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사랑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 사이의 정과 남녀 사이의 정이라고. 야심한 밤 해방광장과 도서관 앞 벤치에서 마주한 네 사람은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자친구가 생긴 후배와 그런 그녀를 품 안에서 떠나보내기 어려운 여자 선배, 이제 남자들 간의 의리보다 로맨스를 우선시하고 싶은 두 남학생의 사연을 담았다.

 

 


주위는 온통 커플들
나만 혼자인 세상

소원해진 후배와의 관계로
마음이 씁쓸하다


  사랑과 집착. 인간관계에서 그만큼 애매한 경계도 없다. 상대에게 애착을 갖게 되면 매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건만 집착의 정도를 조절하기란 쉽지 않다. 쓸쓸한 가을, 자신을 남겨둔 채 사랑을 찾아가버린 후배를 마주한 여학생의 심경은 어떠할까. 그녀는 남자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미소 짓는 후배를 애증의 눈길로 응시하고 있었다.
-우울해 보이는데.
A 일주일 동안 주위에 세 커플이 탄생했어요. 세 명의 친구가 떠나갔다고요.
-충격이 크겠다.
A 특히 친하게 지내던 동생에게 많이 서운해요. 매일 만나던 동생을 이젠 3일에 한 번 보기도 힘들어요.
-얼마나 절친한 사이였는지.
A 함께 밤늦게까지 놀다가 저희 집에서 자고 다음날 학교에 가던 동생이었어요. 솔직히 다른 사람 집에서 생활하는 게 불편하잖아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옆에 꼭 붙어 있던 사이였어요.
-동생이 잘 돼가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A 동생 남자친구가 저랑 친한 친구에요. 친구하고 밥을 먹는데 동생이 식사를 걸렀을까봐 걱정되는 거예요.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생을 불렀죠. 둘이 친하게 지내라며 전화번호도 주고받도록 부추겼어요.
B 남자친구와는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밥을 먹은 뒤로 제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더라고요.(웃음)
-식사 자리에 동생을 부른 게 후회되는지.
A 후회는 하지 않아요. 제가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근래 너무 많은 커플이 생긴 상황 때문에 괜히 씁쓸해지는 것 같아요.
-동생이 연애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A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어요. 둘이 잘 되어 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사귀겠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소개해준 후 일주일만에 동생이 떠나가버려 저는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어요. 연애한다는 말을 카톡으로 전해 듣고 머리가 멍해졌죠. 하필 카톡으로 말할 건 또 뭔가요.
-동생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A 이야기해서 뭐해요. 사실 남자친구가 있으면 친구에게 소홀해지는 건 당연하잖아요. 다만 “난 남자친구가 생겨도 언니한테 소홀해지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던 동생이 달라지니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B 언니가 섭섭하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못 채고 있었어요. 그런데 언니가 과장이 좀 심하네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B 겨우 요 삼일을 못 본 것 갖고 이야기를 부풀리는 거예요. 삼일이면 긴 시간도 아닌데 섭섭하다니요. 그리고 언니에게 매일 보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오히려 언니가 팀플 때문에 바쁘니까 저보고 오지 말라고 했어요. 정말 어이가 없어서….
A 저는 동생한테 오지 말라고 한 적이 없어요.
-사건의 내막이 궁금하다.
B 언니가 고향에 내려가기 전날이었어요. 언니네 집에서 자고 싶다고 했는데 별 말을 안 하더라고요. 팀플도 있고 전공 소품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고만 하고.
A 말은 바로 해야겠네요. 동생 커플이 밤 9시에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더군요. 영화가 끝나면 11시가 훌쩍 넘잖아요. 늦은 시간에 오라고 하기가 망설여졌어요. 또 동생이 ‘집에 가는 중’이라고 카톡을 보내서 따로 잡지 않았죠. 집에 가고 있다는 애한테 우리 집에 오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남자친구가 데려다 준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어떻게 남자친구를 버리고 오라고 하겠어요. 제가 그렇게 파렴치한 사람은 아니에요.
-남자친구랑 단둘이 있었던 건가.
B 동기 두 명도 같이 영화를 본 걸요. 그리고 다 같이 술 한 잔 걸치러 갔어요.
A 야 너 나한테 그렇게 말 안 했잖아.
B 길게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둘러 말한 거예요.
-언니와 얼마나 자주 연락을 하나.
B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하죠. 남자친구보다 더 자주 카톡을 하고 통화해요. 카톡을 씹는 건 제가 아닌 언니에요. 언니의 답장이 늦는 건 이제 익숙해요.
A 쟤가 참 재밌는 말을 하네요. 제가 감히 동생님의 카톡을 씹다니요.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에요.
-언니와 남자친구 중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B 당연히 언니죠.
A 얘한테 쏟아 부은 돈이 얼만데요.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노래방도 데려가고.(웃음)
B 진짜 생색 돋네요.
-앞으로 서로 어떻게 지낼 건지.
A 여전히 잘해주려고요. 마지막 남은 선배의 자존심이에요. 하지만 후배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이제 안 할 거예요. 후배에게 떼이고 사는 게 선배들의 인생인가 봐요.
B 언니에게 더 신경을 써야겠어요. 연락해서 자주 보려고요.
A 얘 지금도 남자친구랑 연락하는 거 보셨어요? 영혼 없이 이야기하는 것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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