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상황에 굴복하는 자세보다 적절한 감정 표출이 필요하다

  겨울이 오기 전 하늘에 부등호를 그리며 날아가는 철새의 무리. 대열에서 이탈하면 겨울 날 곳을 찾아가기 어렵지만 걱정은 없다. 날갯짓이 힘에 부칠 즈음 덜 힘든 바깥쪽 새와 자리를 바꾸면 된다. 경쟁보다는 협력이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다.

  반면 사람들은 이와 조금 다른 모양이다. 피라미드형 대열의 맨 위 꼭짓점이 아니라면 누구나 자괴감에 빠져들기 십상. 자기 만족도가 낮아질수록 모멸의 위협은 더욱 커진다.

정서의 원자폭탄, 모멸감

  대인 관계에서 자신의 낮은 위치를 느낄 때, 그로 인해 자존감이 위협될 때. 모멸의 감정은 심리의 기저에서 서서히 잠식해온다.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콤플렉스에  당사자를 가둔다. 더군다나  감정이 적절하게 표출되지 않으면 그 위험성은 다소 심각해진다. 마치 지렛대를 누르면 반대쪽이 튕겨 올라오듯 감정도 삭일수록 반발효과가 커진다.

  이 때 우리는 방어태세를 갖춘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오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감정의 응어리들로 인해 상대에 대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김찬호 교수는 모멸감에 대해 “감정적인 원자폭탄”이라고 언급하며 “이는 개인에게 복수심을 자극하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고 분석했다. 그 어느 때보다 모멸 사회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한심하게 보더라도 내 나름의 개똥철학을 갖고 살면 그것만으로 됩니다.”
그간의 한국사회는 점수 경쟁에 치여 진정한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스스로의 매력을 가꾸는 방법조차 몰랐다. 김찬호 교수는 남의 인식에 개의치 않고 내가 나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즉 고유의 ‘자기다움’으로부터 그 사람에게 끌리는 매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진 이들에게 다소 어려운 주문일 수 있겠지만 인생을 길게 보라고 그는 조언한다. 그는 “20년 뒤에 본인 스스로에게 고마워할 만한 일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볍게는 운동부터 취미활동, 여행, 심지어 다시 공부를 하게 되더라도 내부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이 동(動)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서열을 만들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상황에서 그들이 보지 못한 다른 장점들에 주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재휘 교수는 의도적으로 자존감을 지키려는 노력을 강조한다. 결핍된 부분에 집착하는 것은 비극이다. 김재휘 교수는 “자신이 보람을 느끼고,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종적인 단면보다는 횡적인 측면에서 훨씬 화려한 스펙트럼이 펼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교를 한다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두고 하는 게 맞다. 

  전문가들은 하나의 방안으로 봉사를 언급했다. 김재휘 교수는 “자기애라는 것은 내가 사랑한다고 커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을 확인할 때 나타나는 것”이라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을 도울 때 자신의 존재가치를 크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타인에게 건넨 손이 외려 나를 구원해줄지도 모른다. ‘내가 중요해’라는 이기적 자존감이 ‘남들도 중요해’라는 사회적 자존감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곪기 전에 비워내야

  쌓아두는 감정은 끝없이 나의 영혼를 갉아먹을 뿐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감정을 적절히 표출해야 한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멸을 준 사람에게 말을 하자니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고, 어떤 언어로 풀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김찬호 교수는 “자칫 내가 못난 게 들통날 것 같은 두려움에 모멸감을 언어화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며 “분명 사회적인 요인이 있는데 개인 탓만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우리는 감정을 들키지 않게 꼭꼭 감춰두지만 풍선 터지듯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결국 모멸이 곪아 문드러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학생생활상담소 김희중 전문연구원은 “문제에 대해 ‘내 잘못’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무례했다’라고 생각할 필요도 있다”며 “감정 문제를 해결지향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갑을관계 하의 감정노동은 이러한 과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김희중 전문연구원은 “관계가 패턴화돼 있고 행동규범이 주어지는 경우 감정에 갇히기가 더 쉽다”고 말했다. ‘주면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여기기보단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수용 범위를 설정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모멸에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서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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