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친구들은 문제집과 뜨거운 사투를 벌이던 여름, 한 평범한 고3 여학생이 갑자기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소녀는 그렇게 자신이 듣고 경험한 일상들을 음악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2년 후 대학생이 된 그녀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짧은 시간 동안 큼지막한 발자취를 남긴 이설아씨를 만나보았다.  

 
평범한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낸 노래로
청중을 위로하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다
 
  음악은 가수와 청자가 만나는 소통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노래를 듣는 사람은 가수의 언어로 위로를 받는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내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된다”는 이설아씨의 말은 음악이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2013년 11월, 제24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본선 무대에 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진심이 담긴 ‘운다’란 이야기는 금상이라는 결과를 이뤄냈다. 대회를 통해 큰 무대에 서는 경험을 얻었다는 그녀는 자신이 선망하던 가수들과 직접 호흡할 수 있었던 기회에도 감사했다고 말한다. 

  “좋은 언니, 오빠 같은 선배들이 생겨서 신기해요. 선배님들이 대회 기념앨범 작업과 기념공연 준비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공연에 직접 게스트로 나와주시기도 했고요. 평소 경험하기 힘든 큰 무대를 저희 손으로 꾸밀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것도 감사하죠.”

  그녀가 음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어렸을 적 누구나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제외하고는 음악적 경험이 없던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 갑작스레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억누르고 일반 대학교에 진학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늦게 시작한 탓에 재수를 결심하기까지 한 그녀의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레슨과 연습실 비용을 내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 12시부터는 학원에서 살았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 대학에 들어갔어도 다른 동기들에 비하면 음악적으로 부족하더라고요.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니까 지금도 연습을 쉴 수가 없어요. 음악 공부를 계속할수록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음악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그녀는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곡을 만든다. 음악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에 평소의 생각이나 느낌을 곡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길을 걷다가, 버스를 타고 있다가도 잊지 않고 메모를 한다.

  “저는 말하고 싶은 주제가 떠올라야 곡을 만들 수 있어요. 가사에 전하고 싶은 것을 적어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주로 가사를 먼저 쓰죠. 가사가 없으면 곡 진행이 잘 안 되니까요. 가사를 다 쓴 후 흥얼거리며 운율에 맞춰 음악을 자연스럽게 다듬어가죠. 코드, 멜로디, 가사를 계속해서 수정하다 보면 어느새 음악이 완성돼요.”

  설아씨는 자신의 생각을 그린 스케치 위에 피아노라는 색만을 채워넣는다. 적은 악기가 사용되는 소규모 편성의 높은 집중력과 전달력 때문이다. 이런 소규모 편성은 작은 카페 공연에서 사운드에 여유를 만들어줘 그 틈을 관객과 가수가 채울 수 있게 돕는다.

  “소규모 공연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잔잔한 음악을 듣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으세요. 혼자 노래하는 게 잔잔한 분위기를 내는데 도움이 되죠. 물론 밴드 구성으로 공연을 할 준비만 된다면 밴드 사운드를 내보고도 싶어요. 사운드를 좀 더 풍성하게 채움으로써 음악이 주는 감정을 좀 더 다양하고 깊게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요.”

  내실을 다지고 있는 그녀의 음악들은 하나의 철학이 관통하고 있다. 바로 듣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공감을 위해서 그녀는 지금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과 그녀가 하고 싶은 음악 중 한 쪽으로 무게가 실리면 가수로서의 정체성에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이다. 

  “공감이 되면 그 음악이 정말 크게 다가와요. 별 의미 없는 가사가 붙은 신나는 곡이라면 신나는 것에 공감하면 되고,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면 그 이야기에 공감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공감이 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너무 대중들에게 맞추려고 하다보면 ‘이런 음악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데’라는 회의감이 들 것 같아요. 그렇다고 자기만의 세계에 너무 빠져도 당연히 외면 받을 수밖에 없고요. 저와 듣는 이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게 제 목표에요.”

  그래서 그녀는 음악에 대한 욕심과 듣는 이의 공감, 모두를 놓치지 않고자 한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사에 구체적인 장면을 담아 듣는 이가 함께 상상할 수 있도록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지만 듣는 이도 그 장면을 같이 상상하고 그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곡을 쓸 때 너무 큰 그림이나 추상적인 것을 그리기보다는 작은 장면 하나하나까지 구체적으로 끄집어내려고 해요. 이렇게 섬세한 장면묘사를 통해 듣는 이와 같이 숨을 쉬고 싶어요.”

  음악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라고 말하는 그녀의 음악은 듣는 이에게 위로를 준다. 가수와 관객이 음악을 통해 위로라는 접점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제 곡을 듣고 누군가가 ‘좋다’고 말해주거나 공감해주면 저는 큰 위로를 받아요.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은 저한테 위로를 얻고 저는 그분들에게 위로를 구하는 거죠. 공연을 보러 오시거나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도 결국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제 신념인 ‘위로받을 당신께 위로를 구합니다’는 그렇게 나온 것이죠.” 
 
 

 

   ‘운다’라는 두 음절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잔잔한 피아노 음색이 꽤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기성 음악에 흔히 등장하는 슬픈 이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결핍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다. 이설아씨는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결핍에 대해 말하고 있다. 힘을 뺀 목소리로 그녀는 그들에게 ‘괜찮다’며 위로한다.

  ‘운다’는 캐셔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어머니와 함께 온 두 남자아이를 마주했던 순간을 바탕으로 탄생한 곡이다. 계산대 앞에 선 남자아이 중 형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가 형을 달래주자 이내 동생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눈빛과 손길이 동생에게 옮겨가자 먼저 울던 아이가 이전보다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설아씨는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떠오르던 생각들을 영수증 뒤에 적어나갔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들은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결핍인 건지
  두려워서 피하고 숨겨놓았던 그녀 내면의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그녀는 재수를 하는 동안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외로움을 합리화하며 살았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어려워 마음의 문을 닫은 채 혼자 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구나’라고 생각했고 이 곡을 만들게 됐다.

  ♬당신의 마음의 근육들은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 애써 부정하려 해도
  결핍을 인정한 후부터는 그녀를 짓누르던 외로움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결핍을 인정함으로써 마음의 가벼움을 느끼기를 그녀는 바란다. ‘내가 사랑이 많이 필요하구나’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를 인정한 순간,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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