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일상을 색소폰 가락으로 적시다
  • 안지연 기자
  • 승인 2014.12.01 0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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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의 공강시간

▲ 김호성 교수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 인기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연주하고 있다.


김호성 교수(전자전기공학부)

중년에 다시 찾아온 7080감성

색소폰을 들고 한강 버스킹을 나가다

중년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색소폰 연주를 꿈꿔봤을 것이다. 여느 중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김호성교수도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가 그의 우상이다. 그때 그시절 색소폰에 대한 로망이 그의 연구실에서 펼쳐진다. 손에 있던 펜을 잠시 놓고 색소폰을 불며 휴식을 취하는 김호성 교수. 봅스트홀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색소폰 선율에 이끌려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봤다. 


중년 남성들의 기억 한켠에는 7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끈 음악다방 쎄시봉의 추억이 담겨 있다. 쎄시봉에서의 강력한 색소폰 연주는 아직도 그들의 귓가에 맴돈다. 어느덧 중년의 막바지에 다다른 김호성 교수는 연구실에 놓인 색소폰을 꺼내 연주를 하며 그 시절을 회고해본다. 그는 남은 인생의 반을 색소폰 연주로 채우고 있다. 

색소폰으로 되찾은 중년감성
  인생의 중반기에 들어선 2008년, 김호성 교수는 자신의 삶이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등산을 하며 체력관리를 하더라도 권태롭고 반복되는 교수생활은 그를 지치게 했다. 더군다나 딱딱한 공학만을 반평생 공부하다 보니 감정이 점점 메말라 갔다. 그러던 그가 처음으로 눈길이 간 곳은 악기였다. “나이가 오십이 넘으니 삶이 각박해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음악은 쉽게 즐길 수 있는 취미라 생각해 악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 떠오른 악기는 대학생 때 많이 쳐봤던 기타였다. 하지만 기타는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고음을 내는데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악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찾아본 결과 유독 색소폰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색소폰은 음역대가 굉장히 넓어요. 색소폰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을 제 나이대 남성이 연주한다면 굉장히 멋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배우기도 전에 덜컥 비싼 악기를 구입해놓고 적성에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겠다는 우려감이 들었다. 하루빨리 색소폰을 불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그가 먼저 찾아 간 곳은 악기가 구비된 실용음악학원이었다. 그는 물 만난 고기마냥 색소폰을 부는 재미에 빠져버렸다. 색소폰의 운지법이 초등학생 때 배운 리코더와 동일한데다가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성가대를 한 덕에 악보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색소폰을 처음 부는 것이었지만 익숙했다. 초보자도 쉽게 불 수 있는 알토색소폰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김호성 교수는 곧잘 소리를 냈다.

무거운 음에 감정을 싣다
  그는 음악에 감정을 싣는 것을 중시한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노래는 음악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김호성 교수의 원칙이다. 그런 그에게 저음은 감정을 잘 실을 수 있는 음색이다. “저는 저음을 좋아해요. 그래서 마우스피스도 저음이 풍성하게 나오는 금속 재질을 쓰죠.” 게다가 고난도의 기교 없이 낮은 음만으로도 슬픈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그가 저음을 선호하는 이유다.

  평소와 같이 알토색소폰의 연주를 듣던 어느 날, 그는 문득 테너색소폰의 연주를 듣고 싶다는 생각에 직접 영상을 찾아 들었다. 소리가 가는 알토색소폰과 달리 테너색소폰의 낮은 음색은 그의 귀를 매료시켰다. “테너색소폰 영상을 보는 순간 심장이 떨리는 듯 한 기분이 들었죠.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 잘 불면 박력 있어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년간 쓰던 알토색소폰이 질리던 찰나에 그는 기존에 쓰던 알토색소폰을 판 후 돈을 보태어 테너색소폰으로 바꿨다.

  김호성 교수는 테너색소폰으로 7080대중가요를 즐겨 연주한다. 그래서 가수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그의 18번 곡이다. 무거운 느낌이 나는 테너색소폰에는 7080대중가요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저음의 테너색소폰을 이용해 그 시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색소폰으로 불다 보면 어느새 부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그 시절 추억에 잠긴다. 

금지옥엽 아껴온 나의 색소폰
  그는 알토색소폰을 테너색소폰으로 바꾼 뒤에도 또 한 번 색소폰을 교체했다. 그를 가르치던 실용음악학원의 선생님이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연습을 하는 그에게 자신이 아끼던 색소폰을 싼값에 판 것이다. 유명한 악기 메이커의 제품인 그 색소폰은 만들어진지 80년이나 된 것이었다. 아마 이 색소폰이 그의 마지막 색소폰이 될 것이다. “저는 선생님이 쓰신 색소폰을 평생 쓸 생각이에요. 관리만 잘 해주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으니까요.”

