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중대신문>은 재미가 없다. 월요일 아침을 여는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칠 때 즈음 어김없이 마주하는 중대신문. 이번 주에는 ‘잠수함 토끼들’이 편집하고 발행하는 <잠망경>이 나란히 손에 쥐어졌다. 자연스럽게 두 신문은 내게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사한 두 가지 사항을 다르게 접근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1947년 창간, 대학신문의 효시”로 학교의 제도적 지원을 받는 ‘정론지’와 ‘찌라시’신문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며, 심지어 ‘편향’되었다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중대신문>이 재미없는 이유를.

  하나. <중대신문>은 1면 톱기사로 ‘구조개편 평가 코앞에 다가왔다’를 싣고 설명회 자리를 정리한 관련 기사를 3면에 배치했다. <잠망경>은 ‘여기서 미래를 시작해도 괜찮을까?’라는 도전적인 제목으로 입학처에 붙어 있는 학교 선전 카피 ‘어디서 미래를 시작할 것인가’를 패러디하고 ‘장사하는 대학의 비극’에 대한 내용을 4,5면에 실었다. 이 지면을 통해 매번 지적하는 사항이지만 요즘 <중대신문>은 마치 대학본부의 대변인인 듯하다. ‘객관성’을 빙자하여 실제 문제점은 가린 채 대학본부의 입장을 반복한다. 구조조정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가 초래할 예측가능한 문제들, 이와 연관된 학생들의 불만 사항이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지 않음을 물론, 결론은 일관되게 본부의 입장과 변명으로 마무리된다. 그 어디에도 <잠망경>이 적시했듯, 대학의 교육적 역할과 공공적 기능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지난 몇 년간 대학 경쟁력 강화를 빌미로 진행된 구조조정 결과에 대한 진지한 분석 기사가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둘.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학생회 후보자들의 ‘장미빛’ 공약에 할애한 <중대신문>과 달리 <잠망경>은 지난 총학생회에 대한 평가를 한 면에 배치했다. 왜 선거가 재미없어졌을까? 왜 학생들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는 데 무관심할까? 대의제의 위기는 학생들이 자초한 것인가? <잠망경>이 지적했듯, 자신들이 내건 공약뿐만 아니라 학내의 주요 이슈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직전 학생회들에 대한 실망감이 축적된 결과는 아닐까? 더 나아가 비정치의 외피를 입고 실제 어른들의 정치판을 흉내 내는 학생회 구성 과정의 불투명성과 비민주성이 근본 원인은 아닐까? 이에 대한 분석 기사는 단 한 건도 없다.

  정말 <중대신문>은 못 보는 것일까? 안 보는 것일까? 보이는 데 안 쓰는 것일까? 못쓰는 것일까? 독자가 진정 알고 싶어 하는 알맹이가 빠진 <중대신문>은 참 재미가 없다. 진실의 길은 험난하고 비굴의 결과로 얻는 열매는 눈앞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으로 일갈해야 할 것인가.
 

이나영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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