술적 오류는 인문학이 잡아줘야 한다.” 이 말을 듣고 기계 대신 경제학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유효할지 생각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문학이 없는 경제학으로 인해 인류는 큰 피해를 봤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일 것이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당시 미국 경제 상황과 금융·경제시스템, 세계경제를 거시적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의 원인을 한 가지 이유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주요 원인으로 손꼽는다.

  투자은행들은 투자와 파생상품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이때 자연히 리스크는 따른다. 높은 수익에 높은 리스크가 따른다는 것은 투자에 있어 불문율이다. 하지만 2008년의 미국 투자은행들은 높은 수익에 눈이 먼 나머지 높은 리스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이 몰랐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은 금융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미국 Wall Street 한복판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영화 “Too big to fail”의 대사로 설명을 할 수 있다. “우린 돈을 너무 많이 벌고 있었거든.”

  경제학은 가정의 학문으로 불린다. 대부분 상식적인 수준에서 가정을 세운다. 그 중에 하나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가정은 단순하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 첫 한 모금이 그 다음 한 모금보다 더 달콤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부족한 것을 취하면 취할수록 그로 인해 얻는 행복감은 덜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투자은행에게 이 가정은 성립하지 않았다. 이들은 돈을 벌수록 더 많은 돈을 갈구했고, 점점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였다. 욕심에 눈이 먼 투자은행들은 리스크를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 애써 외면했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경제학은 사람을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 사례만 보더라도 사람은 욕심에 눈이 멀면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다. 경제학을 보완하기 위한 무엇이 필요하다.

  그 ‘무엇’은 어떤 것일까. 경제학의 성격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경제학은 ‘돈’을 다루는 학문이 아닌 ‘가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가치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선 석유, 부동산, 철강, 귀금속 등이 있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해보면 앞서 언급한 것들 이외에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윤리, 정의 등이 있다. 전자의 가치는 계량화되어 측정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에서 ‘화폐’의 단위로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배우는 경제학은 이러한 것들을 다룬다. 하지만 후자의 것들은 일반적으로 계량화되어 질 수 없으며,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의 가치를 다루기 위한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본다.

  4학년 취업준비생으로서는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인재를 원하는 기업들이 원망스럽다. 스펙, 스토리에 이제는 인문학이라니. 하지만 4학년 경제학도로서는 인문학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경제학은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자본주의라는 기틀 위에 많은 나라들이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으며, 사람들의 삶은 윤택해졌다. 하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다. 도덕적 해이와 같은 문제들은 경제학만으로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를 인문학이 보완할 수 있다. 경제학은 시장에서 사람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다루는 학문이다. 우리는 주로 ‘합리’에 초점을 맞추지만, ‘합리’에만 눈이 멀어 놓쳐버리기엔, ‘사람’이라는 단어의 가치는 너무 크다. 

김종헌 학생

경제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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