  뭐든지 오래 쓰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리가 필수다. 그는 색소폰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한다. 금속으로 이루어져 작은 충격이나 액체에도 쉽게 손상이 가기 때문이다. 한참동안 색소폰을 불고 난 후 그는 꼭 고인 침을 바로 닦는다. 그의 연구실에는 끈 달린 수건이 색소폰 옆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다. 그는 3개월에 한 번씩 색소폰을 들고 악기 전문점에 방문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연마하다 
  김호성 교수는 색소폰을 연주한 지 6년차가 되어가지만 기초를 탄탄히 하기위해 꾸준히 수업을 받는다. “프로 골프선수들도 보면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레슨을 받잖아요. 색소폰을 연주한 기간보다는 오랫동안 레슨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에겐 방학이 색소폰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황금기다. 박자를 맞추는 법부터 바이브레이션 하는 법까지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은 방학 때 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방학이 되면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학원에 가서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는다.

  학기 중에도 수업이 없는 날이면 짬을 내 학원에 있는 연습실로 향한다. 하지만 학기말이면 바빠져 그마저도 할 수 없다. 그래도 그는 색소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주말 밤을 이용한다. 주말 밤 학교에는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 홀로 남겨진 그는 연구실에서 색소폰을 불며 적막한 교정을 채운다.

  “자신의 연주를 자기가 들으면 당연히 좋게 들리죠. 발전을 위해서는 무대에 서 버릇 하면서 타인의 평가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요.” 혼자 악기를 연습하다 보니 자신의 연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그가 자주 즐겨 찾는 방배동의 한 라이브 카페가 있었는데 주인과 잘 얘기를 해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좋은 평가를 들은 것은 아니었다. 카페를 찾은 한 손님에게 ‘연습 좀 하고 오라’는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쓴소리가 그에게는 자극제의 역할이 됐다. “손님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손님의 지적은 그가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이다.   

한강에 울려퍼지는 색소폰 소리
  밤 10시까지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에 지칠 때면 그는 집에 가기 전 색소폰을 들고 한강고수부지주차장을 들린다. 밤 10시가 되면 한적해지기 때문에 색소폰을 불어도 주변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강고수부지에 가서 색소폰을 불면 묵은 스트레스까지 다 풀려요. 심리적으로 힘들거나 우울할 때는 색소폰이 최고죠.”

  자동차 오디오에 반주기를 연결한 후 그 반주에 맞춰 색소폰을 불다 보면 작은 콘서트장이 열린다. 주변에 있던 차 주인들부터 산책하던 사람들까지 그의 색소폰 소리에 이끌려 어느새 마실 것을 하나씩 사들고 그의 연주를 경청한다. 그중에는 신청곡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 잘 들었다며 돈을 건네는 행인도 있다. 

  늘 그랬듯이 김호성 교수가 한밤에 한강고수부지를 찾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는 색소폰으로 가수 어니언스의 「편지」를 부르며 고단함을 풀고 있었다. 한창 색소폰 연주에 심취해 있던 중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이 다가와 동영상을 촬영해도 되냐고 부탁을 했다. 그는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해 흔쾌히 승낙했다. 연주가 끝난 뒤 그 행인은 자신이 찍은 김호성 교수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 소식을 접한 동료들은 바로 그 사이트에 접속해 ‘한강고수부지 색소폰’이라는 단어를 쳤다. 실제로 김호성 교수가 색소폰으로 연주를 하는 영상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후 그 동영상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들 사이에서 몇 번이고 재생됐다고 한다.

그에게 색소폰은 인생의 동반자 
  인생의 중반기를 넘어섰지만 김호성 교수는 색소폰으로 인해 하나의 꿈이 생겼다. 그는 봉사활동 차 갔던 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색소폰 연주를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연주했지만 장애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장애인시설에서 한 공연이 제가 이제껏 한 공연 중에 제일 기억에 남아요. 장애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거든요.” 김호성 교수의 작은 바람은 정년퇴직을 한 후 요양원이나 보육원을 돌아다니며 색소폰으로 행복을 나누는 것이다.

  “제가 나이 들어서 시작한 게 몇 가지 있는데 제일 애착이 가는 것이 색소폰이에요. 색소폰은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저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색소폰의 기본 호흡은 복식호흡이기 때문에 색소폰을 불다 보면 폐활량을 늘릴 수 있다. 덤으로 우울한 기분까지 풀어지니 그가 젊게 사는 비결이 색소폰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의 동료들은 이제 김호성 교수하면 색소폰도 같이 떠올린다.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들의 모임에는 언제나 그의 색소폰 연주가 들린다. 그가 색소폰을 들고 오지 않으면 서운하기까지 하다. 그가 가는 곳에는 색소폰이 항상 함께 할 정도로 그에게 있어 색소폰은 삶의 일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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