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전략동맹. 공공의 적을 먼저 처단하기 위해 어제의 적과 잠깐의 휴전에 돌입하는 이야기는 역사 시간에 많이 들어본 전략입니다. 40년 동안 전쟁을 해온 고려와 몽고는 공공의 적 일본을 무찌르기 위해 화친을 맺고 연합군을 형성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하지만 여기엔 세계제국 건설의 야망을 품은 몽고의 강요에 따라 이뤄진 대규모 군사 활동으로 고려는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비화도 숨어 있습니다.

  고려와 몽고가 그렇게 쉽사리 우방이 되는 것은 그들에게 닥친 ‘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대의 적은 그리 만만치 않으니 의기투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것이죠. 신문사에 앉아 학교 안팎을 조망하니 굳이 역사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전략동맹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먼저 학교 밖에선 아직도 세월호 사건의 슬픔이 남아있습니다. 적이라고 할 것 까진 없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 모여 함께 슬퍼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밤낮 지새웠습니다. 국가적 재난이나 자연 재해 같은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옆 사람의 행동에 이끌리고 휘둘려 같이 슬퍼하게 됩니다. 아무렴 동네 건달 같은 사람도 마음이 동하면 피해자들을 따뜻하게 보듬기 위해 땔감이라도 주워오는 시늉을 하겠죠.

  학교 안에서는 동아리연합회장에 출마한 선본들끼리 혈투를 벌이다 결국엔 부정선거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사건은 동아리연합회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7일 기호 1번과 3번이 이의제기를 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선관위원장이 그가 지켜야 할 중립성과 공정성을 어기고 나머지 선본들에게 기호 3번을 낙마시키기 위해 일을 주도했던 것이죠. 사적 자리에선 우스갯소리도 못하는 검열의 시대에 그는 단체 카톡방에서 ‘공공의 적을 공격하기 위해 도움을 청해요’라는 멘트를 날렸습니다.

  전략동맹 자체로만 본다면 이는 하나의 전략일 뿐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전략동맹을 구현해도 되는 곳과 금하는 곳은 분명 구분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문사의 영토는 어떤 곳일까요. 올해 초 조직개편으로 중대신문사가 홍보실의 하위기구로 들어간 이 모습을 사람들은 손가락질 합니다. 완전한 어용이 됐다면서요. 다른 학보사의 편집장들은 ‘편집장이나 데스크진이 새우등 터지지 않냐’며 중대신문을 향해 연민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요즘 들어 중대신문이 재미없어 졌다는 소리도 들었고요. 그들의 눈엔 우리가 전략동맹의 모습으로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신문사라면 늘상 있는 일이지만 이번학기에도 중앙대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중대신문이 흔들리도록 위협하는 것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적들은 중대신문을 설득하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했죠.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적들과의 관계와 중대신문의 영역에 대해 되짚어 봤습니다. 이에 변하지 않는 사실 한 가지는 중대신문은 학생들이 만드는 학내 언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전략동맹이란 있을 수 없는 성역입니다. 그간 기자는 중대신문의 영토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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